사도세자(思悼世子)4 (어제 사도세자 묘지문)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1999년 12월 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희귀한 물건 하나를 공개했다. <12월 이달의 문화재 전시 품목> 중 하나인, 영조가 직접 쓴 '어제 사도세자 묘지문 (御製思悼世子墓誌文)'이었다. 가로 16.7cm, 세로 21.8cm, 두께 2.0cm의 사각형 청화 백자 5장에 쓰여있는 이.. 카테고리 없음 2015.09.14
사도세자(思悼世子)3 (왕세자가 죽인 사람들) 사도세자가 훙서하고 불과 이틀 뒤, 영조(英祖)가 이런 지시를 내린 게 기록에 나온다. 上命擧全後被殺宦寺恤典 (왕이 전후로 피살된 환관들에게 휼전을 내리도록 했다.) <영조 38년 윤 5월 23일> ​ ​ <영조실록>의 이 기록을 통해, 몇 가지 추론(推論)이 가능하다. 첫째, 사.. 카테고리 없음 2015.09.13
사도세자(思悼世子)2 (왕세자 죽음의 비밀) 사도세자를 죽이라고 영조에게 읍소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 바로 왕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이다. ​ ​ 그녀는 아들인 사도세자만 즉위하면 영조의 계비로 대비(大妃)가 되는 정순왕후 못지 않은 권세를 누릴 위치에 있었다. 어쩌면 자식도 없는 나이 어린 정순왕후보다 왕과.. 카테고리 없음 2015.09.12
사도세자(思悼世子) 1, 왕세자의 광증 ​ 사도세자는 영조(英祖)에게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다. ​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는 영조가 가장 총애하던 후궁이다. 6세 때 아기 나인으로 입궁한 것을 볼 때, 미모가 출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5~6세의 어린 나이로 입궁하는 궁녀들은 대개 고위직 궁녀들의 친인척들 중에서 .. 카테고리 없음 2015.09.10
생각의 균형(均衡) ​ ​ 난 정조(正祖)를 좋아한다. 조선의 왕 중 가장 애틋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독자나 블로그 방문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내가 정조를 좋아하는 이유는 왕의 장난기 있는 소탈한 성격과, 평생 검소한 생활을 했고 또 인내심을 발휘해 위기와 난관을 잘 돌파해서 즉위한 왕이기.. 카테고리 없음 2015.09.08
서점에 다녀오다 *일요일... 책을 구입하러 대형 서점이 있는 백화점에 다녀오다. 백화점은 완연히 가을이다... * 절판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복사해 제본한다. 카테고리 없음 2015.09.07
명성황후 사진의 진실4 (왕비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명성황후와 사진... 이 두가지를 생각하면, 난 자동적으로 한 일본인이 떠오른다. 일본의 사진작가 무라카미 덴신(村上天眞)!​ 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 당시, 이 자의 직책은 조선 왕실의 '촉탁 사진사'였다. 명성황후의 사진을 찍었던 유일한 인물이다. ​ 1894년부터 1895년 을미사.. 카테고리 없음 2015.09.05
명성황후 사진의 진실 3 (왕비는 왜 사진 찍는 걸 싫어했을까?> 앞서 소개한 명성황후 관련 사진들 중엔 명성황후가 없다. 이는 일제 강점기 때 역사학자인 호암 '문일평' 선생이 명성황후로 칭해지는 사진들을 모아서, 명성황후를 직접 모셨던 상궁들에게 확인을 부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 명성황후를 측근에서 모셨던 상궁들은 세간에 알려.. 카테고리 없음 2015.09.04
명성황후 사진의 진실2(외국 신문에 나온 명성황후 모습) * 외국신문 기사에 나오는 명성황후 모습 ​ <1903년 11월 28일, 러시아 신문 ‘노보예브레먀’(신시대)가 명성황후 초상화라고 보도한 삽화. 1895년 2월, 일본 사진잡지에 실렸던 '조선 궁녀'의 사진 중 얼굴 부분만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오른쪽 문서는 1903년 고종 즉위 40주년 축하사절.. 카테고리 없음 201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