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나였던 것들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엄마 손을 잡고 불이 난 건물 계단을 내려오던 나도... 산골짜기를 헤매며 사슴벌레를 잡던 나도...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나도... 흰 눈을 맞으며 펑펑 울던 나도 없다. 오직 그것들에 대한 기억만이 그것들을 '나'이게끔 한다 그런 기억은 삶을 비가역적인 무엇으로 만든다. 사랑이 불가역적인 반응인 이유도 기억(記憶)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이 남긴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른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대한 수많은 기억이 우리를 늙게 한다. '첫사랑'을 다시 할 수 없고, 첫 키스를 새로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그것을 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