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거의 매일 버스 막차를 타고 자정이 다 될 때 작업실에 도착한다. 집에 와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손을 닦고 '미루' 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옷도 갈아입지 않는다. 내겐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20년째 그렇게 해왔다. 4년 전 '미루'가 떠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는 습관(習慣) 같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갑자기 집에 와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공허함과 낯섦에 대한 불안, 습관이나 루틴을 부숴버릴 만한 용기가 내겐 아직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KBS TV에서 '2023. 빈 필하모닉' 를 방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미루' 밥상 차리는 일을 뒤로 미뤘다. 이런 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