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보면, 실상 우리 삶에는 괴로운 일도 또 즐거운 일도 없다.
다만 중립적인 어떤 일들이 자비(慈悲)로 '우리를 돕기 위해' 또는 지혜(智慧)로
'우리 정신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잠시 왔다가 지나갈 뿐이다.
즉 '자비'와 '지혜'의 목적으로 우리의 삶 위에 스쳐 지나가는 어떤 중립적인 경험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들은 바로 이 두 가지 즉 '자비'와 '지혜'를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지구별에 몸담고 있는 인간들이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뿐이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즐거운 일도 또 괴로운 일도 모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때문에 단순히 좋은 일과 나쁜 일,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다.
괴로움과 고통은 지혜와 성찰, 깨달음에 따라 '좋은 일', '더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숙제를 깨달으며,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는 겸손한 자세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즐거운 일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좋은 일'이다.
괴로운 일이 있다면, 고통을 통해 자신의 죄를 소멸하고 또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영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지게 되니 이 또한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고통과 괴로움도 각자 어떻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인간이 좋고 나쁜 모든 삶의 파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용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즐거운 일은 내가 선업(善業)을 지은 것을 받는 것이니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다.
나쁜 일과 괴로운 일은 악업(惡業)을 소멸하는 일이 되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악업을 녹여 없앨 수 있고, 정신의 지평을 한층 넓히며, 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처럼 생각과 깨달음에 따라 괴로움과 고통의 의미는 각자 다르게 느껴진다.
우주의 학교인 지구별에선 '고통 없는 영적 발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만 정신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또 영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고통과 괴로움은 더 좋은 일, 더 발전적인 일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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