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은 태음력(太陰曆)으로 새해의 첫 날을 뜻한다.
때문에 원일 (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이라고도 한다.
또 새해의 첫날이라 조심하고 근신하는 날이라 하여 신일(愼日)이라고도 일컫는다.
설날은 당연히 책력(冊曆), 즉 태음력과 연관이 있다.
태음력이란 달의 삭망(朔望) 즉 '차고 기울어지는 현상'을 기준으로 달의 변화를 따라
잡기 위해 만든 달력 체계를 말한다.
삭망(syzygy)은 달과 태양이 일직선이 될 때 나타나는데, 매달 두 번씩 발생한다.
이때 지구에 작용하는 달과 태양의 인력이 증가하여 고조위(高潮位)는 높아지고 저조위
(低潮位)는 낮아진다.
고대인들은 농사 등 계획을 잡기 위해 한 해를 규정하는 체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엔 정교한 관측기기가 없던 때인지라 밤하늘의 달 모습이 변하는 게 가장
확실하게 시간의 흐름을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태음력을 사용했던 이유이다.
달의 위상 변화 주기는 약 29.53일 정도이다.
달의 주기가 29일도 아니고, 30일도 아니므로 음력의 각 달은 29일과 30일짜리가 계속
반복된다.
이때 12달을 만들 경우 1년이 354일, 즉 11일씩 부족하기 때문에 19년마다 윤달을 7번
넣게 된다. 때문에 매년 음력 설날 날짜가 각각 다른 것이다.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더 부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차이일 뿐이다.
서양 태양력(太陽曆)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았다.
겨울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마지막 달의 끝으로 잡아서 낮이 점차 길어지는 시기의
시작을 새해 1월로 정했다.
때문에 언뜻 보기엔 태양력이 태음력보다 정확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태양력 역시 태음력과 마찬가지로 윤년과 윤달 등으로 오차를 맞춰야만 한다.
동양 태음력의 경우, 태양의 움직임과의 오차 때문에 계절과 일치하지 않는 걸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편이 바로 24절기이다.
입춘(立春), 소한(小寒), 동지(冬至), 대설(大雪) 등의 24절기는 농사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표지판 같은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태음력 달력은 한 해 날짜의 흐름을 알려주는 도구였고, 24절기는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체계였다.
《삼국지》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飲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은력 정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라 안에서는 대회를 열어
연일 음식을 먹고 춤을 춘다. 이 제사를 영고(迎鼓)라고 한다.
이때는 형벌을 행하지 않고, 죄인을 석방한다.)
은력(殷曆)이란, 중국 한대(漢代) 초기까지 사용되던 은나라 역법 6개의 음양력 중 하나를
말한다.
은나라 역법인 은정월(殷正月, 은력 정월)은 지금의 음력 정월 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의 음력 12월이 당시엔 은정월이었다.
그러나 당시 부여(夫餘)는 이미 은력(殷曆)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기록에 나오는
정월(1월)의 설날은 지금의 음력 1월 1일 설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의 기록은 《후한서(後漢書)》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기록들을 살펴볼 때, 우리나라가 그 당시 이미 나름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다.
이는 여러 사료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文武王) 대 기록에는 신라가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신라 때는 독자적인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
이를 볼 때 우리 민족은 단순히 중국 역법의 모방에만 그친 게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나라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됐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래로부터의 우리나라 설날 풍속은 역사적인 여러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다.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史書)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 설날)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고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들을 모아 회연(會宴)을 했으며, 또 이날 일월신
(日月神)을 배례한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 '제사(祭祀)' 편에는 백제 8대 왕 고이왕(古爾王)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고, 백제 제9대 왕 책계왕(責稽王) 2년(287) 정월에 고구려
시조인 동명왕(東明王) 사당에 배알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신라에선 제36대 왕인 혜공왕(惠恭王) 때에 오묘(五廟 :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祖父와 父)를 제정한 이후, 1년에 6회씩 성대하고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에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포함돼 있는 것을 볼 때, 당시 이미 설날 풍속이 형성돼
있었음을 유추할 수가 있다.
고대엔 설날을 해와 달과 별이 '사계절을 처음 운행하는 때'라고 인식했다.
또 봄이 시작되는 날이며, 만물이 생장을 시작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조선 제 22대 왕 정조(正祖)의 국정 일기인 《일성록》을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매년 설날 아침에 농사를 장려하는 윤음(綸音)을 내리는 것은
제때에 미리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시키기 위함이다.
조선시대의 설날 풍습은 순조 때의 학자인 홍성모(洪錫謨)가 지은 대표적인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志)》
등을 통해 살펴볼 수가 있다.
우리나라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이 되면, 조정에서는 의정대신(議政大臣)인 영의정과
우의정, 좌의정이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렸다.
또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에 나가 임금에게 조하(朝賀)를
올렸다.
뿐만 아니라 8도의 관찰사나 병사(兵使), 수사(水使), 그리고 각 주의 목사(牧使)들 역시
전문과 방물(方物)을 왕에게 바쳤다.
여염(閭閻)에선 새벽에 떡국을 끓여먹었으며, 사당에 제를 올리는 차례(茶禮)를 올렸다.
또 설빔으로 새 옷(歲粧, 歲庇廕)을 입었다.
그밖에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歲拜)를 올린 뒤 덕담을 들었으며, 시절 음식을 대접하는
세찬(歲饌)을 행했다.
이때 마시는 술을 세주(歲酒)라고 불렀다.
또 한 해의 소망을 붓으로 써서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풍속도 있었다.
윷놀이와 널뛰기도 설날에 온 백성이 즐겨하던 풍속이다.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은 근대에 들어서며 격동의 세월 속에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1895년 고종 때 발생한 을미개혁 때엔 우리 역사상 최초로 태양력 사용이 공식화됐다.
대한제국 시절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이 계속
장려됐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대다수가 음력설인 구정(舊正)을 설날로 쇠었다.
결국 1985엔 설날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공휴일로 삼았다.
1989년부터는 음력 1월 1일을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설날'로 정식으로 복원하면서 설날
전후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설'의 어원(語源)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보는, '살'이 '설'로 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머리'가 '마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두 번째로는 "장이 선다."와 같이 쓰이는 '선다'의 '선'에서 '설'이 왔다는 견해이다.
세 번째로는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에서 '설'이라는 단어가 왔다는 설이다.
네 번째로는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첫 번째 두 번째 어원에 따른 '설'의 의미에선 '새해 새 날이 시작된다'
는 의미를 찾을 수가 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견해에선 설날을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愼日)'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가 있다.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엔 신독(愼獨)하게, 그리고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면서
경건하게 지내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블로그에 '설날'에 관한 글을 쓰면서 설날을 맞이했다.
독자들도 의미있는 설날 명절 연휴를 보내기를 바란다.
정관 김시연 작가
* 김시연 작가의 주 블로그는 네이버(Naver)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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