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vember는 숫자 9(nine)를 나타내는 라틴어 Novem에서 유래됐다.
고대 로마에서는 1년이 10달로 되어 있었다.
March가 한 해의 시작이었다.
당시엔 지금의 11월(November)이 9번째 달이다.
그래서 November를 '9번째 달(the ninth month)'이란 의미로 novembris 또는
november mensis라고 불렀다.
그 후 2달이 추가되고, 1년의 시작이 March에서 January로 옮겨져 1년은 12달이 됐다.
11월(November)은 그레고리曆(Gregorian calendar)에서 11번째에 해당하는
달이다. 그레고리력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양력을 뜻한다.
1582년 10월 4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종래에 사용되던 율리우스(Julius)曆,
즉 태음력(太陰曆)을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만들었다.
율리우스曆은 기원 전 46년, 율리아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제정했던 책력이다.
교황이 책력을 태양력으로 바꾼 것은 율리우스력보다 좀 더 천문학적으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이다.
율리우스력에서는 400년 동안 윤년을 100회 두었다.
그러나 그레고리력曆에서는 총 97회의 윤년을 두어 태양의 위치와 책력이 더 정확히
맞도록 정밀한 계산을 했다.
율리우스력은 4년마다 2월 29일을 추가하는 윤년 계산 방법을 두었다.
이 경우, 한 해의 길이는 365.25일이다.
때문에 천문학의 회귀년 365.2422일보다 0.0078일(11분 14초)이 길어서 128년에
1일의 편차가 생겼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율리우스력의 400년에서 세 번의 윤년을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편차를
줄였다.
이에 그레고리력에서는 1년이 365.2425일이 되어 천문학 회귀년보다 0.0003일(26초)이
길고, 약 3300년마다 1일의 편차가 생기는 등 훨씬 정교한 책력이 만들어졌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가 그레고리력, 즉 양력(陽曆)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엔, 모든 국가가 동시에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 국가들은 그레고리력 제정 후, 1년 만에 대부분 이 역법을 시행했다.
허나 개신교 국가들은 카톨릭에 대한 반발과 종교적 이유 때문에 18세기 초까지
율리우스력을 고수했다.
정교회(正敎會) 국가들은 20세기 초까지도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
영국은 1752년 9월 2일 다음날을 9월 14일로 하면서 그레고리력(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러시아는 혁명 직후인 1918년 1월 31일 다음날을 2월 14일로 하면서부터
그레고리력을 채택했다.
한국은 1895년 10월 26일(음력 9월 9일) 을미개혁 후, '김홍집 내각' 때 같은 해인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하면서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
문자가 없는 대신, 자연과 사물에 대한 성찰과 통찰이 깊었던 인디언들은 11월
(November)을 어떻게 불렀을까?
*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크리크 族)
*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체로키 族)
* 강물이 어는 달 (히다차 族, 북부 아라파호 族)
*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테와 푸에블로 族)
* 어린 곰의 달 (위테바고 族)
* 기러기 날아가는 달 (카이오와 族)
* 꽁꽁 어는 달 (아니시나베 族)
*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아라파호 族)
* 서리 내리는 달 (아시니보인 族, 무스코키 族)
* 샛강 가장자리가 어는 달 (샤이엔 族, 크리 族)
* 사슴이 발정하는 달 (샤이엔 族)
* 짐승들 속털 나는 달 (호피 族)
* 아침에 눈 쌓인 산을 바라보는 달 (위쉬람 族)
* 큰 나무 어는 달 (마운틴 마아두 族)
* 눈 내리는 달 (클라마트 族)
인디언 아라파호 族은 11月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다.
아직 12월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전 세계에 조롱거리가 됐다.
강의 시간에도 한숨과 개탄이 이어졌다.
담당 교수는 며칠 전 일본 학자가 한국을 방문했는데, 일본에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한데, 고대(古代)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21세기에 이런 황당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일본 학자로부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담당 교수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즈(NYT)에서 비교했던, 최면으로 러시아를 파멸의 길로 이끌고 간 요승(妖僧)
라스푸틴 얘기도 20세기 초에 있던 일이다.
21세기에 우리나라처럼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하늘의 셈과 인간의 셈은 다르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 혈세를 개인의 돈처럼 마구잡이로 도적질해 대한민국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온 국민을 집단 우울증과 집단 화병에 시달리게 한 저들이 지금 당장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마감 뉴스에서 몇 시간 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렸던 피의자가
조사 직후, 곧바로 모든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건 결코 정상적인 멘탈이 아니다.
저런 멘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와 국민을 상대로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정리하고 가면 서로에게 좋겠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언젠가 때가 되면 그동안 지은 죄업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온 국민의 분노와 원망을 사고 또 불특정 다수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으므로 가장 적당한
때에 하늘과 인간 법의 엄중한 처벌이 내려질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정심(平靜心)을 찾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11월엔 부디 상처로부터 치유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되며... 선한 사람들에게 신(神)의
자비와 가호(加護)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김시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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