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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正祖) 3, 왕과 풍속화

아라홍련 2015. 9. 21. 21:12

 

    

 

 

           조선의 풍속화(風俗畵)는 정조(正祖) 에서 가장 발달하고 빛을 발했다.

             이는 문예에 대한 정조의 심중이나 지침과 연관이 있다.  ​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 풍속화를 대표하는 화가로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과 함께 꼽히는

             사람이 바로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이다.

              당신은 혜원의 풍속화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는가?...

              나는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들이 생각난다.

              ... 욕망... 유흥... 색정(色情)... 에로티시즘... 관음증... 본능...사회 비판...

              신분 갈등... 그리고 당대의 풍속(風俗) 등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기방(妓房)이나 기녀(妓女)와 관련된 풍속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혜원의 그림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 풍속을 한국적인 멋으로 표현하되 그림 속에 다의적이고 복합적인

              비밀들을 숨겨놓았다. 

              그래서 그림을 해석하면 수백 년이 지나 지금도 많은 비밀과 정보들을 유추해 낼 수가

              있다. 

              당대의 유흥 문화와 에로티시즘은 물론, 기방과 기녀, 기녀와 기부(妓夫)와의 관계,

                   심지어  당시의 천문(天文) 상황까지 분석이 가능하다. 

              혜원의 집안은​ 전통적인 화원(畵員)의 집안이다.

              무려 5대를 잇는 화려한 화원 가문이다.  

         아버지 '신한평은' 4대에 이어 도화서 화원을 지낸 화원 가문의 적손(嫡孫)이다.

              아버지 신한평은 영조대부터 활동한 <자비대령화원>으로 왕의 어진을 그린 바 있고, 

              관직을 제수받을 만큼 역량있는 화원이었다.

              그러나 정조(正祖)대에 ​들어서는 그림을 잘못 그렸다고 유배까지 다녀오는 수모를 겪었다.

              왕의 그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처벌 이유를 볼 때, 정치적 인 징벌로 짐작된다.

              이는 신한평이 순조대에 와서는 다시 평가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그림 활동도 활발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관계는 이미 20대부터 이루어지고 있음이 기록으로 확인된다.

                         

              혜원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그림을 자신이 관찰자적 입장에서 사실 그대로 그렸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그린 기방(妓房)이나 기녀(妓女) 관련 풍속화들을 보면, 관음증을 가진 화가가

              모두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혜원의 그림들은 만일 기녀들과 양반들의 만남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결코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술사를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신윤복이 ​기부(妓夫)였을 것으로 추정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대해 동감한다.

              그럼 혜원의 그림 속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어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 신윤복, 국보135호, 紙本彩色 (28.3 X 35.2센티), 간송미술관>

  

       조각달이 낮게 뜬 밤 담 모퉁이...

         쓰개치마를 다소곳이 쓴 여인과 호사스런 옷차림의 남자가  등불에 의지해 밀회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혜원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19세기 초에 그렸다고만 추정될 뿐, 그동안 정확한 제

         연도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천문학(天文學, astronomy)의 쾌거로 인해 몇 년 전에 미스테리가 풀렸다.

 

            이 해답을 찾는데 있어서의 단서는 놀랍게도 이다.

         그림에 그려져 있는 로 월하정인도가 그려진 날자와 시간까지 정확히 찾을 수 있게 됐다. 

         조선에 존재했던 유명 화가들의 그림 중에, '월하정인도'에 나오는 모양의 달이 그려진 그림은

         없다.

         때문에 그동안 연구자들은 '월하정인도'에 나오는 달 모양은 초승달을 혜원(蕙園) 잘못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일상적으로 밤에는 태양이 없어서 달의 볼록한 면이 위를 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밤에는 달의 볼록한 면이 아래를 향한다.

         달의 볼록한 면이 지평선과 약간의 각도를 가지고 옆으로 놓이게 되기 때문에 '월하정인도'의

         그림처럼 달의 윗부분만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림 속의 조각달 모양은 월식(月蝕)이 일어난 경우에만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월식이란 태양과 지구, 달이 일직선상에 놓여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림 속 달의 모양은 개기월식일까, 부분월식일까?...

         천문학적으로 월하정인 속 달의 모양을 분석하면 개기월식이 아닌,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아랫 부분만 지나가는 부분 월식의 조각달 모양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반면에, 여름철 한밤중에 일어나는 기월식은 지평선과 작은 각도로 진행된다.

         달의 왼쪽부터 가려져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림 속 달의 모양처럼 윗부분만 보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윤복이 진짜 저런 모양의 달을 보고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추정한 뒤, '월하정인도'에 그려진 

         달에 대한 추적을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바로 천문학자가 '월하정인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다.  

         신윤복은 이 그림을 그린 다음, 밑에다 이런 글을 남겼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

                       

       이 시구(詩句)는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주은(酒隱) 김명원(金命元)지은 시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신윤복이 활동한 정조 대에도 대유행하며 가장 유명한 연애시로 꼽혔다. 

         신윤복은 두 사람의 밀회를 몰래 지켜보며 문득 이 시를 생각해냈고, 이 그림를 화제(畵題)

         삼았다.

         혜원은 한밤중에 밀회를 즐기는 연인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림 속에 적힌 시간은 야() 3경()이다.

         이는 자시(子時)로, 밤 12시를 전후한 시각이다.

         달이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데, 달이 처마 끝 정도로 낮게 걸려 있다는 건 보름달의 남중고도가 낮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뜻이다.

         보름달은 태양의 반대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남중고도가 높고 여름에는 낮다. 

         그렇다면 남중고도(南中高度)란 무엇인가?...

         남중고도란, 천체가 자오선(子午線)을 통과할 때의 고도를 말한다.

 

         천문학자들은 신윤복이 활동한 시기인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간

            일어난 월식(月蝕) 중, 한양에서 관측 가능했던 부분월식을 기록에서 찾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록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100년 간 딱 두 번 월식이 있었다.

         1784년 8월 30일(정조 8년)과, 1793년 8월 21일(정조17년)이었다.

         조선시대엔 일식() 월식(月蝕)을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천문학적 현상으로 여겨

         세밀히 관찰해 모두 빠짐없이 기록했다.

         <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물론, 천문과 지리, 역수()기후관측()전담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도 기록을 남겼다.    

         천문학자가 정조 때 기록을 찾아보니, 1784년의 부분월식 때는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한양에 3일동안 연속으로 비가 내려 월식을 관측할 수 없었다고 기록돼 있다. 

         한데 그로부터 9년 후인 1793년에 8월 21일(음력 7월 15일)에 발생한 부분월식 때는 

          달랐다.

         오후까지 비가 오다 그쳐서 월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고 적혀있다.

         <승정원일기> 원전(原典)1719 책에는 정확히 이렇게 기록돼 있다.

 

                               7월 병오(15일) 밤 2경에서 4경까지 월식(月蝕)이 있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이를 컴퓨터로 재현해 보았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해 본 결과, 1793년 8월 21일 자정 무렵 달의 고도는 약 40도로

         나타났다. 북극성의 고도와 비슷한 정도였다.

         물론 달과 함께 그려진 처마와 담벼락의 고도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관측자가 앉아있었다고 보면, 40도 정도의 고도에 위치하는 달은 충분히 그림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처마의 고도가 서 있는 사람에게는 낮아보이지만, 앉아있는 사람에게는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을 보는 화원(신윤복)이 건너편 담벼락 아래에서 낮은 자세로 몰래 숨어 이

         광경을 스케치 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각도이다. 

         당시 상황을 컴퓨터로 재현해보니, 놀랍게도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에 나오는 달 모양과

         똑같은 달이 나타났다. 

                   

                              <* 1793년 8월 21일 밤, 한양에는 부분월식이 관측됐다.

                                    사진 제공: 이태형 교수(충남대 천문학과)>

       

          정말 월하정인도에 나오는 그림과 똑같이 일치한다.

          바로 천문학(天文學)이 이룬 쾌거이다!  

          수백 년 동안 미궁에 빠진 국보 그림 '월하정인도'의 나이를 드디어 한 천문학자가 찾아낸

          것이다.

        월하정인도 1793년 8월 21일(음력 7월 15일) 있던 부분 월식 때, 자정쯤 그려졌다.

          정조 17년, 신윤복의 나이 35세 때의 일이다.

        혜원 신윤복은 풍경이나 사람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달을 잘못 그렸다고 주구장창 잘못 알려져 왔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결국 한 천문학자가 천재화가의 누명을 벗겨준 셈이 됐다.   

 

          신윤복이 그린 그린 야금모행(夜禁冒行)이나 월야밀회(月夜密會), 정변야화(井邊夜話)

          같은 그림에는 어김없이 달이 그려져 있다.

          현대 천문학이 미궁에 빠진 국보 그림의 나이와 그림 그려진 시간을 알아내는데 매우 

          설득력 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처럼, 천문학을 이용하면 옛 그림에서 많은 정보들을 찾아낼

          수가 있다.

          실제로 신윤복의 그림 속에 나오는 달을 분석하면 그림을 그린 시간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다.

 

 

          

                        <야금모행(夜禁冒行), 혜원전신첩, 국보 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야금모행'이 그려진 때의 시간은 언제일까?

                지체높은 양반이 한겨울 새벽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기녀를 데리고 기방을

                나서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달은 그믐달이다. 

                겨울철 그믐달로 추정해 볼 때, 야금모행을 그린 시간은 대략 새벽 3시~4시 사이로

                추정이 가능하다.

 

             

                           <월야밀회(月夜密會), 신윤복, 국보 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이번엔 '월야밀회'가 그려진 시간을 알아보자. 

           인적이 끊어지고 보름달만 휘영청 밝게 비치는 야밤중...

           골목길 후미진 담그늘 아래에서 무관복 차림의 남자와 한 여인이 애절한 눈빛으로 밀회를

           즐기고 있다. 

           또 한 여인은 담모퉁이를 도는 곳에 몰래 숨어서 서늘한 눈길로 이들을 훔쳐보고 있다.           

           그렇다면 '월야밀회'를 그린 시간은 언제쯤일까?...

           단서는 이 그림에 낮게 그려져 있는 보름달이다.

           달의 위치로 볼 때, 보름달이 낮게 뜬 저녁이나 새벽쯤의 상황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이 밀회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인정(人定)이 훨씬 지난

           새벽쯤의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정변야화(井邊夜話), 신윤복, 국보 135호, 蕙園傳神帖, 간송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신윤복의 정변야화(井邊夜話)이다.

         '우물가의 밤 이야기'라는 뜻이다.

         우물 뒤쪽의 암벽과 바위 벽 사이사이에 낀 이끼, 절벽 위의 고목 등걸과 무성하게 웃자란 

         나무숲들이 몽환적으로 보인다.

         장소는 우물가로,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수종이 다른 노란꽃들도 화려하게 만개해 있다.

         둥근 달이 둥실 떠있는 야밤... 

         일하던 두 여인이 우물가에서 대화 나누는 걸, 사방관을 쓴 지체 높은 양반이 담장 밖에서 

         은밀한 눈빛으로 꼿꼿이 선 채 지켜보고 있다.

          복숭아꽃이 피는 시기가 4월 말에서 5월 초이니, 때는 봄으로 추정된다.      

         달의 위치로 볼 때는 보름달낮게 뜬 것으로 보아 저녁이나 새벽쯤의 상황으로 추측되지만,

         한 여인이 우물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저녁 8시쯤으로 보는게 더 설득력이 있다.     

         위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혜원 '신윤복'은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대부분 몰래 숨어서 대상을 스케치 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그림을 그린 신윤복의 시각에 관음적인 면이 강하게 담겨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이다.    

         혜원(蕙園)은 달의 모양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의 그림들 중에서 달 모양을

         분석하면 그림을 시각들을 추정해낼 수가 있다.

         혜원 신윤복이 그린 그림의 천문학적 분석이 가능한 것은,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사물을 사실 그대로 그리는' 진경산수(眞景山水)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      정조(正祖)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통해 여염(閭閻)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과 풍속을 접하려 애쓴 것은, 치세(治世)를 위한 한 방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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