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祖)가 그린 국화도(菊花圖 ), 보물 744호>
* 정조는 시문(詩文)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재능이 뛰어났다.
가로 51.3cm, 세로 86.5cm의 이 그림은 화면 왼쪽에 치우쳐 그린
바위와, 풀 위에 세 방향으로 나 있는 세 송이의 들국화를 그렸다.
돌과 꽃잎은 묽은 먹으로, 국화 잎은 짙은 먹으로 표현해 구별했는데
이런 농담(濃淡) 및 강약(强弱)의 조화를 통해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꾸밈이나 과장 없이 화면을 처리한 점은, 다른 화가 그림에선 찾아
볼 수 없는 특징이다.
파초도(芭蕉圖)와 함께, 몇 점 남지 않은 정조의 그림이다.
조선 회화사(繪畵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정조(正祖)가 그린 파초도(芭蕉圖), 보물 제 743호>
* 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蕉圖)는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렸다. 이 그림은 가로 51.3㎝, 세로 84.2㎝ 크기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먹색의 짙고 옅은 정도 및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잎의 변화를
잘 표현했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號인 ‘홍재(弘齋)’가 찍혀 있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글씨와 그림,
그리고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파초도는 남종화(南宗畵)의 세계를 보여주는 '국화도'(보물 제744호)와
함께 조선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정조(正祖)가 8세 이전에 쓴 한글 편지로.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필체가 어린아이가 쓴 듯 서툴고, 행과 열이 들쑥날쑥하다.
편지 끝에 원손(元孫)이라고 쓴 것을 볼 때, 세자 책봉 이전인 1759년 2월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상풍의 긔후 평안O신 문안 아O고져O라오며 뵈완 디 오래오니 섭〃
그립O와 OO다니 어제 봉셔 보O고 든〃 반갑O와"
(중간에 ~ 표시는 반복되는 글자에 대한 생략 표현이다.
즉 '섭~'은 "섭섭"을, '든~'은 "든든"을 뜻한다.)
(해석)
"상풍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을 알기를 바라며 뵈온 지가 오래되오니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봉서(편지)를보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옵니다."
<어린 시절 정조가 연습한 글씨들>
<정조가 어린 시절 쓴 글씨>
<41세이던 정조가 1793년 12월, 외숙부인 안국동 홍참판댁에 보낸 한글 편지.
가는 붓으로 쓴 편지의 글씨는 단정하고 힘차다. 외숙모인 여흥 민씨의 안부를
묻는 내용과 함께 선물을 보내는 품목이 기재돼 있다.
정조는 편지 위에 쓰여있는 대로 인삼, 쌀, 솜, 전복, 광어, 생대구, 청어, 꿩,
곶감, 새우, 꿀, 그리고 돈 100냥을 보냈다.
세간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정조는 어려서부터 재위 내내 외갓댁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외숙모인 여흥 민씨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정조가 원손 시절부터 재위 22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 등을
모아 만든 ‘정조 어필 한글 편지첩’이 작년에 공개됐다.>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를 앞두고 지은 祝詩>
<정조가 고종사촌이자 추사 김정희의 할아버지였던 김이주 집안에 보낸 편지.
유기(鍮器)를 실어보낸다는 내용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옥션 '단'에 경매로 나왔던 어찰첩(御札帖)에 있다.
여기엔 정조가 김이주, 김노영 부자에게 보낸 편지 40통이 들어있다.
1790~1797년에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은
내용은 세찬(歲饌)으로 해마다 인삼,호피, 갑사(甲紗),먹, 부채, 달력 등을
얼마만큼 보낸다는 것이다.
별다른 인사말 없이 "풍기인삼 한 냥, 강화 인삼 세 냥, 호랑이 가죽 한 장,
사슴 가죽 한 장, 솜 여섯 근, 백반 열다섯 근, 후추 여섯 말"처럼 목록만 달랑
적어 보낸 것도 있다. 정조의 꼼꼼한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