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만에 Yuhki Kuramoto와 Secret Garden의 음반을 집중적으로 들었다.
일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서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에스프레소 한 잔을 진하게 내려서 베란다로 나갔다.
창 밖을 바라보니 신록(新綠)이 창창하다.
얼마 전까지 내 작업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은 온통 꽃 천국이었다.
다른 곳보다 늦게 피는 진한 핑크색 왕 겹벚꽃이 다른 곳과는 격이 다른 위엄을
자랑했다.
한데 지금 밖을 내다보니 꽃은 많이 사라지고, 대신 녹음방초(綠陰芳草)가 짙다.
이 나이쯤 되면 자연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우주의 질서와 삶의 교훈을 느끼며,
사유의 폭을 점점 넓히고, 또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야 하는 때이다.
더구나 오늘은 화려한 5월의 공휴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침부터 작업실에 틀어박혀 계속 책을 읽으며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러니 심신이 고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온전히 휴식을 취하며 충전해야 하는데, 이건 뭐 주말도 없고
공휴일도 없다.
탈진을 치료받으러 병원가는 것 빼고는 종일 책에 파묻혀 산다.
나는 유명한 활자 중독자이자 공부 중독자이다.
보통 사람들이 읽는 책보다 훨씬 다양한 책을 읽고, 책의 수준도 높고 또 까다롭게
선택한다.
작가들도 나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평생을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 왔건만, 요즘 생활은 그런 나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극번(劇繁)하다.
젊은 사람들도 쉽게 시도하지 못할 만큼, 고된 일이다.
그러니 이 늙은 작가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 무거운 짐을 매일 들고 다니고, 하루종일 책 읽고, 공부하고, 노트북 자판기 두드리고...
그러다가 결국 어제는 넘어져 손가락을 다쳤다.
물이 닿을 때마다 통증이 극심하다.
빨리 아물어 모쪼록 흉터 없이 잘 가라앉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지친 나를 아름다운 선율이 위로해준다.
작업실에 만발한 꽃들은 복욱(馥郁)한 향기로 나를 위로한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 하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찌 해야 할까나.
등산도 가고 싶고, 마라톤 대회도 참가하고 싶고...
그런 소박한 꿈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는가?
아!
이런 생각할 시간도 없다.
다시 공부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