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태어난 자리를 억울해하는 생명이 없다.
어느 곳이건 숲은 숙명(宿命)의 증거들로 지천입니다.
나무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머무는 이 숲에는...
아주 특별한 수형(樹形)을 지닌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여느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가지를 좌우로 거의 180도쯤 꺾고, 다시 전방으로 90도쯤
꺾은 채 자라는 모습입니다.
대략 20여 년쯤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제 어미 나무에서
발아해 처음에는 거의 온종일 햇빛을 받을 수가 있었겠지만...
이 나무가 자라면 자랄수록 어미 나무의 그림자가 생장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 나무의 수형이 그토록 특별한 것은, 빛을 찾아 이리저리 자신의
줄기를 꺾으며 삶을 계속한 고난과 투쟁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
입니다.
식물 대부분은 이 나무처럼 양분과 빛을 놓고 어미와 다투며 살아야
하는 몹쓸 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종자를 자기로부터
멀리 내보내기 위해 큰공을 들입니다.
그러니 어미 밑에서 자라난 이 나무는 무척 가혹한 숙명을 안고
태어난 셈입니다.
식물에게 숙명(宿命)은 그런 것입니다.
씨앗은 오직 그 주어진 여건에서 발아를 통해 나무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처럼 부모의 몸을 빌려 어느 시간대에 태어나 그곳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힘겨운 자리에 태어난 억울함이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도 오랫동안 그런 분노을 안고 살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이 각자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숲은 그 생명체들이 숙명을 대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줌으로써,
오랫동안 내 가슴을 차지했던 억울함을 씻어주었습니다.
<'숲에서 길을 묻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