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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담배 예찬시

아라홍련 2015. 3. 18. 03:32

 

    

 

 

 

           조선의 왕 중에서 최고의 애연가(愛煙家)는 조선 제 22대 왕 정조(正祖)이다.

           단연 골초 중 골초로 꼽힌다.

​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약 400여 년 전인 광해군 때의 일이다.

           국내 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임진왜란 후인 16~17세기 경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연구를 한 학자들은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시기를 1608년~1616년 사이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조선에서의 담배 첫 명칭이 '담바고', '담파고', 즉 'tabacco'일본식 호칭의 변형어

           인 것만 봐도 이 추정은 상당 부분 설득력이 있다. 

            조선 중기 문인이자 석학인 이수(李睟光)은 1614년 쓴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남령초(南靈草)는 왜국(倭國)으로부터 들어왔다.

           ... 이렇게 기록했다.             

           한데, <인조실록> 내용은 조금 다르다.

           인조 16년 기록에는 담배가 1616~1617년 사이에 바다를 건너왔으며, 그 뒤 1621년과

           1622년 이후에 급속히 세간에 널리 퍼져 남녀노소, 상하를 불문하고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씨를  뿌리고 수확해 사람들이 서로 팔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기록돼 있다. 

           단기간에 담배가 얼마나 인기 폭발이었던지, 명칭도 실로 다양했다.

 

           남쪽에서 왔다고 해서 남초(南草)...

              신비한 약효가 있다고 남령초(南靈草)...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한다고 해서 연주(煙酒)...

           차()처럼 피로를 해소시켜 준다고 해서 연다(煙茶)...

           한번 맛보면 결코 잊을 수 없다하여 상사초(相思草)...

           근심을 잊게 해준다고 하여 망우초(忘憂草)...

           심심할 때 무료를 달래는 기호품이라고 해서 심심()불렸다.

           담배 명칭이 실로 다양하고, 담배 이름치고는 매우 낭만적이다.  

​       담배 원산지는 아메리카이다.

           담배의 존재가 인류에 알려진 시기는 15~16세기쯤이다.

           콜롬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담배가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원주민들은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남미의 '마야인'과 '아즈텍인'들은 담배를 신성시 해서 종교행사 때 담배 피우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       1558년엔 스페인 왕 필립 2세가 원산지인 남아메리카 중앙 고지대인 멕시코에서

           아예 담배 종자를 구해와 관상용과 약용으로 재배하면서 동양과 전세계로 전파됐다. 

           17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담배가 단연 최고의 기호품이었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는 담배가 상류층의 신분을 상징하는 기호품으로 각광받는 고가품

           었다. 

           조선엔 임진왜란 이후, 포루투갈과 교역을 하던 일본을 통해 담배가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담배가 조선에 들어온지 얼마 안 있어 가히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급속도로 민간에

           전됐다.

           남녀노소, 양반과 천민의 구분이 없었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몇 년 지나지 않아 곧바로 나타났다.

           <하멜 표류기>에는 "조선에서는 담배를 네댓 살부터 피우기 시작한다.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피워댄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얘기이다.  

           이를 볼 때, 당시엔 담배가 단순한 기호식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약효가

           있다고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통증 완화작용을 하는 치료제로 오인된 듯싶다.

           담배 명칭이 남초, 남령초, 연주, 연다, 상사초, 망우초, 심심초 등... 매우 낭만적인

           명칭으로 불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담배가 의약품을 대신할 만한 약초라는 그릇된 속설이 조선에 급속히 번진 것으로 보인다.

           왕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 최고의 애연가는 다름아닌 임금인 정조였다.

   ​

​       담배의 폐해가 계속되자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다.

           신하들은 상소를 올려 금연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       문제를 제기한 사람 중 한명이 바로 조선의 실학자이자 정조의 총신(寵臣)이었던 

           이덕무(李德懋)이다.

           이 블로그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조선의 진정한 활자중독자, 간서치(看書癡)

           유명한 이덕무 바로 그 인물이다.

           정조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뽑았던 서얼 출신의 대학자이다.                       

           정조의 엄청난 총애를 받았던 이덕무는 담배에 있어서만큼은 정조와 뜻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담배에 미친 세태에 대해 이렇게 개탄했다.

                          

                      어린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름다운 품행이 아니다.

                      골수를 마취하고, 혈기를 마르게 하는 것이며, 독한 진은 책을 더럽히고,

                      불티는 옷을 태운다.

                      ..........................................

                      혹은 손님을 대하며 긴 담뱃대를 빼물고 함께 불을 붙이는 어린이도 있는데,

                      어찌 그리 오만불손한가?

                      또는 어른이 매까지 때리며 엄하게 금하는데도, 숨어서 몰래 피우고 끝내

                      고치지 않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혹은 어린이에게 담배 피우기를 권하는 

                      부형들도 있으니 어찌 그리도 비루한가?

                      담배가 성행하는 것은 특히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신하들은 담배의 백해무익을 강력히 주장하며 금연법을 실시해야 한다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렸다.

           연암 박지원도 금연법 추진을 강력히 주장했다.

           담배 폐혜에 대한 논란은 이미 영조 때부터 있어왔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당시 유학자들간의 흡연 논쟁을 정리하며, 흡연으로 인한

           5가지 장점과 10가지 단점을 언급했다.

           결론적으로 담배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

           신하들의 빗발친 상소가 계속되자 애연가인 정조는 담배의 효용론을 일일이 열거하며 신하

           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급기야 <홍재전서>에 담배를 예찬하는 글을 남기고, 심지어 흡연을 장려하겠다고 천명했다.

 

 

           또 신하들에게 담배 정책안 제출을 지시하는 이런 책문(策問)까지 내렸다.

 

                 왕은 말하노라!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만한 게

                 없다.      

                 나는 어릴적부터 다른 기호품은 없었으나 오직 책 읽는 것만을 좋아하였으니,

                 연구하고 탐닉하느라 마음과 몸에 피로가 쌓인 지 수십 년에 책 속에서 생긴

                 병이 내 가슴 속에 항시 막혀 있어서, 혹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즉위를 한 이래로 책을 읽던 버릇이 일체 정무로까지 옮겨져 그 증세가

                 더욱 심해졌으므로, 그간 복용한 빈랑나무 열매와 쥐눈이 콩만도 근이나 포대로

                 계산하여야 할 정도였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보았지만 오직 이 남령초에서만

                 힘을 얻게 되었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

                 ............... 

                 쓰임에 유용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말하자면, 담배가 차나 술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담배를 우리 강토의 백성에게 베풀어 혜택을 함께 하고,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한다.

                                                                      <홍재전서> 권 52, ​책문 5, 남령초.

                                                                   

           참으로 눈물겨운 담배 예찬론 아닌가?...

           정조의 맞불작전을 보면, 강골(強骨)도 이런 강골이 없다.  

​       <정조 어찰첩>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정조에 관련된 여러가지 이해 못할 정황들이

           많았다.

           그러나 노론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많은 편지들이 공개되면서, 정조의 성격적인 부분이

           상당 부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정조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볼 때, 정조처럼 노골적으로 흡연을 권장한 군주는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담배를 몹시 싫어했고, 워터 로리가 흡연의 원조가 된 영국의 제임스

           1세는 흡연을 야만인의 소치로 보고 중과세를 내렸다. 

           또 교황청에서도 금연령을 내렸고, 터키의 술탄 4세는 담배로 인한 화재를 빌미로

           흡연자들에 대해 미행 수사를 벌여, 발각된 자는 교수형에 처하는 등 강력 조치했다.

           지독한 끽연자(喫煙者)이자 독주인 삼중소주(三重燒酒)를 즐겨 마시고, 왕이 신하들을

               직접 가르치는 친림시강(親臨施講)과, 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

           행하는 등 격무에 시달린 정조는 결국 보령 49세에 승하했다.

    

           정조의 아들인 조선 제 23대 왕 순조(純祖)는 부왕의 영향 때문인지 금연했다.

           또 담배에 대해서도 줄곧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했다.

           순조는 금연법을 여러번 실시하려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렇게 개탄했다.​

 

                 근래에 이르러서 담배 피우는 속습이 이미 고질이 되어, 남녀노소를 논할 것

                 없이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 겨우 젖먹이를 면하면 으레 횡죽(橫竹)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세상에서 더러 '팔진미는 폐지할 수 있어도 남초는 폐지할 수 없다.'고 하니, 

                 비록 금하고자 하나 이유가 없을 따름이다.   

 

         ... 격세지감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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