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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지도,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아라홍련 2014. 11. 15. 04:28

 

 

 

 

 

 

 

 

 

 

 

 

 

 

 

 

 

 

 

 

 

 

 

 

 

 

 

 

 

 

 

  

              이 지도는 고종 代인 1884년에 제작된 서울 지도이다.

              129년 만인 작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밀워키 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 도서관>에서 

              옛 모습 그대로 발견됐다.     

 

              이 지도의 이름은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이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깃발들도 오행의 방위 표시에 따라 각각 고유한 색깔로 만들었다.   

              앞서 포스팅에서 이미 언급했듯, 오색 무지개, 오방북춤, 오방색, 오간색, 오색경단, 오색

              약수, 오방떡, 오색온천, 오색다식, 오성(五星), 오감(五感), 오장(五臟), 오덕(五德) 등도

              모두 오행에서 유래된 말이다.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서울 사대문(四大門)과 북악산, 남산을 중심으로 압구정,

              영등포, 한강진, 용산, 노원, 안암동까지 현재의 지명들이 정확히 한글로 표기돼 있다.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지명을 보면 감탄이 절로 터져나온다.

              심지어 봉은사, 노량진, 영등포, 당산, 잠실은 물론,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용인과 시흥길,

              인천, 강화길, 가평길등 지금의 지명이 조선시대에 그대로 한글로 쓰여있다. 

              뿐만 아니다.​

​              셔빙고(서빙고), 살고지벌(살곶이, 뚝섬), 박석이 고지(박석고개), 방학곳(방학동), 밤셤

              (밤섬), 공덕이(공덕동), 이태원 등도 모두 1880년 대 <한글표기법>으로 기록돼 있다. ​

​              이는 지금 이 시대에 사용되고 있는 지명들이 거의 모두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에 쓰여졌던

              지명 그대로라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

              그렇다면 이 지도는 대체 누가 그린 것일까?...

              이 지도를 소장하고 있던 미국 위스콘신대 밀워키 도서관 부속 <미국지리사회학 도서관>

              에서는 이 지도를 그린 사람을 구한말 미국 대리공사를 지낸 조지 클레이튼 포크(Foulk,

              1856~1893)  해군 중위로 짐작하고 있다.

              포크 중위는 갑신정변 직전인 1884년, 미국 대리공사로 조선에 입국했다.   ​

              조선은 1882년 5월 22일, 인천 화도진에서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그 다음해인 1883년에 제물포항을 개항했다. 

              초대 미국 공사로 부임한 사람은 푸트(Lucius Haroaook Foote)이다.

              그는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참전한 장교였다.

              부임하는 미국 공사인 푸트를 태우고 온 전함 역시 강화도 전에 동원됐던 모노카시

           (Monocacy)호였다. 

              푸트가 특명 전권공사의 신분으로 제물포에 도착한 것은 1883년 5월 12일이다.

              5월 19일에 조약에 대한 비준서가 교환됐고, 이로써 한미 두 나라 사이에는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

              바로 이 해, 조선 제 26대 왕인 고종(高宗)은 '민영익'을 단장으로 한 일행을 보빙사

           (報聘使)로 미국에 파견했다.  ​                                                        

   

            <1883. 전권대신 민영익(閔泳翊), 부대신 홍영식(洪英植), 종사관 서광범(徐光範),

              수원(隨員) 유길준(兪吉濬)고영철(高永喆), 변수(邊燧), 무관 현흥택(玄興澤),

              최경석(崔景錫)그리고 미국인 퍼시벌 로웰>   (* 수원(隨員) : 수행원을 말함)

         

             그리고 다음 해인 1884년, (Foulk) 중위가 미국 대리공사로 조선에 입국한다.

             그렇다면 푸트 공사가 1883년에 조선에 입국했는데, 다음해인 1884년에 미 해군 중위인 

             포크가 미국 대리공사로 부임한 이유는 무엇일까?...

             <맨 위 왼쪽 사진은, 30살 무렵의 고종 모습. 경복궁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맨 위 오른쪽 사진은, 서울 정동의 미국 공사관에서 임시 대리공사인 조지 포크 

                  해군 중위가 통역관, 집사, 전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뒤쪽 발이 내려져 있는 건물이 정조 때 규장각이 들어있던 주합루(宙合樓)이다.

                 사진에 보이는 서양인과 여인은, 한국에 들어온 첫 개신교 선교사 알렌 박사

                 부부이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 주위를 걷고 있는 모습이다.

                 1884년 9월에 조선에 입국한 알렌 박사는 그 해 12월에 발생한 갑신정변 당시,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해 신임을 얻고 고종의 시의(侍醫)가 됐다.

                 왕실의 주치의인 셈이다.

                 1885년에는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