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言律詩
(칠언율시)
北來消息杳無因 북에서 오는 소식 묘연하니 의지할 곳 없어
白髮孤臣恨不辰 백발의 외로운 신하 시절이 불우함을 한탄하네
袖裏有韜摧勁敵 소매 속에는 육도가 있어 강적을 꺾을 수 있지만
胸中無策濟生民 가슴 속에는 백성을 구제할 방책이 없네
乾坤黯黲霜凝甲 천하는 어두운데 갑옷에 서리 어리고
關海腥膻血浥塵 바닷가 진에는 비린내나는 피 먼지를 적시네
待得華陽歸馬後 화창한 날 돌아오면 말타고 귀향한 후
幅巾還作枕溪人 복건쓰고 시냇물 벗삼는 선비로 돌아가리라
~* 이순신(李舜臣, 1545~1598) *~
* 이 詩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칠언 율시란... 한 구(句)가 일곱 글자씩으로 된 여덟 줄의 한시(漢詩)를 말한다.
이 詩를 보면, 오로지 풍전등화(風前燈火)인 국가와 백성만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이순신의
절절한 심정이 처연하게 잘 표현돼 있다.
왜란이 일어나자 나 몰라라 제일 먼저 도망친 선조와 조정의 관리들로부터는 소식이 묘연
하고...
낭길에 매달려 고통스러워하는 백성은 어찌 구제할 방책이 없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최전방 전장터에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한 늙은 장수를 절망
스럽게 만들고 있다.
소매 속에는 중국 주(周)나라의 태공망 여상(呂尙)이 지었다는 병법서인 육도(六韜)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왜적을 무찌를 수가 있다.
하지만 노동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곤고한 백성은, 남쪽에서 왜적과 마주보고 진을 치고 있는
장수로선 어떻게 민초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
이 비참한 상황을 어찌 해야 할까나...!
이 詩에서 충무공의 한탄과 절망감이 짙게 배어나오는 이유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바닷가 진지(陣地)에서는 연일 비린내 나는 피먼지를 적시고 있는 중이다.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지 진저리가 쳐질 정도이다.
전쟁이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
어서 전쟁이 끝나 핏빛으로 물든 이 산하(山河)에 다시 화창한 날이 돌아오면, 그땐 모든 걸
다 버리고 말을 탄 채 귀향하고 싶다...
고향에서는 이 참혹한 세상과 작별을 고한 뒤, 복건을 쓰고 시냇물을 벗삼는 선비로 유유자적
삶을 살아가고 싶다...
... 늙은 장수의 간절한 소망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마지막 해전(海戰)인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민족적 성웅(聖雄), 민족의 자존심으로 전설로 거듭났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李舜臣)!...
이 詩에서 도(韜)는 병법서(兵法書)인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준말이다.
육도삼략은 병서인 <무경칠요>의 두번 째 병서인 '육도'와 '삼략'을 이르는 말이다.
문도(文韜), 용도(龍韜), 호도(虎韜), 견도(犬韜), 무도(武韜), 표도(豹韜) 등... 전 6권 60편으로
구성돼 있다.
이순신 장군은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 손무(孫武)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병법서(兵法書)들을 다양하게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의 승리는 결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문관(文官)이 무예에 능하지 못하면, 심약하고 유약해진다.
반면에 무관(武官)이 공부하지 않고 무예에만 치중하면, 단순 무식해져 인간이 무모해진다.
결국 신념과 사상, 가치관, 판단력에 있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한쪽에 치우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조선 제 22대 王 정조(正祖)는 평소 신하들에게...
문무(文武)는 수레의 두 바퀴나 새의 두 날개처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문장을 아름답게 꾸밀 줄 알면서 활을 쏠 줄을 모르는 것은, 문무를 갖춘
재목이 아니다
... 이렇게 총신( 寵臣)들에게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중요성을 역설하곤 했다.
생각과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신념과 사상, 가치관, 판단력이 균형을 잡지 못해 결국
반편(半偏)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정조의 유시(諭示)대로 이순신 장군은 문(文)과 무(武)에 모두 뛰어났다.
그에게서 단순히 엄격하고 용맹한 장수로서의 느낌만 나는 게 아니라, 홍진세계(紅塵世界)를
초월한 듯한 느낌... 학자의 모습... 또 사상가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 이후, 우리나라엔 이런 민족적 리더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국민이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며, 민족적 성웅
(聖雄)으로 기리고 있다.
위의 詩는 내가 인정하는 강호의 고수가 번역했다.
한데, 그 밑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탁주한잔 마시면 더 좋은 시가 될것 같습니다.ㅎㅎㅎ
이 비장하고 슬픈 詩를 읽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은 정말 다양하고,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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