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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과 찬수개화식(鑽燧改火式)

아라홍련 2014. 7. 17. 17:47

 

   

 

 

   (異夢)에는 우리나라 소설 최초로 마조제(馬祖祭)와 함께 찬수개화(鑽燧改火式)이라는 

    국가적 행사가 나온다. 

    찬수개화는 '나무를 문질러 불을 바꾼다.'는 뜻이다.

    나쁜 불을 제거하여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의식으로, 하늘의 이치를

    받들어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애민사상(愛民思想)에서 나온 전통 의식이다.

    나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국가적 행사와 의식, 풍속을 알리기 위해

    이몽에서 <찬수개화식>을 언급했다. 

  

                    진선문 쪽에서 취라치의 요란한 북 소리가 들렸다.

                    깃발을 든 내병조 군사들이 돈화문을 향해 절도 있는 행군을 시작했다.

                    화려한 예복을 입은 군사들이 돈화문 2층 누각으로 올라가 큰북 앞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도열했다. 

                    열외로 빠져나온 한 병사가 황밤주먹으로 양손에 단단히 북채를 잡았다. 

                    그때 '쉬잉~' 소리와 함께 긴 꼬리를 단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북채를 잡고 있던 군사가 양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북을 두들겼다.

                    어디선가 편종 소리와 편경 소리도 명징하게 울렸다.

                    내병조 마당엔 왕을 비롯해 호위청대장인 국구와 삼공육경, 문무관료들이

                    비장한 얼굴로 찬수개화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북 소리가 멈추자 왕이 개화식을 알리는 은교(恩敎)를 내렸다.

                    취라치들이 길게 나각을 불자 중앙에 도열해 있던 군사들이 구령에 맞춰

                    화(樺)나무 껍질을 부싯돌에 힘껏 비볐다.

                    불씨가 일자 유황을 대고 불꽃을 일으켜 불꾸러미에 옮긴 뒤 관솔불을

                    만들었다.    

                                                             <이몽 2부, 255p>

 

 

   내병조에서는 매년 사철이 입절(入節)하는 날, 불씨를 바꿨다.

    즉 입춘일(立春日), 입하일(立夏日), 계하(季夏)의 토왕일(土旺日)과 입추일(立秋日), 입동일

    (立冬日) 등이다.

    토왕일은 오행에서 말하는 토기(土氣)가 왕성한 날로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각 18일 전 각

    18일 간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보통은 입추 이전 18일 간의 첫 날을 말한다.   

    새로운 불씨를 만들면 각 궁전과 관청, 삼공육경의 집과 여염(閭閻)에 나누어 주고, 오래된

    불을 끄게 했다.

    불씨가 오래되면 불꽃이 강해 거세게 이글거리기 때문이다.

    고래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기를, 양기가 지나치면 돌림병인 여질(癘疾)이 유행한다고 했다.

    태종 때부터 시작된 개화식은 국가 규범으로 자리 잡아 이를 어긴 자는 엄벌에 처해졌다.

    개화식이 언급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화령을 내렸다.

                예조에서 말하기를  "... 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영을 내려 경중에서는 병조에서,

                외방에는 수령들이 매양 사철이 입절하는 날과, 계하 토왕일에 각각 그 나무를

                문질러 그 철의 불씨로 바꾸어 음식을 끓이는데 사용하면, 음양의 절후가 순조롭고

                역질의 재앙이 없어져, 섭리하여 조화하는 일이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고 하였다.

                                  <태종실록 권 제11, 12장 뒤쪽, 태종(1406년) 6년 3월 24일>

 

                역질을 쫓기 위하여 포(砲)를 쏘는 것은 벽사()하는 것이니, 어찌 세시(歲時)에만

                할 것인가.

                사시(四時) 개화(改火)할 때에도 아울러 행하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역질을 쫓는 사람의 복색은 봄에는 푸르게, 여름에는 붉게, 가을에는 희게, 겨울에는

                검게 절후에 따라 바꿔 입게 하되, 세시에는 네 가지 색깔을 같이 쓰게 하라! 

                

                                             <연산군 일기 60권 11(1505년)년 12월 24일>  

   

    그 외 <성종실록>과 고종 때의 <승정원 일기> 등에도 개화식이 언급돼 있다. 

 

                                       

  

 

    조선시대에 불씨를 갈아주는 궁궐 행사인 개화식(改火式)은 중국 고대 제도인 주례(周禮)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주례는 주나라 관제를 분류해 설명한 내용으로, 중국의 국가제도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최고

    (最古)의 책이다.

    예기(禮記), 의례(儀禮)와 함께 삼례(三禮)로 일컬어진다.

    개화식은 고대부터 계절마다 불을 새로 만들어 쓰면 음양의 기운이 순조롭게 되어 질병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던 데서 기인한 의식이다. 

    천재지변과 전염병으로 많은 백성을 잃은 조선시대의 왕들은 개화식에 극진한 공을 들였다.

    하늘의 이치를 받들어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王은 불씨를 바꾸어 음양의 절후가 순조롭고, 역질과 재앙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음양을 조화롭게 다스려 하늘의 분노를 잠재우기를 고대했다. 

    태종 6년(1406년)에 예조(禮曺)의 건의로 개화령(改火令)을 내렸는데, 예조에서는 임금에게

    개화령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유(先儒, 선대의 유학자)가 말하기를 "불씨를 오래 두고 변하게 하지 아니하면,

              불꽃이 빛나고 거세게 이글거려 양기가 정도에 지나쳐 여질이 생기는 까닭으로,

              때에 따라 바꾸어 변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

              대개 불이라고 하는 물건은 사람에게는 더욱이나 상용되므로 그 성질에 따르지

              아니할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오래되고 법이 폐지되어 불씨를 바꾸는 법령이 오랫동안 행해지지 아니하며,

              음양을 고르게 다스리는 도리에 미진함이 있습니다. 

              원하건대, 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영(令)을 내려 한양에서는 병조에서, 지방에서는

              수령들이 매양 사철의 입절하는 날과 6월 토왕일에 각각 그 나무를 문질러, 그 철의

              불씨로 바꾸어 음식을 끓이는 데 사용하면 음양의 절후가 순조롭고, 역질의 재앙이

              없어져서, 음양을 고르게 다스려 조화하는 일이 갖추어지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태종실록 6년(1406년) 3월 24일>      

 

 

    때문에 찬수개화식은 병조(兵曺)에서 주관할 정도로 중요한 국가적 행사였다. 

    개화식은 내병조에서 실시했다.

    내병조는 궐내에 있는 병조의 부속 관아인 아문(衙門)이다.

    임금을 모시고 호위하는 일과, 의식에 쓰이는 무기와 도구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특히 내병조에는 키가 크고 건장한 20명의 군사가 있었다.

    이들은 채찍을 들고 궁궐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엄중히 살폈다.

 

              상선과 도승지가 금호문에 나타난 건, 술시(戌時)가 다 됐을 무렵이었다.

              채찍을 든 채 궐문을 지키던 엄장한 내병조 군사들이 기함해 예를 갖추었다.

                                                               <이몽 2부, 63p>

 

              마차는 해 저물녘 창덕궁 금호문 앞에 멈췄다.

              도열해 있던 내시부 고위관리들이 정중히 두 사람을 맞았다.

              수문병과 채찍을 들고 엄장하게 서 있던 내병조 군사들도 깊숙이 허리 숙여

              예를 갖추었다.   

                                                               <이몽 2부, 187p>

 

  

    내병조에서는 병조 주관으로 입춘에는 푸른 색을 상징하는 버드나무 판에 느릅나무로...

   입하(立夏)에는 붉은 색을 취해 살구나무 판에 대추나무로...

    토기가 왕성한 토왕일에는 황색을 취해 산뽕나무 판에 뽕나무로...

    입추에는 흰 색을 취해 조롱나무 판에다 졸참나무로...

   입동에는 검은 색을 취해 박달나무 판에 회화나무로...

    ... 이렇게 계절에 따라 각각의 방위 색에 따라 불을 만들었다. 

 

    한데, 왜 하필 나무를 문질러 불을 일으켰을까?...

    나무나 돌을 마찰시켜 불을 만드는 것은 석기시대 이래 인간이 불을 얻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나무를 비벼 새로운 불을 얻는 개화식은 원시시대의 전통이 조선까지 이어진 것이다. 

    돌이 아닌 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절기마다 그에 맞는 색깔을

    가진 나무를 사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새로운 불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것이어야 했으므로 고대부터 내려온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해 불을 얻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중요한 국가 행사이자 아름다운 의식인 500여 년 동안 전해내려 온 아름다운 풍속

    <찬수개화식>은 <마조제>와 함께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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