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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과 마조제(馬祖祭)

아라홍련 2014. 7. 17. 03:12

         

 

    이몽(異夢)에는 마조제(馬祖祭)란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가 우리나라 소설 최초로 등장한다.

 

                    "은성한 햇살이 잦아들자 주합루 뒷숲에 황혼이 슬픔처럼 내려앉았다.

                     숲속에 잠들어 있던 밤새들이 기지개를 켜며 웅비를 시작했다.

                     그 빈자리로 잘새들이 휴식을 위해 포르르 날아들었다.

                     마조제(馬祖祭)를 지낸 왕은 후원에 있었다.

                     말의 시조신과 말을 처음 사육한 사람, 말을 처음 탄 사람, 말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신에게 매년 지내는 제사이다."

                                                                                 <이몽 2부, 163p>   

      

    이몽에서 마조제와 계절마다 불을 바꾸는 찬수개화식(鑽燧改火式)을 언급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이자 문화유산을 소개하려는 작가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어떤 소설에도 나온 적이 없고, 이런 아름답고 고유한 역사 속의 행사를 아는 사람들이 관련자들

     외에는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몽에서는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적 고유한 행사와 풍속들을 소개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마조제(馬祖祭)는 말의 역병을 치유하기 위해 고려 때부터 하늘에 올리던 제사이다.

     말과 관련이 있는 천체는 바로 천마사성(天馬駟星)이란 별이다.

     이 별은 일명 '마조(馬祖)'라고 불리는 말의 조상으로, 말에 관한 모든 일을 좌우하는 별로 알려져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1276년(충렬왕 2년)에 元나라(몽골)로부터 말 160필이 들어와 제주도에 목장을

     개설 후, 몽골사람들이 체계적으로 말 관리를 했다고 나와있다. 

     이때 동(東)과 서(西) 아막(阿幕)에서 <마조제>를 지냈다고 기록돼 있다. 

​     '아막'은 중세 몽골어인 aimaq 또는 aiymor의 음역어(音譯語)이다.

      허나 더 오랜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마조제>를 지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 철종실록을 보면, 1852년 (철종3년) 제주도 이도 1동(현재 KAL 호텔 자리)에 마조단을 설치해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마조제'는 갑오개혁 이후, 1909년 칙령에 의해 폐지되기 전인 1908년까지 조선시대 내내 이어지던 

     중요한 국가행사 중 하나였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말 관리와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마의(馬醫)와 말을 위한 전담 무속인인 

     무마(巫馬)까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말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한 국가 제사로 4가지가 있었다.

 

     첫째,  마조(馬祖祭) 

              말의 조상인 시조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하늘의 28 별자리 중 하나인 천마사성(天馬駟星)에게 중춘(仲春)인 음력 2월 중 강일(剛日)에
              
마조단을 설치 후 제향(祭享)했다. 

              '강일'이란 일진(日辰)의 천간(天干)이 갑(甲), 병(丙), 무(戊), 경(庚), 임(壬)인 날을 말한다.

              양(陽)의 날이라 바깥일 하기가 좋다고 해서 강일에 제사를 지냈다.

 

     둘째,  선목(先牧祭)

              말을 사양, 관리하는 양마자(養馬者)를 위해 선목단을 설치한 후 제향(祭享)했다. 

              중하(仲夏)인 음력 5월 중 강일(剛日)에 제사를 지냈다.

 

     셋째,  마사(馬社祭)

              말을 이용하는 기승자, 즉 마병(馬兵)이나 승마자를 위해 마사단을 설치해 제사를 지냈다.

              중추(仲秋)인 음력 8월 중 강일(剛日)에 제향했다.

 

     넷째,  마보(馬步際)

              말의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마보단을 설치해 지내던 제사이다.

              중동(仲冬)인 음력 11월 중 강일(剛日)에 제향했다.    

 

    말을 위한 제사는 4 신위(神位)에 4번 절을 했다.

    특히 '마보(馬步)'라는 神은 말을 해롭게 하여 말들이 잘 놀라고 다친다고 하여, 마보가 말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원했다.   

   이몽(異夢)에서는 왕이 직접 마조제를 지낸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마조제>를 소개하기 위해서

    어쩔 없는 장치였다.

    실제로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소사(小祀)로 기록돼 있다.

    이는 마조제가 소규모의 제사에 속했으며, 王 대신 신하들이 가서 마조제를 지낸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대사(大祀)는... 임금이 직접 지내던 나라의 큰 제사로 종묘, 영녕전, 원구단, 사직단

    등에서 지내던 국사(國祀)로 불리던 큰 제사를 말한다. 

    중사(中祀)는 대사보다 규모가 적고, 소사(小祀)보다는 규모가 큰 제사를 뜻한다.  

    조선시대 마조제는 동대문 밖에다 마조단을(馬祖壇)을 설치한 뒤, 임금이 신하로 하여금 중춘의

    길일을 택해 제사를 지내게 했다.

    마조제는 무관(武官)이 주관하는 유일한 국가 제사로, 병조판서가 왕을 대신하여 제사를 주관

    했다.   

 

    마조제의 상차림 또한 남다르다.

    사람이 먹을 음식과 말의 음식이 함께 제상에 놓인다.

    즉 말의 음식인 소금, 죽순, 대추, 미나리, 멥쌀, 찹쌀, 수수, 수련과 열매(감), 마름열매 등이

    놓이고, 사람의 음식인 사슴고기절임, 토끼절임, 돼지머리, 시루떡, 막걸리 등이 함께 놓였다.  

 

    말이 인간에 의해 처음 사육되기 시작한 것은 약 5,8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말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남북 아메리카와 유럽 등에서 서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말이라고 할 수 있는 포유류 에어히프스(Eohippus)는  여우만한 크기의 동물로 다리가

    짧고 발가락이 앞다리에는 4개, 뒷다리에는 3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점차 진화를 겪으며 몸집도 커지고, 발가락도 줄어들면서 가운데 발가락만 자라게 되어

    현재말의 형태로 진화됐다.  

    프랑스와 이태리 국경에 맞닿아 있는 유럽 남부의 피레네 산맥 부근 동굴에는 약 18,000년 전의

    길들여진 말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동북아시아에는 지금도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는 고대의 말이 아직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우리 한민족도 지난 5,000년 동안 말을 타왔다. 

    한때는 약 5만 두의 마필을 지닌 아시아 총강대국이었다.

    지난 2004년에는, 제주도의 상모리와 사계리 해안가 화석에서 사슴과 새, 코끼리, 말 등의 발자국

    으로 추측되는 다양한 동물들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는 대략 50,000년 前의 것으로 확인됐다.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는 향마(鄕馬)와 호마(胡馬)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에 "고구려에는 과하마(果下馬)라는 조랑말이 있는데, 이것을 타고 산을

    오르내리면서 사냥을 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과하마'란 몸집이 작아서 과수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는 말(馬)이라는 뜻으로 <제주마>, 또는

     향마(鄕馬)로 불리는 한국의 토종말을 말한다.   

     향마는 BC 3세기경 북한지방에 문화적 영향을 주었던 스키타이 문화와 함께 "타르판"이 말의

     조상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말인 조랑말이, 향마가 진화를 통해 오늘날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661년, 말린 말고기 등을 제주섬에서 수입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문종 27년 (1073년) 제주에서 명마를 진상했다." 탐라기년(耽羅紀年)의 기록이 있다.

     이를 볼 때, 이미 그 당시에 말이 제주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호마(胡馬)는 향마보다 체구가 조금 큰 말로, 몽고과 여진 등의 북방에서 들어온 말의 호칭이다. 

 

     말은 처음에는 衣,食,住 중, 주로식(食)으로 사용되다가 농사용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그 후 전쟁용으로 사용돼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말은 가죽과 털, 힘줄 등이 가죽신과 장신구 등으로 사용될 정도로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동물이었다. 

     인간이 말젖인 마유(馬乳)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최근에는 영국 브리스톨대학과 미국 프린스턴대학 공동으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이 폴란드

     쿠야비야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들을 분석해, 7.500년 전 초기 농경시대의 신석기인

     들이 일상적으로 치즈를 만들어 먹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냈다.

     그 이전까지 치즈가 등장하는 최고(最古) 문헌은 수메르 역사서에 등장하는 BC 2094~2047년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국의 슬기王 때, 가축을 돌보는 사람이 남긴 "버터와 치즈 연간 생산량이

     1.8L와 8L에서 42.5L, 63.3L로 각각 늘어났다."는 기록이었다.   

 

    마조제는 지금도 학교와 단체에서 지내고 있다.

    수의학과로 유명한 건국대학교는 격식을 맞춰 2005년부터 마조제를 지내고 있고, 한국국토대장정

    기마단(騎馬團)은 조선시대 말과 연관된 지역인 한양대학교 마조단 터, 건국대학교의 화양정 터

    등에서 2011년까지 총 8번의 마조제를 치렀다. 

 

    ... 이처럼 이몽(異夢) 속에는 역사 속의 비밀들이 퍼즐 맞추기처럼 세밀하게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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