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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방문자들이 꾸준히 좋아하는 글 4, 박애석(博愛席)

아라홍련 2014. 7. 14. 19:04

 

 

 

        대만(臺灣, Taiwan)의 지하철 객차 안엔 반드시 빈자리가 있다.

        일명 박애좌(博愛座)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노약자석에 해당하는 박애석(博愛席)이다.

        일 년 반전인 2011. 7. 1일부터 부터 시범 운영한 뒤, 지금은 정상 운영으로 정착화됐다.

        다른 좌석과 달리 파란색으로 칠해진 박애석은 온전히 노약자나 임산부, 어린이를 위한 자리다.

        대만의 건국자인 쑨원(Sun Wen, 孫文)이 갈파한 "두루 사랑하라!"는 박애사상을 지하철에까지

        적용한 사례이다.

        대만사람들은 박애석이 비어있어도 함부로 가서 앉지 않는다.

        그냥 비어놓는다.

        꼭  앉아야 할 사람이, 만일 박애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민망해 앉지 못할까 봐 저어해서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며칠 전, 전철 안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그만 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불쾌하다.

        전철을 탄 나는 어쩌다 노약자석 근처에 서게 됐다.

        노약자석은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잠시 후, 전철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사람들을 거칠게 제치고는

        거의 날다시피 돌진해 노약자석에 앉았다. 

        이런 모습은 주로 중년이 넘은 아줌마들이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체면 불구하고 하는 행동이다.

        허나 그들도 노약자석에서만큼은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전철을 자주 이용하는 나도 처음 목격하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20대 초반인 아주 젊은 아가씨들이었다.

        맞은편 노약자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던 어르신들이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제는 다음 정거장에서 일어났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두 분이 전철에 탑승한 것이다.

        이들은 당연히 노약자석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두 젊은 여성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무렇지 않게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

        어르신들 표정이 순간, 서서히 일그러졌다.

        한데 어이가 없는지 얼굴만 찌푸릴 뿐, 차마 아가씨들에게 일어서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몇 정거장을 그렇게 지나가도 두명의 젊은 여성은 끝내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민망해 얼굴을 붉히고 있던 내가 용기를 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젊은 아가씨들이 노약자석에 앉아서 일어서지도 않네."

        허나 마이동풍이었다.

        목을 빳빳이 든 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양심이나 수치심이 있다면 그 젊은 나이에 노인들 앞에서 노약자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태연자약하게 아있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차라리 고개를 떨구고 자는 척이라도 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속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과장되게 낄낄거리고

        웃었다.

        이를 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며 쯧쯧, 혀를 찼다.

        젊은 아가씨들 앞에서 엉거주춤 힘겹게 서있던 두 노인은, 몇 정거장을 그렇게 가다가 맞은편 

        노약자석에 자리가 비게 되자 겨우 앉았다. 

        두 어르신이 침통한 표정으로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는 아가씨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표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욕감... 황당함... 불쾌감... 말세를 개탄하는 복잡한 심사가 고스란히 얼굴에서 배어났다.

 

        보지말아야 할 것을 목격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 표정 또한 모두 복잡다단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인생을 저렇게 살아간다면, 앞으로 주위사람들과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며 살아가겠는가?

        죄책감이나 수치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게 바로 Psychopath에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성격적 특징이다.

        저들은 같은 성격이나 인생관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할 것이고, 애들을 낳아 저희처럼

        살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 아이들 또한 똑같이 행동하고, 주위사람에게 많은 해를 끼치면서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거침없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한마디로 악(惡)의 대물림이다.​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데, 지능지수인 IQ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제 고전에 

       속한다. 

       사기꾼이나 범법자, 인간폭탄 같은 성격장애자들 중에 IQ가 높지 않은 사람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사기꾼이나 범죄자, 또는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사람들처럼 머리가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때문에 그들처럼 비열하거나 교활하지 못하다. 

       인간답게, 인간의 도리를 지키며 세상을 살아가려면 IQ보다는 EI(Emotional Intelligence)

       나타내는 지능 지수인 EQ가 더 큰 역할을 한다.      

       즉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능력...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 잠재능력을 개발하는

       능력... 역지사지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수 있는 감정이입 능력... 또 보편적이고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감성지능(感性知能)이 높은 게 훨씬 더 유익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불현듯, 지난 대선에 나타났던 극심한 세대 간 갈등 때문에 나타난 후유증은 아닌지... 문득 

       의심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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