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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차이(差異)

아라홍련 2014. 7. 8. 03:47

 

    

 

 

       한시나 사패(詞牌)의 경우, 번역에 따라 작품의 문학성이나 감수성, 또한 감동까지 확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번역된 漢詩나 사패를 만나기가 힘들다.

       전에도 언급했듯, 번역자가 자신의 감정선이나 문학적 소양에 따라 원시(原詩)의 느낌과 다르게

       해석하는 역(意譯)을 나는 상당히 경계하는 편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작품을​ 마치 삼류 유행가 가사처럼 제멋대로 번역해 놓는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시(原詩)의 느낌에 가장 가깝게 해석하는 직역(直譯)

       이다.

       한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한문에 아주 능통해야 하고, 또 번역자에게 상당한 문학성이 있어야만 한다.

       한문만 많이 안다고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

       또 무엇보다 시인(詩人)과 사인(詞人​)의 문학성 외에도 그들의 성격과 철학, 감수성, 문학가의

       일생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원작자의 사회적 지위나 성과, 또는 문학적 수준도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

       덧붙여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쓴 문학인(文學人)이 여자이냐, 남자이냐에 따라서도 번역이 달라져야 한다.

       당연히 말투와 표현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

       그래야 맛깔스러운 번역이 가능하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번역해야 비로소 원작의 감성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번역을 '제 2의 창작'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 전에 소개했던 수옥 이청조(李淸照)의 사패 <여몽령(如夢令)>을 예로 한 번 들어보자!

       이 번역은, 내가 인정하는 강호(江湖)의 고수(高手) 솜씨이다.                        

 ​

                                                 如夢令

                                                  (여몽령)

    ​

                ​昨夜雨疏風驟               어젯밤 비가 그치고 바람 불었지

             濃睡不消殘酒                깊은 잠에도 술기운 가시지 않네

             試問卷簾人                   발 걷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却道海棠依舊                그래도 해당화는 그대로라네

             知否                             그런가

             知否                             아닐거야

             應是綠肥紅痩                당연히 잎은 무성해도 꽃은 시들었을 거야

      한데, 같은 작품을 다른 사람은 이렇게 번역했다.

       (이 번역자는 중국문학에 정통한 사람으로 그나마 번역을 잘하는 편에 속한다.)  ​

                                                              如夢令

                                                               (여몽령)

                   昨夜雨疏風驟              어젯밤 비는 드문드문 바람은 세찼지

               濃睡不消殘酒               깊은 잠에도 술기운이 남아 있네 

               試問卷簾人                  발을 걷는 이에게 물어보니

               却道海棠依舊               도리어 해당화는 전과 같다고 하네

               知否                            아는가

               知否                            아는가

               應是綠肥紅痩               잎사귀는 무성해도 꽃은 시드는 것을

      

       가만히 여러번 읽어보며 무엇에 차이가 나는가 깊이 한 번 생각해 보라!...

       <여몽령>은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여류문학인 수옥 이청조(李淸照)의 작품이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이다.

       또 문학성과 ​언어의 감수성이 절등하기로 이름난 송나라 사패(詞牌)의 대가(大家)이다.

       당신은 어느 번역이 원시(原詩)의 느낌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가?...

       또 어느 번역이 여자가 쓴 사(詞)라는 생각이 드는가?... 

       여러가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작가이며 또 오랫동안 고전 공부를 해온 김시연

       작가는 당연히 강호의 고수가 번역한 <여몽령>이 이청조가 쓴 작품의 문학성이나 감수성과

       훨씬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마도 번역자가 문학성이 높고, 또 누구보다 이청조의 문학적 세계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 한 일일 것이다.

       번역도 섬세하고 깔끔하지만, 운율(韻律)과 음률(音律) 또한 기가막히게 잘 맞는다.

       다시 말하지만, 사패는 곡조(曲調)이다.

       사(詞)는 음악에 붙인 가사(歌詞)이다. 

       때문에 번역에 있어서 운율과 음률, 모두 중요하다.

       그의 번역은 세련되고, 군더더기가 전혀 없기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다섯 째 줄과 여섯 째 줄의 知否 知否를 눈여겨 보라!

       강호의 고수는 같은 한자가 반복돼 있음에도 "그런가?  아닐거야."... 이렇게 번역했다.

       한데 다른 번역자는 이 부분을 "아는가?  아는가?"... 이렇게 번역했다.

       한자가 똑같다고 번역한 것을 반복한 것이다.      ​

       이건 문장의 해석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청조 같은 뛰어난 여류사인(女流詞人)이라면, 당연히 강호의 고수와 같은 감성으로 

       사패를 썼을 게 분명하다. 

       특히 이 번역은 남자 詩人이나 남자 詞人들의 작품을 번역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청조'와 '여성'이라는 특별함이 번역에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 이렇게 번역에 따라 작품의 문학성이나 감수성, 감동까지 확 달라진다.

 

       그나마 위의 번역은 좀 나은 편이다.

       어떤 번역자는 <여몽령>을 이렇게 번역했다. 

​                         

                                                              如夢令

                                                              (여몽령)

          昨夜雨疏風驟            어젯밤 비 내리고 바람이 세찼지요

        濃睡不消殘酒            깊이 잤음에도 술기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試問卷簾人               발을 걷는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却道海棠依舊            해당화는 전과 똑같다고 하네요

        知否                         알고 있을까

        知否                         알고 있을까

        應是綠肥紅痩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꽃은 벌써 시들어가고 있는 것을

     ​

이건 뭐 유행가 가사도 아니고, 아주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번역이다.

번역도 허접하지만, 운율과 음률 자체가 깔끔하게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청조의 문학성이 번역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나쁜 번역'의 사례이다.​

설마 중국 최고의 여류사인이자 송사(宋詞)의 대가인 이청조가 저렇게 허접하게 사패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 이래서 漢詩나 사패(詞牌)는 한문만 안다고 무책임하게 함부로 번역하면 안된다.   

위에서 <여몽령> 대한 3개의 번역을 차례로 소개했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번역의 차이를 느껴보라!

당신 생각엔 '이청조'라면 어떤 느낌으로 사패를 썼을 것 같은가?...           

또 어떤 번역이 원시(原詩)와 가장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중국 문학사에

빛나는 훌륭한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강호의​ 고수가 원시(原詩)의 문학성과 가장 근접하게 번역한다고 

생각한다.

강호의 고수를 언급할 때 항상 '내가 인정하는'이란 말을 덧붙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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