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夢令
(여몽령)
昨夜雨疏風驟 어젯밤 비가 그치고 바람 불었지
濃睡不消殘酒 깊은 잠에도 술기운 가시지 않네
試問卷簾人 발 걷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却道海棠依舊 그래도 해당화는 그대로라네
知否 그런가
知否 아닐거야
應是綠肥紅痩 당연히 잎은 무성해도 꽃은 시들었을 거야
~* 이청조(李淸照) *~
* 녹비홍수(綠肥紅瘦)...
이 부분이 정말 압권이다!...
수옥 이청조가 쓴 수많은 음주시들 중에서도 단연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녹비홍수(綠肥紅瘦) 라는 시구(詩句)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조의 대표작 여몽령(如夢令)을 주시(酒詩)의 백미로 꼽기도 한다.
비는 드문드문 오고, 대신 바람이 세찼던 지난밤...
자작(自酌)하여 술에 취해 깊은 잠을 자고 깨어난 아침나절!
술기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밤새 세찬 바람과 비에 시달린 해당화가 어찌 됐나 궁금해진 이청조는 발을 걷는
이에게 "해당화가 어찌 됐냐?"고 묻는다.
이에 "해당화는 아무렇지 않게 전과 똑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수옥 이청조(李淸照)는 알고 있다!
비록 잎사귀는 무성해도, 꽃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는 것을...
밤새 비바람에 시달린 해당화와, 세파와 세인에 시달려 삶이 고달픈 자신을 동일시
하는 수옥(漱玉)의 마음이 왠지 애련하다.
술을 남자보다 더 사랑했던 여인!...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여류문학인!...
송나라 사패(詞牌)의 대가(大家)!...
재색을 겸비한 예술인!...
... 이청조를 소개하는 말들은 더없이 화려하다.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녀가 쓴 음주시(飮酒詩)가 무려 50수를 넘는다.
그녀는 술을 마시며 잊고 싶은 일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아니면, 기억해내고 싶은 지난 날의 행복한 삶의 편린들이 그만큼 절실했던
것일까...
아니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은애옥(恩愛獄)의 아픔과
슬픔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사패들을 살펴보면,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술을 즐겨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10대 때 쓴 사(詞) 중에도 음주시(飮酒詩)가 있다.
그녀의 요란한 염사(艶事)에 대해서는 독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옥 이청조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번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김시연 작가가 중국 여류문학인 중에서 가장 문학성을 인정하는 문인이 바로
수옥 이청조이다.
단순히 뛰어난 문학인으로서만이 아닌, 금석학(金石學)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전문성으로부터 남성들을 월등히 뛰어넘는 해박한 학식에 이르기까지, 기녀
출신이나 왕족 또는 일반 아녀자들이 쓴 詩나 사패와는 수준과 문학성에 있어
비교가 불가하다.
특히 송대(宋代)는 여성을 남성의 부속물로 여기고, 여성에게 전족(纏足)을
강요하던 살벌한 시대이다.
이런 시기에 문학인과 지식인으로서 여성이 실력을 널리 인정받은 것은 매우
희귀하고 특이한 일이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그녀는 "詩人과 사인(詞人)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그녀의 자호(自號)인 이안거사(易安居士)는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 남편 조명성과 함께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던 때의 그녀 모습이 문득
상상이 된다.
한데 '이안거사'라는 號를 스스로 지은걸 보면, 행복에 겨운 그녀는 그땐 '행복과
불행은 쌍둥이처럼 함께 온다.'는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듯싶다.
사바세계(娑婆世界)엔 불멸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멸(不滅)은 神의 영역이다...
고단했던 지난 하루!...
내가 인정하는 강호의 고수가 수옥(漱玉) 이청조의 사패(詞牌)를 깔끔하게 번역해
블로그에 올렸다.
이 멋진 사패 하나가 하루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내 등을 다독거린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과부하가 걸린 머리를 식히기 위해, 또는 문학의 향기에 젖어
삶을 위로받고 생기를 충전하기 위해 詩와 사패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수옥 이청조(李淸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