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일생동안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충고나 어떤 문제의 해결책 혹은 치료법을 가르쳐
준 사람보다는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 갖고 부드럽고 사랑에 찬 손으로
상처를 어루만져 준 사람을 꼽을 것이다.
절망이나 혼돈에 빠져 있을 때 말없이 같이 있어주는 사람...
애통하며 비탄에 잠겨있는 시간에 함께 자리해주는 사람...
무지와, 교정불능과, 불치를 함께 참으면서 우리의 무력함을 한 마음으로
응시해 줄 수 있는 사람...
...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진실한 친구이다.
진실로 아끼고 염려해 주는 친구에게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
간에 서로가 함께 해주는 사실이 가장 중대하다.
그렇기때문에 아끼고 염려해 준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함께 있음을
뜻한다.
~* H. 뉴엔(Henri Nouwen) *~
위의 글은 20년도 훨씬 넘은 내 노트에 적혀 있는 '헨리 뉴엔' 신부의 글이다.
뉴엔 신부는 네델란드 출신으로 현대 영성(靈性)의 대가이다.
사제로서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20여 권의 책을 모두
베스트 셀러에 올린 발군의 인물이다.
내 젊은 시절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토마스 머튼' 신부와 '헨리 뉴엔' 신부이다.
두 사람 모두 사제이자, 저명한 작가이다.
두 성직자 때문에 나는 일찌기 영성에 관한 책에 심취했었고, 또 한때는 실제로관상생활(觀想生活)을 동경하기도 했다.
또 그들의 책을 통해 영적인 위로를 많이 받았고, 영성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나는 '함께 있는다'는 의미를, '꼭 실제로 함께 있어야 한다.'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 마음으로 성원해 주는 것... 마음으로 격려해주는 것....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 잘 되기를 기도해 주는것... 좋은 작품을
쓰도록 기원해 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을 난 '두사람이 함께 한다.'고 정의한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에너지나 진동(振動)을 방출한다.
심지어 사소한 생각 조차도 측정 가능한 에너지나 진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진동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의식의 에너지 장 속에 영원히 기록된다.
양자 물리학의 파동이론과 같다.
불교에서는 인체 오감으로 체험한 모든 것이 단 한순간의 놓침도 없이 관념의
파동으로 우주에 기록된다고 본다.
그래서 생각은 파동을 만들고, 또 자신과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이몽(異夢)엔 '봉이'가 王을 만나러 파주행궁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이렇게
고민하는 대목이 나온다.
인과(因果)는 분명해 면할 수도, 또 없앨 수도 없다.
인과에는 반드시 응보가 뒤따른다.
일념무량겁이니 단 한 번만 망상을 일으켜도 아승기겁 동안 응보를 받는다.
어쩌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비아부화(飛蛾赴火)일지 모른다.
지명선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화두를 건네듯 이렇게 말했었다.
"인생은 연꽃잎에 내리는 빗방울과 같다..."
<이몽 1부. 258~259p>
이몽을 출간한 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만났다.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어 가슴에 품고 뿌리를 내려준 사람들...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평생 서로의 존재를 모르며 지나쳤을 사람들...
시절인연이 닿아 승인연(勝因緣)으로 만난 그들은 내 영혼의 친구이자 또
벗이며, 도반(道伴)이다.
이들은 다른 역사소설을 읽으면서도 이몽을 문득문득 생각하거나...
역사서를 읽다가도 기억의 서랍에서 이몽을 꺼내어 되짚어 생각해보기도
하고...
또 블로그를 찾은 이들에게 '이몽은 오랜 시간 사료와 고증의 흔적이 잘
배여있는 멋진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또 소설책 부피가 1.5배로 늘어나도록 단어를 하나하나 찾아 적은 종이를
책에 붙이거나...
이몽의 순우리말과 한자에 주석을 달아 단어장 몇 권을 만들고...
책상 위에 늘 이몽을 놔두고 서너번 씩 읽은 사람들이다.
난 가끔씩, 그들이 내 등 뒤에 따뜻한 손바닥을 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이몽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며, 마음으로 격려와 성원을 보내고, 관심과
기대를 갖고 지켜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어둠을 적시는 밤...
마음 속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이 글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