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독락당(獨樂堂)>
次舍弟韻
(동생의 운을 빌려)
還家中夜夢初成 집으로 돌아가는 밤에 꿈을 처음 꾸는데
忽覺依然臥洛城 갑자기 잠깨니 그대로 한양성에 누워있네
落盡山花歸未得 산꽃은 다 떨어지는데도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樗材還愧玷華淸 재주 없는 이 몸 흠만 뚜렷함이 부끄러워라
親老求歸計未成 부모 늙어 돌아가려하나 계책은 없고
金章那似倅殘城 재상 벼슬은 피폐한 고을 수령 같네
平生心事多違阻 평생의 뜻은 어긋나고 막힘이 많으니
却恨虛名徹穆淸 헛된 명예 버리고 세상 맑아질 길이나 궁리하리
~* 이언적(李彦迪, 1491~1553) *~
* 이언적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性理學者).
號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으로도 불리었다.
조선 제 12대 왕인 인종(仁宗)의 세자 시절, 스승이었다.
성리학의 이설(理說)을 정립해 퇴계 이황(李滉)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주리적 성리설은 이황에게 그대로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고,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동방 5현(東方 五賢) 중 한명이다.
동방 5현이란... 조선 유학(儒學)을 대표하는 5명의 대가(大家)를 말한다.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이다.
회재 이언적은 1514년(중종 9년), 문과에 급제해 경주 주학교관(州學敎官)이 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 인동현감, 사헌부 지평, 이조 정랑, 사헌부 장령 등을 역임했다.
1530년 사간(司諫)으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그들 일당에 의해
죄인으로 몰려, 향리인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열중했다.
1537년, 김안로 일파가 몰락하자 조정에 의해 다시 등용됐다.
시강관, 교리, 응교 등을 거쳐 1539년에는 전주부윤이 되었다.
이후 이조, 예조, 병조 판서를 거쳐 경상도 관찰사, 한성부판윤이 됐다.
1545년(명종 즉위년)부터는 좌찬성으로 원상(院相)이 되어 국사를 관장하면서, 명종에게
<서계 10조(書啓十條)>를 올렸다.
이해, 이언적은 윤원형(尹元衡)이 주도한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추관(推官)으로 임명
됐으나 스스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을사사화는 1545년(명종 즉위년), 조선 제 13대 왕인 명종의 외숙부이자 문정왕후 아우인
'윤원형'이 속한 소윤파(小尹派)가, 조선 제 12대 왕인 인종의 외숙부이자 장경왕후 아우인
'윤임'이 속한 대윤파(大尹派)를 축출한 사화(士禍)를 말한다.
이언적은 이 명분없는 권력싸움의 화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벼슬길에서 멀어졌으나 결국
그로부터 2년 후인 1547년, 윤원형과 이기(李芑) 일파가 조작한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
壁書事件)에 무고하게 연루돼, 삼사(三司)의 탄핵을 받아 함경남도 강계부(江界府)로 유배
됐다.
삼사란... 언관(言官)의 기능을 수행하던 사헌부(司憲府),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을
뜻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553년(명종 8년), 유배지에서 졸(卒)했다.
경주 독락당(獨樂堂)은 '이언적'이 정쟁에 휘말려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로 내려와 있던
유적이다.
보물 제 413호이다.
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도 지정돼 있다.
1532년(중종 27년), 낙향한 이언적은 고향이자 본부인이 있는 양동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둘째 부인이 사는 자옥산 기슭의 집으로 돌아간다.
여기엔 둘째 부인이 지은 안채와 숨방채, 그리고 아버지가 지은 작은 정자가 있었다.
회재(晦齋)는 아름다운 주변의 경관을 끌어들이는 탁월한 건축수법으로 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증축한 다음, 독락당(獨樂堂)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리고 다시 중앙정치로 복귀할 때까지 7년을 독락당에서 '홀로 즐기며' 살았다.
독락당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팔작지붕이다.
집에서 볼 때 오른쪽 3칸은 마루이고, 왼쪽 1칸은 방을 만들어 놓았다.
한데 맨 오른쪽 1칸도 막아서 방으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를 볼 때, 본래 마루는 2칸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기둥은 둥근기둥을 세우고, 대청 천장은 뼈대가 모두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특히 독락당 앞으로 흐르는 계곡(紫溪)이 빼어나게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위의 詩에서 차운(次韻)이란... 詩를 지을 때 남의 운(韻)을 그대로 순서를 바꾸지 않고
짓는 것을 말한다.
이 시에서의 成, 城, 淸, 成, 城, 淸이 그의 아우가 사용했던 운(韻)의 순서이다.
모두 평성 庚 운목에 속하는 글자다.
'이언적'의 아우는... 바로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 1494~1553)을 말한다.
대학자인 형의 출사를 돕기 위해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평생 향촌에서 노모를 봉양하며
살았다.
민초의 삶은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당쟁과 권력싸움으로 일관하며 부귀영달만 지향
하던 위정자들의 만행 때문에, 형과 아우가 같은 해에 세상을 뜬 것이 못내 안타깝다.
이 詩에서 저재(樗材)란... '쓸모없는 재목'을 말하고,
금장(金章)은... 금 도장, 즉 '재상의 직책'을 뜻한다.
목청(穆淸)은... '임금의 덕으로 세상이 화평한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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