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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 친필 편지 발굴!

아라홍련 2014. 5. 27. 22:01

 

 

 

          일명 '이순신 전문가'로 불리는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또다시 충무공의 편지를 

          발굴했다.

          어제 26일, 노승석 소장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의병장인 백천(白川) 

          강응황(​姜應璜)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는 그동안 향토사학자 조현식의 <고성 향토수호사>를 통해 영인본으로만 존재가

          알려졌었다. 

          하지만 원본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편지를 보면, 웅장하면서도 힘있는 이순신 서체(書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          노 소장은 "이순신의 필체가 잘 드러나 있다" "벗을 아끼는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충정이 담긴 글"이라고 평가했다. 

 

​          이순신 장군의 친필 편지 원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순신 서간첩>과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대박물관> 등에 일부 흩어져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충무공의 친필 편지는 대단히 가치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편지 하나가 또 세상 밖으로 드러난 셈이다. 

                            ​

                                                                                                                        

              

                                                                     <사진: 여해고전연구소>

         이 편지는 임진왜란 당시 무관이던 별장(別將) 최균(崔均)의 집안에서 400여 년간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이를 노승석 소장이 후손들을 설득해 전문가들의 친필 감정을 거친 후, 이번에 공개했다. 

         아래쪽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민간에서 400여 년간 보관한 문건치고는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강응황(姜應璜)은 본래 문인(文人)이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檄文)을 써서 의병을 모집한 후, 왜군에 맞서 싸워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

         그리고 피신하는 선조(宣祖)를 보호하기 위해 의주(義州)로 따라갔다. ​

         1592년 9월, 부산 앞바다에서 왜선 100여척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은 용만(龍灣·평안북도

         의주)에서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는다.

         바로 '강응황'의 편지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동안 학계에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이순신 장군이 백천의 편지를 받고 한 달 뒤 보낸 짧은 답장을 보면 

         충무공은 '강응황'을 으로 여겼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강응황'에게 쓴 편지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번 용만에서 보내온 편지는 꿈속에 그린 정의 의미가 아닐는지요.
                  재삼 펼쳐 읽어보니, 편지 가득 간절한 뜻은 실로 내 친구 위서(渭瑞,
                  강응황의 字)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정성을 다한 행동입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요사이 안부가 어떠신지요?...
                  멀리서 그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 사람은 졸렬한 재주로 난국을 당하고, 왜적의 우두머리가 재차 움직여

                  어지러운 세상이 된 가운데서 '근심 (憂)' 字만 생각났습니다.

                  다행히 별장 최균(崔均), 최강(崔堈)의 힘을 입어 웅천(熊川,진해)의 적을

                  크게 이기고, 또다시 바다에 떠 있는 적장을 사로잡으니 마음이 톰쾌합니다.

                  그저 밤낮으로 기원하는 것은... 우리 임금의 수레를 한양에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

                  나머지는 군무(軍務)가 어지럽고 심히 바빠 이만 줄입니다. ​

​         충무공은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오로지 나라 걱정, 임금 걱정 뿐이다.

         또 편지에는 벗을 아끼는 마음과 함께,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는 충정이 절절히 

         담겨있다.​

                               

         공직자는 항상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국가의 녹(祿)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사욕을 우선하고 싶다면, 결코 공무원이 돼서는 안된다.   ​

         때문에 공직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국민을 지켜줘야만 한다.

         ... 그게 바로 국가와 공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충무공은 특히 전쟁터에서 부하들을 많이 잃지 않은 장수(將帥)로 유명하다.

         군율을 엄히 다스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한데, 평소 군율과 기강을 어긴 부하들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정없이 처벌했다.

         이때만큼은 더할 수 없이 극엄(極嚴)​했다.

​         왜일까?...

         그래야만 전쟁에서 이기고 또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위기상황 시, 지휘관 본연의 임무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에는 법률과 기강, 국민에 대한 의무가 있다.

         국민만 국가에 대해 의무가 있는 게 아니다.

         국가도 국민에게 의무와 엄중한 책임이 있다. 

         공직자들은 이를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만약 이를 지키고싶지 않다면, 결코 공직에 나가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국민의 삶을 향상키고 또 안전을 지켜주는 게 가장 큰 임무이다.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기관이나 단체는 존립할 필요가 없다.

         사정없이 기관과 기능을 개조하고 또 존폐 여부를 결정해야만 한다.

         군율과 기강에 있어서만큼은 냉혹하리만큼 가엄(苛嚴)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또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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