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宴左氏莊
(좌씨 별장의 밤 향연)
風林纖月落 바람 설렁대는 숲속으로 조각달은 지고
衣露淨琴張 이슬에 옷 젖은 채 맑은 거문고 탄다
暗水流花徑 어둠 속 강물이 꽃 사이로 흐르고
春星帶草堂 봄 밤하늘의 별들 초가지붕을 둘렀다
檢書燒燭短 책들 뒤적이노라니 촛불 타서 짧아지는데
看劍引杯長 보검을 바라보며 천천히 술잔을 기울인다
詩罷聞吳詠 시를 다 읽고나서 오나라 노래를 읊으니
扁舟意不忘 옛날 조각배 타던 일 잊을 수가 없구나
~* 두보(杜甫, 701,762) *~
* 이 詩는 두보가 어느 귀족 출신인 좌씨 퇴역 장군의 연회(宴會)에 초대되어 갔을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두시언해> 권 15에 들어있다.
시성(詩聖) 두보는 중원(中原) 출신이다.
또 오나라와 월나라를 여러번 여행 다녀온 적도 있다.
그래서 오나라의 시나 노래에 매우 익숙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꽃이 만발한 봄밤의 고즈넉한 정경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아름답다.
시에 나오는 단어들이 봄밤... 조각달... 거문고... 꽃... 별... 책... 술잔... 시...
조각배 등... 시어(詩語) 자체가 발랄하고 매우 정감이 있다.
금서시주(琴書詩酒)...
거문고... 책... 詩... 술...
이 네 가지는 선비나 처사, 은자(隱者)나 야인(野人)들이 늘 가까이에 두고 즐기는
것들이다.
속세를 멀리하고, 명리(名利)에 초연한 이들에게 고아한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는
사색(思索)과 존재의 벗들인 셈이다.
나 또한 책과 詩를 늘 함께 한다.
또 거문고 대신 피아노를, 술 대신 차(茶)를 가까이 한다.
그리고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다.
위의 詩에서 풍림(風林)은 '바람이 부는 숲'을 말한다.
섬월(纖月)은 조각달, 또는 초승달을 의미한다.
정금장(淨琴)은 '맑은 소리를 내는 거문고'를 뜻한다.
화경(花徑)은 '꽃밭 사이의 길'을 말한다.
한문이라는 게 참으로 오묘하다...
위의 경(徑) 字는 '지름길' 경자이다.
꽃 화(花) 자와 지름길 경(徑) 字가 합쳤으니 꽃밭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꽃밭 사이의 길'을 의미한다.
한자는 공부할수록, 뜻을 음미할수록, 그 깊고 오묘한 뜻에 고개를 주억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검서(檢書)란... 주인집에 소장되어 있는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소촉단(燒燭短)은... 초가 짧게 타도록 책을 읽는다는 의미이고,
시파(詩罷)는... 연회석상에서 돌아가며 詩를 다 지었다는 말이고,
오영(吳詠)은 오나라 노래 읊는다는 뜻이다.
예전엔 절강성(浙江省) 일대를 강남(江南) 지방이라고 했는데, 옛날에 바로 그곳에
오(吳)나라가 있었다.
現 강소(江蘇)를 말한다.
강남 일대는 낭만과 풍류가 넘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편주(扁舟)는 <조각배>를 뜻한다.
앞서 말했듯, 두보는 전에 오나라와 월나라를 만유(漫遊), 즉 한가로이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잊혀지지 않고 그립다 하여 <의불망(意不忘)>이란 표현을 하고 있다.
바람결에 설렁이던 숲에 가냘픈 조각달마저 떨어진 밤...
옷에는 이슬이 촉촉하고, 누군가 팽팽한 거문고 줄을 튕기며 맑을 곡을 타고 있다.
어둠속에 보이지는 않고 소리만 들리는 물은, 꽃밭 사이를 흐르고 있다.
봄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초당(草堂)을 매어 달듯 무수히 반짝거린다.
밖에서 잔치를 마치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온 두보와 일행...
이번엔 초대한 집주인이 소장한 책들을 초가 짧게 타도록 밤 늦게까지 읽는다.
또 집주인인 퇴역 장군의 칼을 보고 술잔을 당기어 마시며, 사뭇 의미 심장한 느낌에
젖어보기도 한다.
서로 돌려가며 詩를 다 짓고 나서 오나라의 노래를 읊으니, 문득 전에 그곳에서
조각배를 타고 강남으로 유유자적 여행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 그리움에
사무치게 만든다...
詩만 읽어도 당시 두보가 詩를 짓던 그때가 마치 영화의 장면인 듯, 주마등처럼
흐른다...
그래서 두보를 詩의 성인, 시성(詩聖)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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