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문득 <동치미> 생각이 나서 인터넷으로 온라인 마켓을 한동안 뒤졌다.
계절적으로 이제 곧 동치미가 사라질 때가 됐기 때문이다.
겨우내 한 번도 동치미 구경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온 숙성해서 옛날 시골맛이 나는 동치미를 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괜찮은 김치 가게들을 방문해 구매평을 읽느라고 한동안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한데...
처음 방문하는 한 김치가게에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고객들의 다양한 구매평에 판매자가 일일이 답변을 달고 있었다.
보통, 판매자들은 그렇게 구매평 전부에 댓글을 모두 다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이런 판매자를 본 적이 없다.
큰 회사들은 고객센터의 직원들이 꼭 필요한 데만 형식적인 댓글을 달 뿐이고,
특히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판매자들은 댓글을 거의 달지 않는다.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김치의 경우, 워낙 입맛이 다양하고 지방별로 김치맛의
특색이 뚜렷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김치를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 <문의하기>에서 하는 질문에 답변 다는 일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이런 저런
다양한 구매평에 일일이 댓글을 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판매자는 달랐다.
상세 페이지의 설명도 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해놨고, 고객들의 구매평
하나하나에 전부 댓글을 달아놓았다.
나는 이런 가게를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잠시 당황할 정도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적극적인 마인드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판매자가
너무 사적인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때문에 나는 이 김치 가게에 대해 강한 흥미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상세 페이지에 올려진 모든 글들과, 판매자가 구매평에 하나하나 댓글 단 것을
모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판매자가 김치사업을 하면서 사업 경쟁자나 혹은 성격이 괴팍한 고객들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최선을 다해 좋은 김치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얼토당토 않은 비방을 들으면 대충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분노를 많이 느낄
것이 여반장이다.
그럼에도 이 판매자는 오로지 "더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응대했다.
이건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다.
간혹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또 때로는 한탄이나 개탄을 하며 자조적인 댓글을 단 것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결코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예의가 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는 인격이 갖추어졌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읽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판매자의 글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판매자는 부모님이 시골에서 힘들게 농사짓는 게
마음 아파서 귀향해 함께 농사를 지으며 김치사업을 창업했다.
또 아직은 작은 규모의 김치공장을 운영하지만, 매우 과학적으로 김치맛을 조절하고
관리하고 있음도 알게 됐다.
실제로 이 가게는 김치와 고추장, 된장, 청국장만 만들어 팔 뿐 다른 것은 전혀 팔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매니아와 단골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한마디로 김치 전문가였다.
그럼에도 구매평에 이상한 글을 올리고, 일년에 몇 번밖에 구입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엉뚱한 트집을 잡고 지속적으로 비방하는 괴상한 고객들에게 엄청나게 시달려 상처를
많이 받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그녀가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여기에서 판매자의 성격과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엉뚱한 트집을 잡고 비방하는 괴팍한 고객들에게 최대한 감정을 추스린 뒤 예의를 갖춰
댓글을 달았다.
오로지 "더 노력하도록 하겠다."는 말로 응대했다.
간혹, 때로는 감정이 폭발해 원망하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주로 자조적인 한탄이었다.
모든 댓글들을 다 읽자 깊은 감동과 함께 마음의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주저함 없이 <동치미>와 <갓김치> 두 개를 주문했다.그리고 <문의하기>에다가 "구매평을 다 읽어보았다."고 한 뒤, "성격이 특이한 고객들
한테 받는 시달림에 매몰돼, 지금처럼 너무 상처받지 말고 치지도외(置之度外) 하라."는
격려의 말을 남겼다.
이틀 후, 나는 아이스박스에 담긴 정성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김치를 받았다.
<동치미>는 정말 시골 옛맛 그대로였다.
순수하고 깔끔했다.
한데, 뜻밖에 갓김치가 이상했다.
노지 갓을 사용하지 않고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연한 갓을 사용한데다가, 맛을 내기
위해 천연 조미료로 여러 과일들을 많이 갈아넣어 간이 잘 안 맞고 , 갓이 흐물흐물
물러진 것이다.
나는 일단 구매결정을 한 뒤, 구매평에도 <동치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문의하기>에서 비밀글로 맛있는 동치미를 다시 한 번 칭찬한 뒤, 갓김치가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또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글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치면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판매자는 곧바로 답변을 달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 세심하게 점검하겠다고 하며, 이를 계기로 더욱 발전된 김치를 만들어
내겠다고 다짐했다.
적극적이고 성실한 대응에, 나는 이 판매자는 앞으로 점점 발전을 하게 될 것이란 좋은
인상을 받았다.
... 그리고 나는 그녀를 잊었다.
한데 일주일쯤 지난 후, 택배 하나를 받았다.
* 아이스박스를 열었더니 갓김치였다...
* 지난번 갓김치가 왜 그랬었나를 열심히 연구해, 양념의 배합을
새롭게 해서 만든 갓김치였다. 
* 이번 갓김치는 지난번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갓도 너무 여린 것이 아닌 적당한 것이어서 우선 식감이 좋았고,
과일 간 것과 매실을 적절히 배합해 갓김치 맛이 훨씬 깔끔하고 좋아졌다.
P:S 내가 좋은 마음으로 인의(仁義)로써 대했더니, 상대방 또한 좋은 마음을 잊지 않고
고마워하면서 이런 선물을 보내왔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
혹시 서운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관용을 베풀고 인의로 대하는 것...
조언을 하되 비방이 아닌, 상대방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
설사 부당한 비방에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하더라도, 끝까지 예의를 갖춰 고객에게
응대하는 것...
...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혼탁한 세상에서도 작은 감동을 만들어내고, 또 따뜻한
마음 자락 하나씩 얹어 소박한 기쁨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진리(眞理)는 결국 영원히 진리인 것이다...
이번엔 열무김치와 고추장, 청국장을 한번 주문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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