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閨情
(여인의 정)
平生離恨成身病 평생 이별의 한이 나의 몸에 병을 이루어
酒不能療藥不治 술로도 고칠 수 없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 이불 속 눈물은 얼음 아래의 물과 같아서
日夜長流人不知 낮과 밤으로 길게 흘러도 아무도 모르더라
~* 이옥봉(李玉峰) *~
* 난... '이옥봉'을 생각하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덜 사랑할 것이지...
조금만 더 자존감을 높이며 살 것이지...
조금만 더 실존에 대해 성찰할 것이지...
조금만 더 인연의 실체에 대해 생각할 것이지...
조금만 더 망각의 훈련을 할 것이지...
잘못된 인연은 과감히 버릴 줄 알았어야지...
... 옥봉(玉峰)의 詩를 읽을 때마다 이런 아쉬움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만들곤 한다.
평생 한 남자만 사랑했고...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다.
서녀(庶女)인지라 비록 소실에 머물렀지만, 순정을 다해 한 남자만 사랑했다.
그러나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쫓겨난 옥봉은 둑섬에 집을 얻어놓고 '조원'의 마음을 돌리려 안간힘썼다.
하지만 매섭게 돌아선 남자의 마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옥봉은 잠적했다.
그녀의 생몰년도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다.
그래도 '조원'의 현손(玄孫)인 '정만(正萬)'이 집안 문집인 <가림세고(嘉林世稿)>
부록에 '옥봉'의 詩를 <옥봉집(玉峰集)>이란 이름으로 수록해 후세에 작품들이
전해지게 됐다.
그렇다면 '조원'은 무슨 일로 '옥봉'을 그리 매몰차게 버리게 된 것일까?...
성년이 된 이옥봉은 과거에 급제한 '조원'이란 선비를 흠모해 그의 첩을 자청했다.
양반가문 출신이지만, 서녀인지라 출신의 한계 때문이었다.
서얼은 거의 천민과 같은 대접을 받을 때였다.
그러나 '조원'은 단칼에 거절했다.
'조원'은 나중에 승지에까지 올라간 엘리트 관료이다.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자 이옥봉의 아버지는 '조원'의 아버지를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그래도 거절하자 '이봉지'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이번엔 '조원'의 장인인 '이준민'을
찾아가 '옥봉'이 '조원'의 소실이 되게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이준민'은 사위인 '조원'에게 "사대부가 소실을 들이지 않는 건 장부의 도리가
아니다." 라고 나무라며 '옥봉'을 첩으로 맞아들일 것을 권유했다.
이렇게 해서 옥봉은 '조원'의 첩이 됐다.
이때 '조원'은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앞으로 절대로 詩를 쓰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라고 했다.
'조원'을 사랑한 '옥봉'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한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조원' 가문의 산지기 아내가 옥봉을 찾아와, 남편이 억울하게 소도둑 누명을 쓰고
잡혀갔으니 파주 목사에게 탄원을 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아전들의 장난질이 분명했다.
무고임을 확신한 '옥봉'은 파주 목사에게 보낼 다음과 같은 詩 한 수를 썼다.
위인송원(爲人訟寃)
洗面盆爲鏡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梳頭水作油 참빗에 바를 물로 기름 삼아 쓰옵니다
妾身非織女 첩의 신세가 직녀 아닐진대
郞豈是牽牛 낭군께서 어이 견우가 되리이까
이 詩는 '이태백'의 시구를 변형시킨 것이다.
이태백이 사로(仕路)에 나서기 전, 소를 몰고 현령(縣令)이 있는 곳을 지나가다가
현령의 부인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그러자 이태백이 "그대는 직녀가 아닐진대, 어찌 견우에게 물으시오?" 라고 말했다.
일종의 역설(逆說, paradox)이다.
'옥봉'은 이를 응용해 구구절절한 탄원서가 아닌, 비유와 은유로 응축된 詩 한편으로
파주목의 관리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물로 기름을 삼는다는 것은 청렴한 삶의 자세를 말한다.
또 "이 몸이 직녀가 아닌데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리이까."라는 시구(詩句)에서 견우
(牽牛)는 '소를 끌어간 사람'을 말한다.
때문에 "내가 직녀가 아닌 것처럼, 남편 또한 견우 즉 소를 끌어간 사람이 아니다."
라는 의미이다.
산지기의 죄가 무고임을 詩로 교묘히 탄원한 것이다.
옥봉의 시경(詩境), 즉 詩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옥봉'의 편지를 읽고 감동한 파주 목사는 곧바로 산지기를 풀어주었다.
편지를 쓴 사람을 찾던 관리들은 이 詩가 옥봉이 쓴 것임을 알게 됐다.
이 일은 곧 '조원'의 귀에 들어갔다.
조원(趙瑗)은 격노했다.
소실인 옥봉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고 詩를 써 공사에 관여한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조원'은 이 일로 바로 '옥봉'을 쫓아버렸다.
옥봉은 뚝섬 오두막에 방 하나를 얻어놓고 '조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편지와
눈물로 용서를 구하며 끈질기게 기다렸다.
자그만치 10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그러나 '조원'은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다시는 '옥봉'을 찾지 않았다.
마음이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한 '옥봉'은 잠적했다.
이후,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녀의 詩가 유독 애절하고...절절하고... 눈물로 얼룩져 애잔한 이유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조원(趙瑗)은 옥봉을 사랑하지 않은 게 거의 확실하다.
애초에 소실을 자청했을 때도 단칼에 거절했고, 아버지의 강요로 옥봉을 소실로
하는 수없이 받아들였다.
또 다른 사대부들이 소실로 맞아들인 기녀들의 詩作를 지원하고, 다른 문사(文士)
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모임을 주선해 홍보해주며, 문인의 동반자임을
자랑스러워 했던 것과, '조원'이 '옥봉'에게 보인 행보가 너무나 다르다.
이를 보면 두사람은 애초에 인연도 아니었고, '조원'은 옥봉을 전혀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일말의 동정이나 연민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쌍한 사람을 도우려고 詩 한 수를 썼다고 해서 곧바로 쫓아내고,
무려 10년 동안 눈물과 편지로 용서를 구했음에도,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값진 교훈을 얻을 수가 없다.
인연이 안 되는 사람과 억지로 인연을 맺으면, 두사람 모두에게 불행이다.
결국 해로하지 못한다.
그리고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훨씬 더 상처를 입게 된다.
인연(因緣)은 하늘이 만드는 일이다.
그걸 인간이 바꾸려는 생각 자체가 탐욕이자 교만이다.
한데도 이를 모른 채 무조건 밀어부쳐서 정을 나누면, 결국 상처만 남기고 불행한
삶이 이어진다.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 주위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만든다.
인연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탐욕이며,
또한 오만이다.
때문에 사랑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난잡하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런 행동은 진짜 인연을 놔두고 엉뚱한 사람과 좋지 못한 인연을 맺게 만드는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많은 처세서와 법정스님까지도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그토록
경계의 가르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인연은 때가 되면 저절로 만나게 돼 있다.
그래서 인연이다...
그러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다가와야 만날 수 있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욕심으로 엉뚱한 사람들과 이리저리 엮여서 다니면,
결국 하늘에서 허락된 진짜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그러므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모두 제 성격대로 하게 되고,
인간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하나...
잘못된 만남은 사정없이 끝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인연을 만날 수 있다.
한데, '옥봉'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먼저 손을 내밀었고... 무리해 '조원'의 소실이 됐으며... 끝내 사랑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과감히 돌아서지 못했다.
오히려 원망과 그리움에 사무쳐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종국엔 삶까지 놓아버렸다.
... 옥봉(玉峰)이 스스로 택한 인생이다.
오직 사랑에만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者!...
책임도 결국 스스로 져야만 한다.
그게 바로 냉엄한 人生의 法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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