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者, 萬物之始, 是非之紀也. 是以明君守始以知萬物之源,治紀以知善敗之端.
故虛靜以待令,令名自命也,令事自定也。 虛則知實之情,靜則知動者正.
有言者自爲名,有事者自爲形,形名參同,君乃無事焉,歸之其情.
故曰:君無見其所欲,君見其所欲,臣自將雕琢;君無見其意,君見其意,臣將自表異.
故曰:去好去惡,臣乃見素,去舊去智,臣乃自備.
故有智而不以慮,使萬物知其處;有行而不以賢,觀臣下之所因;有勇而不以怒,
使群臣盡其武.
是故去智而有明,去賢而有功,去勇而有强.
群臣守職,百官有常,因能而使之,是謂習常.
故曰:寂乎其無位而處,漻乎莫得其所. 明君無爲於上,群臣竦懼乎下.
明君之道,使智者盡其慮,而君因以斷事,故君不窮於智;賢者敕其材,
君因而任之,故君不窮於能;
有功則君有其賢,有過則臣任其罪,故君不窮於名.
是故不賢而爲賢者師,不智而爲智者正.
臣有其勞,君有其成功,此之謂賢主之經也.
<한비자(韓非子) 第 05篇 주도(主道)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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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는 만물의 근원이며, 시비와 선악의 기준이다.
그리하여 총명한 임금은 도를 지켜 만물의 근원을 터득하게 되며, 기준을 갖추어
성공과 실패, 공로와 과실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군주는 허심탄회하게 신하를 대하고, 신하 스스로 발표하게 하며, 또
그 책임을 지게하고, 일이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것을 기다린다.
허심탄회하면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상대의 움직임이 바르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말하고자 하는 자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일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도 자연스럽게
하게 한다.
이 표현과 결과를 비교하여 언행이 일치하도록 하면, 군주는 가만히 있어도 신하는
자연스럽게 그 실정을 털어놓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런 말이 있다.
군주는 자기 욕망을 알려서는 안된다.
그것을 알려주면 신하는 그것에 맞추어 겉치레에만 힘쓰게 된다.
또 군주는 자기 의사를 말해서도 안된다.
신하는 그것에 따라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만 보이려 애쓰기 때문이다.
또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군주가 자기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신하는 그 소질을 전부 보여주게 되고
또 군주가 지혜와 기교를 버리고 대하면, 신하는 군주의 의향을 몰라서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
때문에 군주는 지(知)가 있더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모든 신하에게 자기의 직분을
자각시키며, 군주는 비록 현명하더라도 과시하지 않고 신하의 동향을 관찰하며,
군주는 용기가 있더라도 그것을 발휘하지 않고 신하들로 하여금 용감성을 발휘하게
해야만 한다.
다시 정리하면, 군주가 자기 지(知)를 버리면 오히려 신하의 심정을 관찰하는 명(明)을
얻을 수 있고, 자기의 현(賢)을 버리면 신하는 각자 노력하게 되므로 오히려 효과가
있으며, 또 군주가 자기 용기를 버리면 신하는 저마다 용기를 발휘하므로 오히려
국가가 강대해진다.
신하들은 자기 직분을 지키며, 백관은 법에 따르게 되고, 능력에 따라 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상도(常道)라고 한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군주는 조용히 없는 것처럼 있어야 하며, 파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총명한 임금이 위에 있어 하는 일이 없으면 신하들은 군주의 의향을 알 수 없으며,
더구나 자기편은 간파되고 있으므로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다.
군주의 도는 신하 중의 지자(知者)에게는 그 지혜를 짜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의 지(知)는 막히는 법이 없다.
또 신하 가운데 현명한 자에게는 재능을 발휘시키고, 그것으로써 임용하므로 해서
군주의 능력은 무한하게 되고, 효과가 있으면 군주가 현명했기 때문이라고 일컫게
되고, 만일 과실이 있으면 신하가 그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므로 군주의 명예는 영원히 상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군주는 그러한 술책을 사용하면 현명하지 못해도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고,
무지하더라도 지신(知臣)의 모범이 될 수 있다.
수고하는 것은 신하이고, 성공을 독점하는 것은 군주인 것이다.
이것이 현군의 상법이라는 것이다.
* 한비자(韓非子, ? ~ BC 233)
중국의 법가(法家) 철학자로 법치(法治)의 원조이다.
생몰년도가 정확하지 않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전국시대(BC 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 귀족 출신이다.
처음엔 유가(儒家)인 순자(筍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봉건체계가 붕괴되는
혼란 속에서 나중엔 다른 학파를 따랐다.
왕에게 치세에 관한 충고를 했으나 이를 무시하자, 그때부터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따서 제목이 이름 붙여진 <한비자(韓非子)>이다.
한비자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알려질 만큼 지혜로 가득찬 책이다.
한마디로 법가 이론(法家 理論)의 총괄서이다.
형명(刑名)과 법술(法術)로 봉건 전제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바이블
이다.
특히 국가(國家)와 군주(君主)가 강해지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기법과 철학이 나온다.
때문에 우리나라 모든 대통령들 또한 마치 유행처럼 <한비자>를 운운하곤 했다.
하지만, 탐욕과 오만을 가슴에 품고 머리로만 아무리 백날 <한비자>를 떠든다고 해도,
이를 가슴과 영혼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별 깨달음도 또 소용도 없다.
만일 통수권자가 마음을 비워 오로지 국가와 민초를 위하는 심정으로 <한비자>의
지혜와 가르침을 겸손히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는 한층 더 강력해질 것이고 민초들
또한 훨씬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한비자>는 정치인의 통치술과 경영자의 경영술, 일반인의 인성과 인간관계는 물론,
삶의 전반에 걸쳐 많은 지혜와 교훈을 주는 매우 훌륭한 책이다.
진시황은 그의 전제 정부에 관한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한비자>를 통일국가의 정치 원리로 삼았다.
BC 234년, 진(秦)은 한나라를 공격했고, 한왕은 한비자를 진(秦)에 협상자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진(秦) 의 승상이자, 예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했던 이사(李斯)
는 '한비자' 때문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해 그를 투옥시켰다.
그리고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만들었다.
탐욕과 질시 때문에 결국 '이사'는 그 더러운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기게 됐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해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한, 자신에게도 또 타인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소용 또한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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