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나 고려 말기를 묘사하고 싶은 사람은 호암미술관 소장의
아집도 대련(雅集圖 對聯)의 고려인(高麗人)들을 참고하면 된다.
이 그림은 고려말의 그림으로, 관리들의 복식을 보면 관모 옆으로 길게 모시(帽翅 ,
모자 날개)가 붙어 있는 송나라의 복두(幞頭)가 아니라 당나라의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즉 송나라 복식을 이어오던 고려 중기가 아니라, 복식을 원나라로 고친 충렬왕 이후
어느 시기의 그림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충렬왕 시기의 원나라 관리들이 오사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공민왕의 복식개혁은
복두를 쓰는 송나라의 복식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민간에 전해지는 공민왕 초상화는 복두를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오사모(烏紗帽)를 쓰게 되는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아집도 대련(雅集圖 對聯) 일부>
<아집도 대련의 고려 관리들>
<노국공주와 공민왕 상(像), 공민왕이 송나라 복식인 복두(幞頭)를 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관례를 치르고 상투를 틀게 된 사람이 머리를 어깨 위로 늘어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비록 몽고풍 머리스타일이라고 해도 그런 전례는 없다.
고려가 복식을 원나라 풍으로 바꾼 시기는 이미 원나라가 몽골초원에서 중국내지로 옮겨가고
난 이후라, 중국 전래의 복식을 받아들여 착용하고 있을 때였다.
원나라는 중국풍의 복식으로 바꾸었는데, 고려는 몽고풍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이하게
머리를 풀어헤쳐 늘인 양식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고려시대의 복식은 관모 옆에 길게 장식이 뻗은 복두(幞頭)가 특색인 송나라 양식, 당나라의
오사모 양식, 그리고 몽고 전통양식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고려말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총각처럼 일제히 머리를 어깨위로 흘리고 있는 잘못된
묘사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만일 몽고풍으로 인물 묘사를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기를 바란다.
정확하게 철릭을 입고 몽고풍 둥근 발립(鉢笠)을 쓰고 있는 이포의 초상화와, '이화에 월백
하고'라는 시조로 유명한 이조년의 초상화를 참조하면 된다.
이들은 정확히 충렬왕이 원나라 복식을 받아들인 이후와 공민왕이 복식을 개혁하는 사이의
사람들이다.
만일, 대부분의 원나라 관리들이 하고 있는 오사모(烏紗帽)에 목이 둥근 단령(團領)의 의복을
사용하기 싫다면 이렇게라도 몽골 오리지날 복식으로라도 돌아가야 한다.
고려왕도 머리털을 내려뜨리기 보다는 차라리 둥근 발립(鉢笠)을 씌우는 것이 낫다.
원황제도 발립을 쓴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이들이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내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머리털도 어깨로 내려오고 있지 않음이 다시 확인된다.
몽고의 전래 풍습으로 묘사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고려인의 헤어스타일을
함부로 총각처럼 내려서는 안된다.
머리털을 어깨위로 늘어뜨리는 것은 관례를 치르지 않은 총각들이나 하는 스타일임을 잊어서
는 안된다.
부디 복식 고증자들이 아래의 초상화를 보고 머리털을 어깨 위로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이포(李褒 1287~1373)의 초상화>
<이조년(李兆年, 1269-1343)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