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의 강천모설(江天暮雪), 간송미술관>
앞서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에서, <강천모설(江天暮雪)>이란 詩를 소개하며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시제(詩題)와 화제(畵題)로
유행했던 주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왜일까?...
<강천모설>은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상팔경>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소상팔경'은 우리 산천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쳐서 동정호(洞庭湖)로
흘러가는 강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여덟 폭의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한데 이 '소상팔경'이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 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주 그림 소재로 등장하며 산수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역시 일본에도 그대로 전해져 <소상팔경>을 주제로 詩와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중국과 한국, 일본의 많은 시인들이 <강천모설>이란 제목으로 많은 詩를 남긴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또 김득신(金得臣)을 비롯해 많은 화가들이 '강천모설'이란 화제(畵題)의 그림을
많이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중국의 풍경을 직접 보고 詩를 쓰거나 산수화를 그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으로부터 전해오는 화책(畵冊)을 보고 상상을 하며 그렸다.
이 시대는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리는 '정선'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강력한
영향을 미쳤던 시기이다.
<진경산수화>는 1700년부터 1850년까지 150여 년간 조선에서 유행했던 미술 사조
(思潮)로,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진경(眞景), 또는 동국진경(東國眞景)이라고 불렀고, 일본에서는
신조선산수화(新朝鮮山水畵)라고 불리었다.
그럼에도 조선과 일본에서는 사대부 시인이나 화가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풍경을
매우 흠모해, 여전히 중국의 고사(故事)를 그림으로 많이 담아냈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8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산시청람(山市晴嵐) : 푸르며 안개속에 감싸져 있는 산속의 마을.
* 어촌석조(漁村夕照) : 저녁노을에 물든 마을.
* 소상야우(瀟湘夜雨) : 소상강(瀟湘江)에 내리는 밤비.
* 원포귀범(遠浦歸帆) : 멀리 떨어진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 연사만종(烟寺晩鐘) : 안개에 싸인 산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늦저녁 풍경.
* 동정추월(洞庭秋月) : 중국 동정호에 비치는 가을달.
* 평사낙안(平沙落雁) : 모래뻘에 날아와 앉는 기러기.
* 강천모설(江天暮雪) : 멀리 보이는 강 위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같은 화제(畵題)나 시제(詩題)로 많은 시와 그림이 많이 전해져내려 오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소상팔경의 8가지 주제로 詩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위의 그림을 그린 '김득신'은 단원 김홍도를 계승하는 풍속화의 대가이다.
단원과 함께 정조의 어진을 그렸을 정도로 뛰어난 화가였다.
그의 생몰연대는 1754~1822년으로, 영조 30년에 태어나서 순조 22년 때까지 살았다.
함께 활동하던 단원 김홍도보다 9살 아래이다.
집안 대대로 유명한 화원(畵員)을 많이 배출한 조선의 유명 화가 명문가 출신이다.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을 빛낸 풍속화의 대가(大家)로 꼽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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