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味醲嚴, 至味無味.
味無味者, 能淡一切味.
淡足養德, 淡足養身.
淡足養交, 淡足養民.
<축자소언(祝子小言)>
세상 사는 맛은 진한 술과 식초 같지만,
지극한 맛은... 맛이 없다.
맛없는 것을 음미하는 사람만이 능히 일체의 맛에서
담백해질 수가 있다.
담백해야 덕을 기르고,
담백해야 몸을 기른다.
담백해야 벗을 기르고,
담백해야 백성을 기른다.
* 세상 사는 맛을 진한 술과 식초 같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절묘한 표현 방법이 또 있을까?...
산다는 것은 때론 몽롱하고... 때론 독하며... 때론 맵고... 때론 신산하다.
그래서 現世의 삶은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의지해 넓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위험한 항해... 바로 고해(苦海)이다.
지금 전세계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미 지역과 아랍 지역은 때아닌 한파와 폭설로 난리를 겪고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얼었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우리나라도 어제 한파주의보에 이어 지금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추워야 할 지구촌 곳곳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한겨울에도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엊그제 태양에서 X 등급의 강력한 흑점 폭발이 발생해 방송국 카메라 렌즈에까지
그 흔적이 포착됐다.
마치 태양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보이는 흑점 폭발 흔적의 크기는, 무려 지구의
19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폭발과 함께 태양에서 방출된 강한 태양 입자들이 지금 지구의 남북극에
쏟아져 내리고 있다.
천문학(天文學)에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의 심각성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가 지금 거리가 가까운 북극항로의 운항을 자제하고,
시간이 좀 더 많이 소요되더라도 우회 경로를 선택해 운항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통신 장애로 인한 항공기의 단파 통신이나 GPS 장애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승객들이 방사능에 피폭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남북극 쪽에는 현재 방사선 입자수가 평소보다 무려 천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 이처럼 지금 이 시대는 자신과의 싸움, 악과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외에도
자연재해 와의 엄청난 싸움을 해야 혼탁한 시기이다.
때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맛이 마치 진한 술이나 식초 같을 수밖에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의 삶은 기본적으로 번뇌 와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 탐욕과의 싸움, 오만과의 싸움, 세상과의 싸움, 애욕과의 싸움,
악과의 싸움이다.
거기다가 이젠 자연재해 와도 싸워야 하는 시대, 바로 고해(苦海)이다.
한데... 이런 오탁악세(五濁惡世)를 살아가며 중심을 잘 잡고 세상을 살아가는
큰 덕목 중 하나로 많은 현자(賢者)들이 처세서와 경전에서 꼽는 것이 바로
담백(淡白)이다.
'담백'에는 세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욕심이 없고 순박한 성품의 사람...
음식의 맛이 깔끔하고 느끼하지 않은 것...
빛깔이 연하고 밝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현자들은 그토록 '담백함'의 중요성을 강조했을까?
난세(亂世)일수록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담백함'이 필요하다.
거짓과 위선, 탐욕과 오만, 관능과 애욕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지 못하면, 자신도
돌아보지 못하고, 또 세상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판단력 자체가 상실된다.
지금 이 세상은 모든 걸 자극과 쾌락, 감성과 막장에 의존해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때문에 많은 처세서와 경전들이 번뇌의 세상에 살수록, 삶의 가치를 순박함에서
찾아야 한다는 교훈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자칫 밋밋할 것 같은 담백함과 순박함 속에는 진실과 지극함이 담겨 있다.
진짜는 결코 요란하지 않다.
항상 가짜가 진짜처럼 흉내를 내거나 진짜처럼 보이고싶어 할 때, 언행이 훨씬
더 요란하다
인성(人性)이 담백하지 않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보는 시각 자체가 왜곡되거나 굴절된다.
자신이 보고싶어 하는 대로 세상을 보고, 믿고싶은 대로 믿으며, 그냥 판단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판단하고, 하고싶은 대로 거리낌없이 행동한다.
책임감이나 도덕심도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영향을
주고 해를 끼친다.
그래서 <축자소언>에서는,
담백해야 덕(德)을 기르고...
담백해야 벗을 기르며...
담백해야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 이런 혜훈(惠訓)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얼마전 블로그에 올린 '담백해야 진국이다'에 나오는 <채근담>의 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神奇卓異非至人, 至人只是常.
(기름지고, 진하고, 맵고, 단 것은 참다운 맛이 아니다.참다운 맛은 그저 담백하다.
신비롭고, 기묘하고, 남보다 뛰어나 보인다고 해서
지극한 사람이 아니다.
지극한 사람은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
성품도... 생각도... 사랑도... 우정도... 벗도... 가치관도... 세상살이도 담백해야
오탁악세 속에서 그나마 자기 할 일을 찾아 묵묵히 숙제를 해나갈 수가 있다.
한마디로, 모든 인간관계와 세상살이는 담백하고 순박해야 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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