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 BC 551~479)>
經魯祭孔子而嘆之
(노나라를 지나다 공자에게 제사하며 그를 탄식함)
夫子何爲者 선생은 무엇 하던 사람이기에
棲棲一代中 한 시대를 서성거렸던가
地猶鄹氏邑 머물렀던 땅은 추씨의 마을
宅即魯王宮 집은 노왕의 궁궐 안이었네
嘆鳳嗟身否 봉황을 한탄함은 자신의 불운을 탄식한 것
傷麟嘆道窮 기린을 상심함은 도가 다함을 한탄한 것
今看兩楹奠 지금 두 기둥 사이 제물을 보니
當與夢時同 꿈을 꾸던 때와 꼭 같네
~* 당현종(唐玄宗) 이융기(李隆基, 685~762) *~
<당(唐)의 6대 황제 현종(玄宗)>
당 현종... 하면, 당신은 무슨 생각이 나는가?
개원(開元)의 치(治)... 애민정치... 양귀비... 며느리를 아들에게서 빼앗아 후궁으로 맞이한
후안무치한 황제... 안록사의 난... 왕후 3명... 후궁 22명... 아들 30명... 딸 29명... 명민한
군주... 호색(好色) 때문에 당나라를 쇠퇴의 길로 이끈 황제... '백거이'의 장한가(長限歌)...
이 시대에 당 현종을 설명하는 여러 단어들이 있지만, 거기엔 놀랍게도 시인(詩人)이란
명칭도 들어있다.
놀랐는가?...
하지만, <전당시(全唐詩)>엔 당 현종의 詩도 많이 보인다.
'전당시'란, 청나라 때 당시(唐詩)를 모아 편찬한 책의 이름이다.
봉선(封禪)이란, 고대 중국에서 행해지던 제례의 하나인 제천행사(祭天行事)를 말한다.
태산 위에 흙으로 단을 쌓고 '하늘의 은혜'에 보답하던 행사를 봉(封)이라 하고, 태산 아래에
있는 양산에 땅을 파고 '땅의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를 선(禪)이라고 한다.
태산과 양산에서 지낸 하늘과 땅에 대한 두가지 제사를 합쳐서 봉선제(封禪祭)라고 부른다.
'사마천'은 그의 저서 <봉선서(封禪書)>에서, 이런 제천행사는 옛 제후와 왕조가 역대에
72회에 걸쳐 거행해 왔다고 기록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다만, 제천행사인 봉선제의 효시(嚆矢)는 진나라의 시황제인 진시황(秦始皇)일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데, 중국의 황제들은 그 유명한 산을 다 놔두고, 왜 하필 동쪽에 있는 태산(太山)에서
봉선제를 올렸을까?...
이는 동쪽으로부터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태산을 가장 길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동쪽을 가장 길한 방향으로 여긴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변화가 생겨, 동서남북 사방에 모두 제단을 짓고 제천행사를 실시했다.
북경의 남쪽에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천단(天檀)이 있고, 북쪽에는 땅에 제사를 지내는
지단(地檀), 동쪽에는 해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단(日檀), 서쪽에는 달에게 제사를 지내는
월단(月檀)이 있다.
고대 중국의 제례 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의식이 바로 제천행사이다.
그렇다면, 후대로 오면서 제천행사를 하는 회수가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정권 유지를 위한 신성화(神聖化)와 강력한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詩에서 '추씨읍'은 現 산동성 鄒縣 곡부현의 동남에 있는 곳으로, 바로 孔子의 출생지를
말한다.
'노왕의 궁궐'은 한나라 종실 노공왕(魯恭王)이 곡부에 궁실을 지었는데, 공자의 구택이 그
궁실 안에 위치했었기 때문에, 공자의 옛집을 말할 때 '노왕의 궁궐'이라고 칭한다.
현종(玄宗)이 공자(孔子)에게 묻고 있다.
선생은 무엇 하던 사람이기에 한 시대를 서성거렸던가?...
훗날, 사람들도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무엇 하던 사람이기에 한 시대를 서성거렸던가?...
우리는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각자, 이 별에 온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