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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어진(御眞) 완전 분석

아라홍련 2013. 11. 15. 04:22

        

    

                          <조선 제 25대 왕 철종 어진(御眞), 93X202cm, 국보 1492호>

     

 

        철종 어진(御眞)은 시대를 불문하고 임금이 군복(軍服)을 입고 있는 유일한 초상화이다.

        그래서 가치가 매우 특별나다.

        조선시대의 군복을 구군복(具軍服)이라고 한다.

        혹은 융복(戎服)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이전에는 '융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었지만

        조선 제 17대 왕인 효종(孝宗) 때부터는 좀 더 실용적으로 군복을 개량한 다음, 구군복(具軍服)

        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왕의 군복은 고위관리들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특히 현대에 유일하게 전해지는 임금의 군복본인 철종의 어진은 군복의 화려한 채색과 세련된

        선염, 무늬의 세밀한 표현 등에서 도화서 화원으로  임금의 어진 도사에 참여한 당대 최고인

        화원(畵員)들의 뛰어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어진의 왼쪽 상단을 보면, 予三十一歲 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 이란

        글씨가 적혀 있다.

        때문에 이 어진(御眞)이 철종 보령 31세인 1861년(철종 12년), 도사(圖寫)된 것을 알 수 있다.

        구군복 차림의 철종(哲宗) 어진은 용교기에 앉아 약간 우향(右向)한 좌안팔분면의 전신교의

        좌상이다.

        용안(龍顔)은 정면을 주시하고 있고, 오른손에는 등채를 힘있게 거머쥐고 있다.

        왼손은 자연스럽게 기자 손잡이에 올려놓은 자세를 취하면서, 엄지에는 붉은색 깍지를

        끼고 있다.

        왼손의 손가락 사이는 갈색 선으로 음영을 주었는데, 손등에 난 잔 털은 가는 선을 반복하여

        세밀히 표현했다. 
        기자 뒤에는 표피(豹皮)을 깐 것이 조금 보이고, 족좌 아래에는 화려한 용문석(龍紋席)이

        깔려있다. 

        용문석 양쪽에는 금방 비상할듯 날아오르는 청룡 무늬를 그려 넣었는데, 다섯 발가락을

        가진 용(龍)은 족좌대와 같이 화면의 왼쪽 방향을 향해 있다. 

        또 왕의 왼쪽에는 호피처럼 보이는 환도(環刀)가 수직으로 놓여 있다.    

        그러나 이는 호피가 아니라 거북이 등껍질이다.

        당시 왕실에서 가장 사용하던 최고급 공예품 재질 중 하나였다. 

        유실된 임금의 오른쪽 부분(어진 왼쪽 한켠)엔 아마도 동개와 활, 화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효종 때, 군복을 입을 때는 이 세가지를 장착해야 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다. 

        왕이 활을 쏠 때 사용하는 깍지를 끼고 있는데 활과 화살, 동개가 안 보이니 부자연스럽고 

        격이 맞지 않아 보인다. 

        어진 복원작업을 할 때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이를 그려넣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승하하기 2년 전인 31세의 철종은 어진에서 일국의 군왕으로 부족함 없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철종은 갸름한 얼굴에 눈이 큰 편으로 용모 자체에서 섬세하고 자상한 인품이 느껴진다.

        군왕으로서는 유약한 이미지이다.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용안은 옅은 감색으로 칠하고, 얼굴의 외곽과 이목구비는 짙은 갈색 선으로 나타내었을 뿐,

        오목한 부분에 음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눈동자는 검은 동공 주위에 이금(泥金)을 사용해 광채를 나게 했고, 수염도 짙은 갈색선에 

        이금을 섞어 사용했다.

        이금(泥金)이란... 아교풀에 갠 금박(金箔) 가루를 말한다.

        주로 왕실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다.    

 

        군복의 색깔은 주황색이고, 동달이인 소매는 빨강색이다.

        그 위에 검은색 전복(戰服)을 입었다.

        다시 그 위에 수를 놓은 광대(廣帶)를 겨드랑이 밑으로 맨 다음, 그 위에 남색 전대(戰帶)를

        길게 늘어뜨렸다.

        화려한 자수가 수놓아진 광대는 그림에서 조차 흔히 발견되지 않는 중요한 유물이다

        옷 전체에는 양태문과 운용단문이 수놓아져 있다.

        또 진청색 바탕에 왕의 존엄성을 상징하는 용문(龍紋)이 수놓아진 흉배와 견배를 달고 있다.

        고위 관리들의 군복 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관모(冠帽)는 영조와 정조 때 유행한 죽전립(竹戰笠)이다.

        죽전립은 한때 사치품에 해당돼 규제되기도 했던 물품이다.

        모부(帽部)의 정면은 큰 옥판으로 장식하고, 모자 위에는 옥로(玉鷺)를 단 뒤, 공작 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옥로'란... 갓 위에 다는 해오라기 모양의 옥 장신구를 말한다.

        인터넷이나 역사 관련 블로그들에서 이를 '봉황'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철종 어진은 당시 주합루(宙合樓)에 봉안됐다가, 그후 종친부 내 천한전(天漢殿)에 봉안됐다. 

        1875년에는 경모궁 망묘루로 옮겨졌다가, 1899년에 선희궁 평락정으로 옮겨졌다.

        그 뒤에는 창덕궁 선원전 제 10실에 봉안됐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6.25 동란 때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보관 장소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다른

        어진들은 모두 불타서 소실됐다.

        만시지탄이나 어진(御眞)들을 흑백사진 한 장도 남겨놓지 않은 당시 담당자들의 무관심한

        행위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그나마 철종의 어진은 반쪽이 남아서 사실에 근접해 복원됐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렇다면 철종은 왼손잡이일까, 아니면 오른손잡이일까?...

        혹여, 뜬금없는 질문 같은가?

        아니다.

        어진(御眞)을 보면 철종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바로 왕이 왼손 엄지손가락에 낀 깍지 때문이다.

 

 

                              

 

                     

        어진 원본의 이 부분을 확대해 보면, 철종은 분명 좌궁(左弓)이다.

        활을 쏠 때 사용하는 깍지(角指)가 왼손 엄지에 끼워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쇠뿔 암깍지이다.

        뼈, 상아, 뿔, 가죽 등으로 만드는 깍지는 시위를 거는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깍지를 사용하면 맨손으로 시위를 당기는 것보다 더 강하게 당겨, 훨씬 더 먼 거리로

        화살을 날려보낼 수가 있다.          

        철종이 끼고 있는 반지 모양으로 생긴 것이 암깍지, 반지에 돌기 모양의 혀(舌)가

        붙어있는 것이 숫깍지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숫깍지를 많이 사용했다. 

        이는 숫깍지가 암깎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강한 활을 쏠 때는 숫깍지를 사용했다. 

        무관들은 숙종 때부터 숫깍지를 사용했다.

        효종 때는 암깍지가 강하다고 알려져 이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숙종이 시험해 본 결과,

        숫깍지가 군복까지 뚫을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태종, 세조에 이어 신궁(神弓)으로 불리울 만큼 활 쏘는 솜씨가 특출났던 정조(正祖)는

        분명 강한 활을 사용해 숫깍지를 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철종은 평소에 문무(文武)를 다 갖춘 정조처럼 열심히 활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도 어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왜일까?... 

        상처가 나지 않도록 깍지 속에 붉은색 골무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훈련을 많이 해 굳은살이 박힌 사람들은 골무를 사용하지 않는다.

        강한 활이 아닌데도 골무를 사용한걸 보면, 철종은 평소에 활쏘기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어진(御眞) 하나만 가지고도 150년 전의 엄청난 정보들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만 읽어가지고서는 결코 역사의 진실을 알 수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문학도... 역사도... 과학도... 미술도... 하늘도... 음악도... 심지어 사랑까지도 심도있게

        생각하고 공부한 꼭 그만큼만 보이고 느낄 수가 있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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