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부산으로 옮겨졌다가 전란에 불타서 훼손된 철종 어진(御眞)>
<1987년 복원된 조선 제 25대 왕 철종 어진(御眞), 국보 1492호>
맨 위에 있는 조선 제 25대 왕 철종의 어진(御眞)은 철종 당시 두 번째로 그려진 초상화이다.
첫 번째 어진은 즉위한 지 3년째 되던 해인 1852년(철종 3년), 두 본이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러나 현재 이 어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철종이 승하하기 2년 전인 철종 12년(1861년) 신유년(辛酉年), 구군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군복본(軍服本)과 강사포본(絳紗袍本)이 두 번째로 그려졌다.
어진은 왕이 초상화를 남기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그리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엄격한 절차에 의해서 행해지는 큰 국가행사 중 하나이다.
기록을 살펴보면, 신유년 2월 23일부터 어진도사업무(御眞圖寫業務)가 시작됐다.
철종의 어진을 그리기 위해 검교제학 김병익, 김병국, 원임제학 남병철, 직제학 김병필 등이
감동관에 (監董官)에 임명됐다.
규장각에서 펴낸 어진도사사실(御眞圖寫事實)에 의하면, 이한철(李漢喆)과 조중묵(趙重黙)이
주관 화사를 맡았고, 김하종(金夏鍾), 박기준(朴基駿), 이형록(李亨祿), 백영배(白英培),
백은배(白殷培), 유숙(劉淑), 김용원 등이 동원됐다.
이들 모두 당대에 산수와 인물에 가장 능한 쟁쟁한 도화서 화원이었다.
소설 이몽(異夢)과 내 블로그 글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들이 보일 것이다.
안동 김씨이면서도, 아들을 조선 제 26대 왕으로 만들려고 고심참담하는 흥선군에 협조를
하던 인물들이 나온다.
김병국, 김병익, 김병필... 그리고 남병철도 김좌근의 양자인 김병기와 이종 간이다.
감동관 전체가 안동 김씨들인 셈이다.
또 철종 말기인 1861년엔 이미 안동 김씨 세력들 중에서도 흥선군에 협조하는 세력들로
권력이 교체됐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화원 중에 철종의 두 번의 어진을 그리는 데 모두 참여한 유숙(劉淑)을 자세히 보라!
어디서 들었던 이름 아닌가?...
내 블로그 글 <수계도권(水禊圖卷)>, <수계 용어에 대한 정리>, <유숙의 그림들>에서 이미
세 번씩이나 다루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수계도권>에서 나는 '유숙(劉淑, 1827~1873)'을 이렇게 소개했다.
號는 혜산(惠山), 조선 말기의 화가.
도화서 화원이었고, 벼슬은 사과(司果)를 지냈다.
1852년과 1861년에 철종 어진(御眞) 제작에 모두 참여했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그림지도를 받았다.
화풍은 김정희파의 남종문인화풍을 따랐으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화조화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영향도 발견된다.
조선 말기의 회화 풍토와 경향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화가 중 사람이다.
특히 장승업(張承業)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유명 박물관에는 거의 다 '유숙'의 그림이 소장돼 있다.
어진도사업무(御眞圖寫業務)가 시작되고 두 달여만인 4월 21일, 어진이 완성돼 드디어
주합루(宙合樓)에 봉안됐다.
철종은 어진도사업무를 감독한 벼슬아치와 화원(畵員)들에게 공을 치하하고, 시상을
하는 사급(賜給)을 끝으로 행사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어진을 그린 화원들이 늘 시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명종실록(明宗實錄)을 보면 조선 제 11대 왕인 중종(中宗) 사후, 추사(追寫)한 어진이
잘못 그려졌다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논의가 조정에서 있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보면 어진(御眞)이 얼마나 엄숙하게 그려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복원된 철종의 두 번째 어진은 누가 그렸을까?...
놀랍게도 어진의 복원은 미술 전문가가 아닌, 한의학박사인 최광수 박사가 그렸다.
철종 어진이 복원되던 1987년 당시, 한국전통미술인회 회장을 맡고 있던 인물이었다.
당시 '이강칠' 문화재 전문위원은 <철종대왕 어진 복원에 대한 소고(小考)>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광수 박사가 문화공보부로부터 정식으로 복원 승인를 받고 반쪽 남은 철종의
철종의 어진을 그의 화실로 옮겨놓고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원본대로의 규격에 맞는 광초를 구하는 문제, 설채(設彩)에 있어서
국왕의 어진이기 때에 국산색채를 사용하는 문제, 소실된 부위에의 자세 복원
문제 등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복원 모사작업은 어진에 나타난 전립에서부터 바닥에 깔린 화문석의 문양까지
모든 것은 실제를 바탕으로 철저하게 고증한 다음 그려졌다.
최광수 박사는 어진을 복원 모사하는 3개월 14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를 하고, 정갈한 한복에다 갓까지 받쳐 쓰는 의관정제를 한 다음
붓을 드는 등 정성과 치밀한 계획, 능숙한 기예로 복원모사가 가능했다.
이렇게 모사된 철종 어진(御眞)은 2006년 9월 11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