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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을 믿고 세상을 가지고 놀면...

아라홍련 2013. 11. 9. 23:18

 

 

 

 

          倚才高而玩世               높은 재능을 믿고 세상을 가지고 노는 자는  

       背後須防射影之蟲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침을 당할 것에 대비해야 하고, 

       飾厚貌以欺人               후덕한 얼굴로 꾸며 남을 속이는 자는 

       面前恐有照膽之鏡          그 바로 앞에 속을 훤히 꿰뚫어보는 사람이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醉古堂劍掃, 小窓幽記 /  

 

 

      * 위의 글은 <취고당검소>와 '소창유기' 중 '성(醒)'에 나오는 글이다.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는 명말(明末) 때 육소(陸紹珩)이란 인물에 의해서 편집,

           출판돼 당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책이다.

           일본에서는 <채근담>보다도 더 인기 있는 책이다.

           책 내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육소형'이 노자와 장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한마디로, <취고당검소>는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극치를 달리던 명나라 말기 때 만들어진

           청언소품집(淸言小品集)이다.

           일종의 아포리즘(aphorism)이다.

           '청언(淸言)'이란, '깨끗한 '을 뜻한다.

           '탁(濁)한 것'들, 즉 속세와 명리, 물욕 등과 상대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의미한다.

           '소품(小品)'은 '짧은 분량 속에 재치와 운치가 있거나 길게 여운을 남기는 글'을 말한다.

           책 제목의 검소(劍掃)란... '칼로 번뇌와 욕망 죽이기'란 뜻이다.

 

           이 시대는 전형적인 오탁악세(五濁惡世)를 보여주고 있다. 

           오탁악세의 특징 중 하나는, 의식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오로지 얕은 재능과 권력만으로 

           세상을 쥐락펴락 하면서 득세를 하고, 세상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기운'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때문에 그 사람의 노력이나 인격 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 능력을 '삶의 주제'로 선택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오로지 인기와 권력, 돈에 만족하며 재능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다.

           이들은 비슷한 의식수준에 있는 무리들을 특정 사상과 이념으로 이끌면서 인기를 얻고,

           그들 위에 마치 교주처럼 군림하며 자신의 이익과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킨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와 문학, 종교, 예술, 학계는 물론, 조직과 단체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논객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포진돼 있다.  

 

           영적인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들의 삶의 제 1 주제를 '통제'라고 분류하는데 별 이견이 없다. 

           이는 이들이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주제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잘 선도해서 자신은

           물론, 추종자들의 영적인 발전까지 도모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그 재능을 좋은데 사용한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발전적으로 변할 것이다.

           또 많은 이들의 영혼에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인간의 역사에 존재했던 성현(聖賢)들은 모두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수와 부처가 그랬고, 훌륭한 고전을 남긴 이들이 그랬으며, 마틴 루터 킹과 간디도 그랬다.

           또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도 그런 역할을 했고, 많은 예술가들도 그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탐욕과 명리,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유혹에서 멀리 떨어지고자

           세속의 쾌락을 기꺼이 포기한 채 철저히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특히 법정스님의 삶을 살펴보면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吉祥寺)라는 절을 만들기까지, 기부자인 대원각 소유주 길상화 '김영한'

           보살로부터 천 억을 기부받는 데 무려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법정스님이 천 억의 기부를 안 받으려고 자그만치 10년 동안이나 버텼기 때문이다. 

 

           훗날 법정스님은 길상사의 회주(會主) 임에도 불구하고, 법회가 있을 때 이외에는 서울에서 

           머무는 일이 없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혼자 나무를 하고 밥을 지으며 현세의

           승려로서는 그럴 수 없이 검소한 생활을 했다. 

           법정스님이 종교를 불문하고 폭넓게 존경을 받았던 이유이다.              

           현재 우리나라 최대 종단을 이끌고 있는 수뇌부 승려들이 도박, 음주, 횡령, 은처(隱妻)와

           사치로 계속 구설에 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있었던 모 종단의 총무원장 선거 과정을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치판과 똑같다.

           한마디로 판박이이다.

           총무원장 선거가 세력 다툼, 즉 밥그릇싸움으로 철저히 변질됐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본분이나 수행 정도, 모범적인 삶과는 전혀 연관도 없고 또 일치하지도 않는다.

           선거에 당선된 세력이 밖으로 내건 명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와 '개혁'이다.   

           당신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큰 사찰의 승려들이 돈방석에 앉아 1억원짜리 시계를 차고, 억대의 외국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수시로 외국을 들락거리고, 술집과 호텔에서 도박을 하고, 룸살롱을 드나들면서 

           속세 사람들보다도 더 화려한 세속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

           또 몰래 감추어 둔 마누라와 자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실천하며 청정하게 살았던 삶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허나, 이런 일이 어디 불교계에만 국한된 얘기겠는가?...

 

           사람을 끌어모으는 기운을 갖고 태어나 노력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인기와 권력, 이익을

           얻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이런 재능이 곧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숙제 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런 재능에는 반드시 올바르고  겸손한 마음, 검소한 생활로 자기 성찰을 철저히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올바로 이끌 사명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신과 추종자들의 영적인 발전을 집단적으로 도모하는 훈련으로 이익되게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인기와 화려하고 풍족한 삶에 도취되면, 그만큼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고 숙제하기도

           훨씬 더 힘들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정스님처럼 삶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하고, 검소하게 살면서 

           탐욕과 사치, 덧없는 인기와 명성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혹독히 다스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

           법정스님이 편한 서울 생활을 거부한 채, 인적이 없는 강원도 오두막에서 살았던 이유도

           바로 속세 와의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난 인기와 권력, 재물을 가지고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향유하면서, 추종자들을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세력이나 정치적 이념, 사상으로 

           무리를 이끌기 위해 쉴 새 없이 선동을 일삼는다.

           깊은 사유를 하지 않고, 순간순간에 반응하며, 말초적 쾌락에 집착하고, 아무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추종자들을 이용한 자신의 이익과 명리, 공허한 의식세계를 만족시키려는 

           저속한 허영심이 자리잡고 있다.

           또 분별력 없는 자들이 무조건 충성하고 맹종하며 따르는 것을 권력과 인기로 착각하며, 

           끝을 모른채 도랑방자해진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과 학계, 문화 예술계, 종교계가 모두 혼란스러운 이유이다.

           육소형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와 <소창유기(小窓幽記)>의 (醒)에서 가르치는

           이 글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내리는 경고이자 교훈이다. 

                              

                 높은 재능을 믿고 세상을 가지고 노는 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침을 당할 것에

                 대비해야 하고, 후덕한 얼굴로 꾸며 남을 속이는 자는 그 바로 앞에 속을 바로

                 훤히 꿰뚫어보는 사람이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분명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사람 과는 정신세계와 의식세계의 차원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다만, 사람들이 이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꿰뚫을 수 있는 사람들...

           '정의' 라는 명분 뒤에 꼭꼭 숨겨놓은 탐욕과 거짓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들... 

           바로 혜안(慧眼)과 심안(心眼)이 열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성인들과 공자, 장자, 맹자, 노자, 육소형에서 법정스님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공부라고 가르쳤다. 

           또 심안과 혜안이 열리면 그때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거울처럼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상대방의 언행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지 파동으로 느끼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탐욕과 인기를 위해 몽롱한 상태로 좌우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앞으로만 내달리는 사람들...

           돈과 명성을 좇아 미친 듯 달려가는 사람들...

           다른 이들의 마음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마치 자신의 인격이나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이익이 있다면 정의와 상관없이 무조건 편을 가르며 싸우는 사람들...

           권력의 부스러기를 잡기 위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사람들...

           작은 사욕을 챙기기 위해 다수의 이익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  

           성직자와 수도자의 본분을 잊고, 신도를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

           소신과 줏대도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 위의 글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하늘의 소리이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