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居 二
(집을 옮기고, 2)
春秋多佳日 봄 가을에는 좋은 날이 많으니
登高賦新詩 오늘도 높은 곳 올라 시를 읊노라
過門更相呼 문 앞 지나면 서로 불러 들여
有酒斟酌之 술 따라 잔 권하며 마시노라
農務各自歸 농사일 바쁠때는 각자 밭에 가고
閒暇輒相思 한가롭게 틈이 나면 서로 생각하여
相思則披衣 친구 생각에 이내 옷 걸치고 찾아가
言笑無厭時 웃으며 담소하니 싫증날 때가 없다네
此理將不勝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거늘
無爲忽去玆 아예 이곳에서 나갈 생각 말아라
衣食當須記 의식은 마땅히 내 손으로 만들어야지
力耕不吾欺 애써 농사 지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 있으리라
~* 도연명(陶淵明, 365~427) *~
* 중국에서는 도연명을 '중국 문예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다가
간 인물'로 칭송한다.
한데, 좀 의외이지 않은가?...
도연명은 별다르게 높은 벼슬을 지낸 적도 없고, 권세나 현세적 공명(功名)이 있었던
인물도 아니다.
남아있는 저술이라고는 시 몇십 편과 논설이 있을 뿐이다.
한데도 그가 세상을 떠난지 1.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성은 찬연하게
빛나는 불꽃과도 같다.
또 문인에게 있어 '훌륭한 인간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그의 성품은 시풍(詩風)과 마찬가지로 참되고 담백하다.
때문에 원기 있고 이론을 좋아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를 보면서 절로 외경의 마음을
품게 만든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독자들에게 도연명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참된 인생 애호자'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맑고 깨끗한 삶을 살되, 세속적 욕망에 반항하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관능적인 면 또한 잃지 않는 생활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이루었다.
내가 도연명의 詩를 좋아하는 것도 그의 올곧고 깨끗한 성품과, 따뜻한 인본주의 사상
때문이다.
도연명은 팽택의 현령 시절, 고향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사동(使童)을 보내 집안 일을
돕게 했다.
그때 아동과 함께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다.
이 역시 사람의 아들이니, 학대해서 부리지 말고 잘 대우하라!
천한 신분의 종을 노예처럼 함부로 대하고 동물처럼 학대하던 시절...
도연명은 자식들에게 어린 사동을 '절대로 학대하지 말고 잘 대우하라.'고 명했다.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
그 아이 역시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원숙한 인품과 성숙한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삶과 詩가 일치하는 사람...
담백한 시풍과 질박한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 바로 도연명이다.
훗날, 소동파가 괜히 도연명을 높이 평가한 게 아니다.
삶이 하도 맑고 깨끗해 심지어 '처사(處士)'라고 공식적으로 불린 문인은 도연명이유일하다.
위의 시에서 짐작(斟酌)이란, '술을 따라 잔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뜻이다.또 무위(無爲)란, 자연(自然) 그대로 되어 있고,사람이 힘들여 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즉 인연(因緣)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 생멸 불변(不變)함을 말한다.衣食當須紀란,'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땅히 벼리로 삼아야 한다.'는 뜻으로 의식(衣食)을해결하는 데 힘쓴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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