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居 一
(집을 옮기고, 1)
昔欲居南村 예전부터 남촌에 살고 싶었는데
非爲卜其宅 집자리가 좋아서가 아니라네
聞多素心人 아는 것이 많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있기에
樂與數晨夕 그와 더불어 즐거이 아침저녁을 보내고 싶었네
懷此頗有年 이런 생각을 몇 년 동안 마음에 두었다가
今日從玆役 오늘에야 비로소 집을 옮겼네
敝廬何必廣 낡은 초가집이야 어찌 반드시 넓어야만 하는가
取足蔽床席 잠자리 눕힐 공간이면 족하다네
隣曲時時來 이웃에서 때때로 찾아와서
抗言談在昔 소리 높여 옛날을 얘기하고
奇文共欣賞 좋은 글이 있으면 같이 즐기며 감상하고
疑義相與析 글 뜻에 의문이 있으면 서로 함께 풀어가네
~* 도연명(陶淵明, 365~427) *~
* 도연명에겐 이런 벗들이 있었다.
아는 것이 많고 마음이 깨끗해서 함께 더불어 즐거이
아침저녁을 보내고 싶은 사람...
그래서 그는 벗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귀향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비록 초라한 집이었지만, 벗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서로 담론을 펼치고,
좋은 글이 있으면 같이 즐기고 감상하며. 의문이 들 땐 함께 토론하면서
실마리를 풀어갔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도연명은 408년에 남촌(南村), 즉 율리(栗里)로 이사를 갔다.
<귀거래사>를 쓰고 고향으로 내려간 지 3년 만에 화재가 났기 때문이다.
그가 식솔들을 이끌고 이사를 간 곳은 율리...
심양(潯陽)의 남쪽에 있는 상경에서 서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이다.
즉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의 서남에 있는 시상산(柴桑山) 율리원
(栗里原)을 말한다.
이 율리에는 선인(善人)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연명이 함께 있고 싶어서 율리로 이사까지 가게 만든 벗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율리에는 소심(素心)한 사람... 즉 '마음이 소박하고 허식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한 은경인(殷景仁)과 안연지(顔延之), 그리고 강주(江州)의
장관인 왕홍(王弘) 등이 살고 있었다.
... 이들 모두 관료 출신 엘리트 지식인들이다.
도연명과 생각과 마음, 영혼이 통하는 진정한 벗들이었다.
술을 많이 마셔 궁핍한 생활이었지만, 그곳에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친한 벗들을
만난 도연명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도연명이 20년 간 세속에 나오지 않고 은둔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었다.
또한 도연명이 세상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영향이 컸다.
훗날 '왕홍(王弘)'은 남조 송(宋)의 내각 책임자에 올랐고, 절친인 '안연지'는 남송
문단의 지도자가 됐다.
특히 강주의 태수인 '왕홍'은 평소 도연명의 성품을 흠모해 그와 우연을 가장한 자리를
여러번 만들어 교류를 튼 뒤,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위의 詩에서 '抗言談在昔'에서 항언(抗言)은 '상대에 반대해서 의논을 주장하는
것'이고, 담재석(談在昔)은 '고금의 성쇠나 성패 등을 토론한다.'는 뜻이다.
또 기문(奇文)은 '뛰어난 문장'을 말하고, '疑義相與析'은 '의문되는 것을 토론을 통해
해명하여 밝히는 것'을 말한다.
도연명은 그냥 농사만 지은 게 아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의무 또한 다했다.
무엇보다 인품이 물처럼 맑고 깨끗하며, 영혼이 자유로웠다.
후대에 그가 중국 전원시의 대표적 작가로 칭송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난 이 시(詩)를 읽을 때마다 도연명의 벗들이 한없이 부럽다.
이 오탁악세에 저런 벗을 가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들이 사는 곳으로 이사가서 함께 차를 마시며 책에 대해 얘기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담론을 펼치며, 열정적인 토론을 벌인 뒤 마시는 술이 감로수처럼 느껴지는
그런 벗...
이는 소심(素心)한, 즉 '마음이 소박하고 허식이 없는 사람'들일 때만 가능한
관계이다.
현실은 어떤가?
모두들 좌우로 찢겨져 특정 이념과 사상에 사로잡혀 눈을 희번덕거리며, 늘 분노를
품고 하늘에 삿대질하면서, 철저히 사리사욕과 패거리들의 이익 만을 위한
밥그릇싸움 임을 감춘 채 다수의 이익을 대변해 투쟁하는 것처럼 위장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을 거짓으로 세뇌시키다가 급기야는 자신이 스스로 세뇌되어 분별력을
잃고,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 채 탐욕의 짙은 그림자를 감춘 뒤 입에 게거품을
물고 상대방을 비판하며 싸운다.
이들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정의(正義)'를 알기나 할까?...
이건 우정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벗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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