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은
장작 사이의 공간...
숨 쉴 공간이다
너무 많은 좋은 것
너무 많은 장작을
바싹 붙여 쌓는 것은
오히려 불을 꺼뜨릴 수도 있다
한 바가지의 물이
거의 틀림없이
불을 꺼뜨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러므로 불을 피울 때는
나무뿐 아니라
나무 사이의 공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장작 쌓는 법을 배웠듯이
빈 공간을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떻게 땔감과 땔감의 부재가
함께 불이 일어나게 하는지
알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따끔씩 장작 하나를 가볍게
올려놓는 일
불은
단순히 빈 공간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커지고
스스로 어떻게 타오를지를 아는 불꽃은
그 빈 공간과 함께
제 길을 찾아간다
~* Judy Sorum Brown *~
*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과 '여백'이다.
너무 찰진 관계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사랑도, 우정도, 사회적 관계도 너무 밀착돼서 '너'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관계는 결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세계에 영원한 사랑과 우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영원'이란 단어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神의 몫이다.
과도하게 밀착된 관계는 작은 상처만 받아도 금방 배신감을 느낀다.
누구나 내가 주는 만큼 상대방도 똑같이, 아니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기를 원한다.
만약,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준 것만큼 받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면, 인간은
분노와 함께 배신감마저 느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관계도 소원해진다.
사랑도... 우정도... 부부관계도... 사회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집착과 욕망,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마음은 사랑과 우정의 아름다운
향기를 쉽게 퇴색시키고 만다.
이 세상에서 마음처럼 잔인한 무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적당한 '공간'과 '여백'을 가지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만 예의가 존재한다.
사랑할수록, 친밀할수록 '공간'과 '여백'을 존중하고 서로 적당한 예의를 지키면,
심리적인 피로 때문에 쉽게 생기는 권태(倦怠)도 쉽게 극복할 수가 있다.
또 상대방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한층 더 깊어진다.
인간과 인간과의 예의도 결국 '공간'과 '여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고독(孤獨)을 감당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고독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오로지 타인과의 인간관계에만 집착하고 몰두하면
자신을 잃을 수가 있다.
고독에 침잠할 줄 모르면서, 인생의 의미를 오로지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찾으려고
집착한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명리(名利)를 얻었든간에 그는 이미 영적으로
패배한 사람에 불과하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의 본질을 모르며, 또한 이 별에 무슨 숙제를
하러왔는지조차 모른 채 방방 뛰어다닌다면, 그런 인생을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별에 와서 인간의 '깨달음'에 영향을 끼쳤던 모든 현자(賢者)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고독에 침잠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인간과의 관계에서 '공간'과 '여백'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성찰과 통찰의 능력이 생긴다.
Judy Sorum Brown 의 詩는 이런 깨달음을 주는 영혼의 종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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