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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은 괴로워...

아라홍련 2013. 9. 18. 21:20

                    , photo    

 

 

            난 오랫동안 명절이나 송년, 새해를 도서관에서 맞이했다.

            바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하나의 전통이나 관례처럼 돼서, 꼭 일 때문이 아니라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한데, 나이 때문인가?...

            이젠 주위에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올해는 추석 준비를 일주일 전부터 일찌감치 시작했다.

            주로 쇼핑몰을 통해 과일 등 명절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구입했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또 서점도 다녀왔다.

            추석빔 때문이다.

            내 명절 선물은 꼭 책으로 챙긴다.

            미리 연휴동안 읽을 책의 주제를 선정하고, 책의 목록을 살펴 책을 자세히 확인한다.

            그리고 대형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데, 이 또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추석 준비로 워낙 돈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세상에나... 이번에는 책을 살 때마다

            많이 망설였다.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책을 사는데 처음으로 여러번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책을 구입했다.

            권수가 워낙 많은데다가, 이번엔 비싼 책들이 다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책을 사면서 '허리가 휠 정도이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이렇게 일찍부터 추석 준비를 했건만, 어차피 한번은 마트랑 재래시장을 다녀와야만

            했다.

            나를 오랫만에 본 시장의 상인들은 반색하며 하나같이 이렇게 물었다. 

                        "사모님이 어떻게 손수 시장을 보러 나오셨느냐."고...

            민망한 나는 우물쭈물 이렇게 답했다.

                        "장은 제가 봐야죠."

            그러자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볼 때마다 똑같이 응수했다.

                        "그렇죠. 장은 사모님이 직접 보시고, 일하는 사람들한테 시키셔야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쯤되면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하다.

            이들이 생각하는 나는, 최소한 일하는 도우미를 항상 3명 정도는 부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도우미가 한명도 아니고... 두명도 아니고... 세명씩이나...? 

            그들은 왜 나를 그렇게 대단한 사모님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매우 궁금하다...

                                         

            그들은 오래된 내 단골가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내 신상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다.

            그들은 내 직업도 모르고, 또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데, 그들이 모두 확신하고 있는 사실은 단 하나... 내가 '대단한 사모님'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대체 누구인가?...

            그 큰 시장통에서 수십 년 씩 장사를 해온 베테랑들이다.

            한마디로 사람 전문가이다. 

            척하면 느낌으로, 또 얼굴과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의 신분 정도와 생활상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한데도 그들은 나를 '대단한 사모님'으로 확신하고 있다.

            내가 바빠서 한동안 시장에 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이들은 내가 크루즈 여행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줄 알고 "어느 나라 다녀오셨느냐?"고 묻곤 한다.  

            오래전, 내가 시장에서 처음 보는 상인에게 물건을 깎은 적이 있는데 상인이 

            웃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부잣집 사모님이 뭘 이런 걸 깎으세요."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물건을 더 달라고 하거나, 가격을 깎지 못한다.

            내가 한동안 재래시장에 발길을 끊은 건 이 때문이다. 

 

            단골가게 상인이 내게 "기사를 데리고 왔느냐?"고 물었다.

            거의 버스를 타고다니는 나는 당황해서 "복잡해서 차를 안 가지고 왔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내가 산 물건을 번쩍 든 상인이 내게 묻지도 않고,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는 우리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도, 하는 수 없이 비싼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나는 그들의 확신처럼 돈을 많이 벌던지,

            아니면 돈 많은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매우 타당한 논리를 생각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香) 하나 피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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