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일간, 댓글 1,000여 개를 읽었다.
8월 27일, 불성무물(不誠無物)의 주인공인 김능환 前 대법관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 로펌인 '율촌'의 고문으로 간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 한 포털사이트엔 단숨에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기사가 나온 직후의 댓글 중 98%가 김능환 전 대법관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아니, 비판이라기보다는 거의 쌍욕에 가까웠다.
하필 내가 '내 블로구 조회수 1위' 글로 <한 청백리의 불성무물>을 선정한지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은 터에 발표된 기사라, 그의 청렴함을 청백리에 비유했던 나의 충격 또한 컸다.
Daum과 Naver 모두에서 이 글이 오랫동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세상에 흔치 않게
돈과 권력에서 자유로운듯 아까운 이력을 훌훌 떨쳐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간 그의 용기를
많은 이들이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한 청백리의 불성무물'이란 블로그 글을 통해, 다른 권력자들이 보인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그의 행동을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는 많은 국민이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총리 지명까지 사양한 한 고위 공직자의
색다른 행보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받고, 또 그의 용기있는 행동이 법조계 고위 관리들의
사표(師表)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여망(輿望)이 담겨 있었다.
단숨에 댓글 800개를 넘게 읽은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 보았다.
거기엔 이미 소속으로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란 활자가 확연히 새겨져 있었다.
거기다가 전직 대법관 출신인 그는 대형 로펌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심사로 눈을 떼지 못한 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난 열흘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며 보냈다.
댓글과 블로그 글 몇 백개를 더 확인하며, 심란한 시간들을 보냈다.
인간에게 과연 돈과... 명예... 권력... 탐욕... 지조(志操)란 무엇인가?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청백리의 불성무물>과 <내 블로그 조회수 1위글>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조용히 조치를 취했다.
기사가 나온 직후, 댓글을 단숨에 쉬지않고 800여 개를 읽었던 난 네티즌들의 반응을
누구보다 가장 정확히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네티즌들의 실망과 한숨, 통탄과 비난, 개탄이 난무했다.
선동을 일삼는 자들은 전 대법관의 연금이 1,000만원이나 된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며
비난을 부추겼다.
기사 발표 직후의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다.
* 편의점 코스프레...
* 청백리 쇼...
* 가짜 청백리...
* 국민 기만...
* 사기...
다혈질에 쌍욕도 거침없이 잘하고, 나이에 비해 성격을 전혀 다스리지 못함을 트위터로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한 기자는,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쇼를 찬양하지 말지어다."란
제목으로 김능환 전 대법관을 향해 이렇게 십자포화를 날렸다.
연금수령액이 400만원이 넘어 '충분히 우아하게 살 수 있던' 그가 편의점을
시작한 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까먹었거나, 아내가 편의점 같은 걸 취미로
즐기고 싶어했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손 벌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 이다.
만약에 그게 아니라면 그냥 청승이었을 뿐, 사회의 귀감은 전혀 아니었다.
이런 편협하고 악의적인 논조의 칼럼을 썼다면 그 기자의 사유의 폭이 평소 얼마나
얕고, 좁으며, 사상이 편향적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함구한 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고소를 하지 않고 무반응을 보이고 있는
전 대법관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점주인.... 편의점 아저씨.... 봉사... 무료법률 상담 기대... 이런 뉴스와 기사들로
단번에 국민을 설레고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가 불과 5개월 만에 태도를 바꾼 건 큰
충격이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국민들의 열망과 존경을 단번에 저버린 채, 법조계 다른 전직 고위 공직자들의 행보와
똑같이, 전관예우로 3대까지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떼돈을 번다는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간 행동을 마치 변절자처럼 인식한 국민의 대다수는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일으켰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때 심리적인 상처를 상당히 입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동안 전후사정을 알아보니 대충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나이 60을 갓넘은 나이에 너무 일찍 손에서 일을 놓았다.
* 그의 경력을 높이 산 대형 로펌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이 있었다.
* 사업 경력이 없는 부부는 편의점의 매상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그가 대다수 국민들의 여망을 뒤로 한 채 대형 로펌 고문으로
가면서, 자신의 심중을 맹자(孟子)의 말로 피력했기 때문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이 말은 "꾸준히 생산하지 않으면 꾸준한 마음이 어렵다."는 뜻이다.
본래 항산항심(恒産恒心)이란, '일정한 생산(生産)이 있으면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일정한 직업과 재산을 가진 사람은 마음에 그만큼 여유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활과 정신이 불안정해 하찮은 일에도 동요한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면 '무항산 무항심'이 된다.
'꾸준히 생산하지 않으면, 생활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 꾸준한 마음을 지니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 대목은 위민정치(爲民政治) 이념에 투철했던 '맹자'가 '등(騰)'이라는 소국(小國)의
국정 고문으로 초빙된 후, 치국의 방책을 묻는 등문공(騰文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말에는 정치란, '민생의 안정을 제일로 쳐야한다'는 맹자의 정치철학이 담겨 있다.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의 말처럼 김능환 변호사는 연금도 있고, 집도 있고, 재산도
있다.
한데, 그 나이에 무슨 돈이 그리 많이 필요하기에 그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며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나는 아직도 그것이 궁금하다...
작가는 연금도 없다.
고정수입이 없다.
내가 작가의 장래를 고민하며 힘들어 할 때, 나의 사부(師傅)는 내게 단호히 말했다.
하루 밥 세끼만 먹으면 된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는 하루에 밥 두끼를 먹기 시작했다.
벌써 수십 년 째이다.
나는 필요한 책을 마음껏 사기 위해 평생 명품은 손에 만져보지도 않았다.
그런 열망조차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
미용실을 안 간지 30년이 다 돼 간다.
나는 스스로 머리를 매만진다.
또 세탁소에 안 간지도 30년이 넘었다.
스스로 바느질하고, 옷수선을 하며, 다림질을 한다.
나의 미적 감각은 이렇게 훈련되어진 것이다.
비싼 음식은 평생 사보지도, 먹어보지도 않았다.
이것은 나의 긍지이며, 학문을 한 사람으로서의 지조(志操)이고, 또한 자부심이다.
또 자신을 다스리는 훈련이며,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도(求道)의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이 전통을 깨트리기엔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까워서
난 여전히 이렇게 살아간다.
우리는 김능환 변호사의 대형 로펌 행보를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지금 정부의 초대 총리 지명을 사양한 인물이다.
그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이번 결정은 그가 택한 인생이며, 그의 한계이고, 그가 살아온 삶의 연장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늘 자신의 심중을 고전과 성현들의 말씀으로 피력하는 것을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전과, 모든 성현이 돈과 권력, 탐욕, 정욕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이 알고, 아무리 많이 배웠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배운 그대로 행하고 살지 않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가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모든 종교가 그렇게 가르치고, 또 모든 성현들이 고전을 통해 그렇게 가르치셨다.
좀 이른 감은 있지만, 김능환 변호사의 나이나 조건이면 무료 법률상담도 좀 하고,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작은 서점을 낼 차분한 준비도 하고, 오욕칠정을 다스리며
봉사하는 삶을 살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나는 가지고 있다.
환경이 안 좋았겠지만, 뭔가 절박한 사정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용기와 모범을 보였어야만 했다.
그만큼 그가 국민들에게 준 신선한 충격은 대단했다.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국민이 느끼는 긍지와 기쁨, 기대는 상상 외로 컸다.
나는 이런 명예와 보람이 결코 총리나 대형 로펌 고문 변호사보다 적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자신이 지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 비장한 것이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행보를 보였건, 그건 오로지 그의 자유이다.
이를 마치 죄인처럼 비난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험담하는 것은 소인배의 짓이다.
편협한 인간의 한풀이 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김능환 변호사가 국민들의 뇌리에 '청백리'로 영원히 행복하게 각인될
절호의 기회를 돈과 맞바꿨다는 사실이다.
총리 지명을 사양하고 아내의 편의점을 돕는 그를 '청백리'로,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레주
(Noblesse Oblige)로 칭찬하는 글을 블로그에 두 번이나 올렸던 나는, 그래서 그의 행보가
안타깝다.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는 돈과 권력, 섹스에서 자유롭기가 그렇게 힘든가보다.
오늘 터진 검찰총장의 11살짜리 혼외 자식 얘기가 더욱 그런 생각를 하게 만든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