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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글 5 (그림으로 역사 읽기)

아라홍련 2013. 8. 28. 21:00

 

 

      블로그 시작한지 10개월...

      한번쯤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서 그동안 블로그 글 순위 매기기를 해봤다.

      Naver 블로그와 Daum 블로글을 합쳐, 검색 유입량과 조회수를 종합해 가장 검색량이 

      많았던 글과, 내가 썼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 이 두가지를 뽑아 정리해 보았다.

      한데 '내가 좋아하는 글 3위'로 뽑았던 '풍속화로 거침없이 읽는 조선의 역사'에 예상

      밖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 나타났다.  

      아마도 풍속화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다양하게 찾아보는 새로운 시각에 재미를 느끼고,

      또 여자 작가로서는 드물게 남자에 대한 해부를 너무 적나라하게 해서 충격과 재미를

      함께 느낀 모양이다. 

 

      이런 글을 더 올려달라는 간곡한 요청 때문에, 하는수없이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로 역사를

      공부하는 글 몇 개를 '내가 좋아하는 글' 순위에 집어넣어 더 올리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처음 접하는 방문자는 호기심을 느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전에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보다 그동안 내 블로그와 함께 해오면서 역사와 고전에 많은 지식이 생겼기

      때문에 새로운 재미와 유익함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 글 '그림으로 역사 읽기'와 다른 글 하나만 더 포스팅 하고, '내가 좋아하는 글' 시리즈는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림으로 역사(歷史) 읽기

                                                 (2013. 3. 29일의 글)

                     

         <월하정인(月下情人, 달 아래의 정인들). 신윤복의 화첩 중에서. 간송미술관 소장>

 

 

   이틀 전,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중 한 명인 혜원 신윤복의 여러 그림들을 블로그에 올렸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냥 쭈욱 한번 내려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읽는 법을 배우면, 그림 한 장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가 있다.     

   특히 고화(古畵)는 현대그림들과는 다르게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림과 역사, 고전, 문학이 시대상과 결합됐기 때문이다.

   특히 풍속화를 많이 그린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는 각 그림마다 화제(畵題)를 담아, 

   그림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숨겨놓았다.   

   하지만, 그림을 제대로 보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읽어내려면 많은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훈련이 돼야지만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보물찾기처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미술관을 찾아다니고, 전시회를 다니며, 미술사 강의를 듣고, 값비싼 미술 관련 책들을  

   구입해서 읽는 등 공부를 하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고전(古典)이 기본적으로 공부가 돼 있어야만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이 가능하다.   

 

  월하정인(月下情人)은 간결한 터치로 그렸음에도,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특히 사랑을 많이

   받는 그림이다.

   왜일까?...

   그림에서 에로틱한 정념... 밀회...은밀함... 금단의 사랑... 등이 설핏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 당시의 비밀연애와 사회상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오늘은 '월하정인'을 보고, 그림 속에 숨겨진 내용을 읽어보도록 하자.

 

   그림에 쓰여있는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이란 글은 혜원(蕙園)의 자작시가 아니다.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란 이 의미심장한 시구는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선조 때 좌의정에까지 오른 주은(酒隱) 김명원(金命元)의 詩에서

   따온 시구(詩句)이다. 

   조선후기의 웬만한 시조집에는 모두 실려있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유행가였다.

   식자(識者)라면 누구나 줄줄 외울 정도로 유명했던 시이다.

   詩의 전문을 한번 살펴보자.  

 

                 窓外三更細雨時          삼경 깊은 밤, 창밖에 보슬비 내리는데
                 兩人心事兩人知          두사람의 마음은 두사람만이 알리라
                 歡情未洽天將曉        나눈 정 아쉬운데 날 먼저 새려하니
                 更把羅衫問後期       
나삼 자락 부여잡고 훗날의 약속을 물어보네        

                                       

   위의 詩에서 나삼(羅衫)이란, 얇고 가벼운 비단으로 만든 적삼을 말한다.  

   혜원 신윤복은 월하정인을 그리면서, 당대에 유행하던 이 詩에서 화제(畵題)를 따왔다.

   1793년 음력 7월 15일 부분월식이 있던 삼경 때, 두 사람의 밀회를 목격한 혜원은 문득

   '김명원'의 시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詩가 당대에 유행가처럼 번졌던 이유는, 김명원유명한 연애사무관하지 않다.  

   급제 전, 혈기 왕성한 시절의 김명원은 화류계에서 놀기 좋아하는 유명한 한량이었다.

   그러다 아리따운 한 기생과 정분을 쌓게 된다.

   한데, 어느날 이 기생이 그만  권문세가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김명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정인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세가의 집 담을 넘어가 기생과 여러번 통정(通情)을 하다가 그만 발각되고

   말았다.

   조선시대에는 남의 첩을 건드렸을 경우, 중벌을 면치 못했다. 

   당시, 형이 통사정을 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한데, 그 후에도 김명원은 권세가의 첩인 옛 정인을 계속 잊지 못해 또다시 통정을 하다가

   결국 큰 사건으로 비화됐다.

   김명원의 아버지는 대사 김만균(萬鈞)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국정쯤 된다.

   어머니 또한 현감 안준의(安遵義)의 딸이었다.

   한마디로, 대단한 명문가였다. 

   이름을 '목숨이 제일 중요한' 명원(命元)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귀한 양반댁 자제였다.

   결국 아버지가 선조에게 빌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한 김명원은 24살 때인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그리고 

   27살이 되던 해인 156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며 승승장구해 선조 때 결국 좌의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김명원의 詩가 후대에까지 유행했던 데에는, 남의 애첩이 된 정인을 잊지못해 온갖 사건을

   일으키며 뚝심을 보인 그의 유명한 연애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 그럼 다시 월하정인도로 돌아가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들을 파헤쳐 보자.

   월하정인에서 첫번 째로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밀회(密會)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불륜이다.

   그것도 아주 애절한 통정(通情)이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삼경(三更)에 만날 수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밤 10시부터 통행금지가 엄격히 시행됐다.

   만약 삼경에 돌아다니다가 순라꾼들에게 발각되면, 엄청나게 곤장을 맞아야만 했다.

   이 이야기는 내 역사소설 이몽(異夢) 첫 장에도 나온다.     

 

             바루 종소리가 울리면 밤새 사대문을 지키던 군사들은 성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의 통행을 허락한다. 

             어젯밤 순라꾼들에게 잡혀 열음기막에 구치된 통금 위반자들은 곧 끌려나와

             곤장을 맞고 난탕을 벌일 것이다.

             초경 직후나 오경 직전 적발된 자는 곤장 열 대, 2경이나 4경 때 적발된 자는

             스무 대, 3경 때 적발된 자는 서른 대...

             곤장을 맞은 자들은 헤진 엉덩이를 부여잡고 저춤저춤 눈물바람으로 돌아갈

             것이다.

             서른세 번째 종소리가 다시 목멱을 한 바퀴 휘감고 긴 여운을 남긴 채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몽 1부, 7p>           

       

   때문에 삼경에 만나는 사이라면 두사람이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관계이거나, 결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금단(禁斷)의 사랑'을 뜻한다.

   이 그림에서 묻어나는 은밀함과 묘한 에로티시즘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비로소 그림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가 있다.

 

   자, 그럼 이번엔 그림에 나오는 두 사람의 옷차림을 한번 살펴보자.

   한량으로 보이는 남자의 옷차림은 매우 호사스럽다.

   갓의 크기가 유난히 큰 것을 볼 때, 부유한 명문가 댁 도련님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분과 갓의 크기는 비례한다.

   출신이 낮으면 갓의 크기 또한 작다.

   관자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사내는 아직 과거에 급제하기 전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남자는 외모도 준수하지만, 행색이 매우 고급스럽다.

   도포자락이 고급스럽고, 긴 갓끈 하나는 멋들어지게 어깨에 터억 걸쳤다.

   멋을 아는 세련된 한량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발 코와 뒤축을 옥색으로 댄 멋진 고급 가죽신을 신고 있어 세련미가 물씬 풍긴다.

 

   그렇다면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의 옷차림은 어떤가?...

   옥색 치마에 자주색 저고리 깃, 끝동을 댄 저고리를 입은 것을 볼 때 양반댁 여인으로

   추정된다. 

   이는 옷차림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치마와 동색이면서 더 연한 색으로 만든 쓰개치마를 쓴 것을 보면 세련미가 넘친다.  

   쓰개치마가 머리 위로 높이 올라가 있다는 것은 큰 가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채가 크다는 것은 곧 부(富)를 상징한다.

   권세가인 부잣집 애첩으로 짐작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여인은 또 치마를 묶어 올려, 하얀 속곳이 오이씨 같은 버선 위로  드러나게 했다. 

   또 저고리 끝동과 같은 색의 고급 가죽신을 신었다.  

   이런 옷차림은 정조 대에 유행했던 여인들의 가장 세련된 옷차림이다.  

   조선의 여인들 중 가장 세련된 옷차림을 했던 부류는 바로 기녀들이다.

   내명부와 사대부댁 여인들까지 기녀의 옷차림을 유행처럼 따라해서 사회문제가 될

   정도였다.  

 

   이번엔 그들의 표정과 발의 동선을 한번 살펴보자.

   월하정인도에서 나타나는 혜원의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여기에서 읽을 수가 있다.

   다소곳하게 쓰개치마를 둘러쓴 여인의 뺨엔 농염한 춘정이 슬쩍 물들어 있다.

   한데, 남자의 발은 이미 얼굴의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그리고 남자는 호주머니를 뒤지며 뭔가를 꺼내주려고 하고 있다.

   아쉬움에 사랑의 정표(情表)라도 주고가려는 것인가?...

 

   이 그림을 해석하는 데에는 두가지 방향이 있다.

   첫 번째는, 가장 깊은 밤인 삼경에 남의 여인을 몰래 불러내 어디론가 가자고 재촉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여인이 수줍은 얼굴로 잠시 망설이며, 멈칫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두 번째는, 두 사람이 옆에 보이는 집에서 만나 이미 열락(悅樂)을 나눈 뒤, 방금 밖으로

   나온 상태이다.

   서로 갈길을 달리 해 헤어지기 전, 아쉬움이 남은 두 남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초롱불을 든 남자는 여인에게 뭔가를 주려고 주머니를 뒤지고 있고, 여인은 묘한 표정으로

   다소곳하게 서있어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 당신은 어떤 쪽으로 월하정인을 해석하고 싶은가?

 

    물론, 단서는 있다.

    혜원이 그림 위에 김명원의 詩 일부를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

    부분월식이 있던 날, 그것도 가장 깊은 밤인 삼경 때 목숨을 걸고 은밀히 만난 사람들...

    이를 목격한 신윤복이 순간 김명원의 詩를 떠올렸다면, 월하정인에 나오는 여인의 신분은

    기생 출신으로 권문세가의 애첩이 된 여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남자는 마치 예전의 '김명원'처럼 사랑하던 정인을 권문세도가의 애첩으로 뺏긴 뒤,

    깊은 밤 은밀히 만나 통정을 하는 한량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이런 유명한 말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가?

 

             늙어서 기첩(妓妾)을 두면, 반드시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남자들, 또 이마빡 치며 자지러지게 생겼다...

 

    화첩 속 이 작은 그림 한장엔, 은밀한 이야기와 함께 사랑, 역사, 당대의 성풍속, 고전, 

    인간심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들이 골고루 담겨있다.

    이런 걸 그림에서 읽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림을 감상한다'고 얘기할 수가 있다. 

    당신은 蕙園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을 보고 어떤 해석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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