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작가가 이탈리아에서 5일간 잠복해 있다가 찍은 반딧불이 사진
반딧불이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당신을 처음 고향 마을에 데리고 간 날
밤의 마당에 서 있을 때
반딧불이 하나가
당신 이마에 날아와 앉았지
그때 나는 가난한 문학청년
나 자신도 이해 못할 난해한 시 몇 편과
머뭇거림과
그 반딧불이밖에는
줄 것이 없었지
너무나 아름답다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해 줘서
그것이 고마웠지
어머니는 햇감자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반딧불이로 별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자란 고향에서는
반딧불이가 사람에게 날아와 앉곤 했지
그리고 당신 이마에도
그래서 지금 그 얼굴은 희미해도
그 이마만은
환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 류시화 *~
* 반딧불이에 대한 몽환적인 그리움은 늘 나에게도 있다.
그래서 역사소설 이몽(異夢)에도 반딧불이가 여러 번 나온다.
공부가 끝나면 반딧불이가 많이 사는 냇가 숲 속을 향해
일제히 달음박질쳤다.
원범과 동영은 경쟁하듯 반딧불이를 잡아 봉이 옷에 붙였다.
봉이는 금방 별빛처럼 발광하며 숲 속의 정령처럼 반짝거렸다.
서낙한 분애는 기어코 버드나무 위까지 기어 올라가 반딧불이를
잡다가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몽 1부, 33p>
기억의 골짜기는 매양 깊고 험준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했다.
봉이에 대한 기억 하나하나마다 찢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수반됐다.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듯 몸서리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기억의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어김없이 숨이 막히고 혼몽했다.
반딧불처럼 소소하게 시작된 기억의 행렬은 때론 달무리가 되고,
때론 은하수가 되어 왕의 영혼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기억이 상처가 되고, 상처가 다시 기억으로 남았다.
상실감과 외로움, 박탈감이 동시에 성심을 어지럽혔다.
<이몽 2부, 95p>
어젯밤 꿈속으로 봉이가 찾아왔다.
화인(化人)인듯 분상에 바쳤던 다홍치마에 자주색 삼회장을 물린
연두색 곁마기 저고리 차림이었다.
봉황초 비단 꽃신도 신고 있었다.
왕은 혜각사 밑 천상화원에서 봉이와 함께 등롱초로 꽈리를 만들고,
호드기도 만들어 불었다.
어우렁그네를 탈 땐 천상을 나는 듯 가슴놀이가 마구 놀뛰었다.
동무들과 어울려 물수제비를 뜨다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엔 반딧불이를
잡았다.
온몸이 발광하는 봉이 모습은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웠다.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은 훗날 극락정토의 같은 연꽃에서 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다.
엄지손톱을 이마에 대고 영원한 약속도 했다.
왕은 봉이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려고 꿈속에 나타난 것 같아
밤새 봉이를 껴안고 흐느껴 울었다.
<이몽 2부, 149p>
김시연 작가는 정말 반딧불이를 좋아하는게 분명하다.^^
Apres un reve(꿈을 따라서)/G. Faure(가브리엘 포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