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客
(유객)
有客淸平寺 청평사에 객이 있어
春山任意遊 봄산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鳥啼孤塔靜 새는 울고 외로운 탑은 고요하고
花落小溪流 꽃은 떨어져 실개울에 흐른다
佳菜知時秀 좋은 나물은 철을 알아 빼어나고
香菌過雨柔 향기로운 버섯은 비온뒤라 부드럽구나
吟行入仙洞 중얼거리며 걷다가 신선골에 들어가니
消我百年愁 인생 백년의 시름이 모두 사라지네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
* 무림(武林)에는 내가 좋아하는 한학에 정통한 한 분이 있다.
상당한 고수이다.
우린 서로 일면식도 없다.
한데, 이 분은 공식적인 한학자가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유명한 전문가이다.
한데, 웬만한 한학자들보다 훨씬 더 전문적으로 한학을 공부해 이미 어느 경지에
도달한 분이다.
그래서 본연의 임무도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인터넷 상에서 후학들에게
경서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스스로 공부하며, 가르치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분이다.
경서의 정확한 해석으로 강호(江湖)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명성이 드높다.
특히 난 이 분이 漢詩를 해석한 것을 좋아한다.
직역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끄럽다.
물론 이분보다 더 한시를 잘 번역하는 분도 있지만, 아주 드물다.
오히려 마음대로 의역을 해 걸작들을 훼손하는 경우를 왕왕 보아왔기 때문에,
한학에 정통한 학자가 번역한 것 외에는 차라리 이 분처럼 직역을 하는 것을
나는 더 선호한다.
이분은 특히 운율과 평측에 정통해 한시 번역이 훌륭하고, 현대시를 한시로
번역하는 것도 자유자재로 한다.
이쯤되면, 이미 어느 경지에 오른 것을 의미한다.
이분이나 내가 詩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휴식(休息) 때문이다.
다른 것들은 '공부'에 들어가지만, 詩를 읽고 감상하는 것은 '휴식'을 갖는 시간이다.
공부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기 위해 시를 읽거나
번역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한시나 현대시, 예술사진, 천문사진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특히 좋은 사진은 시각적으로 안구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좋아한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詩 '유객(有客)'은 위에서 언급한 무림의 고수가 번역한
詩이다.
한데 이분이 詩를 번역한 다음, 밑에다가 이런 글을 달아놓았다.
청평사, 아마 춘천 소양호에서 배타고 들어가면 있는 그 절인가보다.
김시습이 봄에 청평사에서 할일없이 묵었나보다.
이를 본 순간, 난 화들짝 놀라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아닙니다, 고수니임~! 그게 아닙니다."
....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기 때문이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詩 '유객(有客)'에 나오는 '청평사'는
소양호에서 배타고 들어가면 있는 바로 그 청평사(淸平寺)가 맞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오봉산에 있는 그 사찰이다.
하지만, "김시습이 봄에 청평사에서 할일없이 묵었나보다."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이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땅콩이다!
김시습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김시습의 詩 1 '작청작우(作晴作雨)를 소개할 때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김시습은 조선 세조 때에 청평사에 세향원(瑞香院)을 짓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조선의 천재', '五歲 신동', '오세(五歲)'로 불리던 '김시습'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해 조선 제7대 왕(世祖)으로 즉위하던 날, 21살의 나이로
지조의 삶을 위해 속세를 버리고 출가했다.
그가 출가한 곳은 설악산의 오세암(五歲庵))...
그리고 경주 남산에서 7년간 칩거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인 <금오신화>를 완성한다.
32세 때인 1466년, 청평사에 들어와 세향원(細香院)이라는 초막을 지은 뒤 은거(隱居)에
들어갔다.
詩를 번역한 고수의 말처럼 잠깐 청평사에 놀러갔던 게 결코 아니다.
'김시습'은 청평사에서 꽤 오랫동안 둔거(遁居)했다.
이때 김시습은 학매(學梅)라는 제자를 두었는데, 그는 후대에 서산대사의 법맥에 닿게
되는 인물이다.
현재 세향원의 위치에 대해 이론들이 있지만, '이자현의 부도'로 알려져 있는 곳의
아래쪽으로 추론하는 의견이 우세하다.
늘 언급하지만, 한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사적 시대적 배경은 물론, 풍속과 인물사에
대한 세세한 정보까지 알아야만 한다.
유객(有客)이라는 제목은 두보(杜甫)의 詩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자조'와 '자기성찰'의 뜻이 담겨 있다.
이 詩의 수련(首聯)에는 유한(幽閑)과 초매(超邁)의 품격이 잘 나타나 있기에,
훗날 '허균'은 이 시를 읽고 '한껏 한적하다(閑適自任)'라고 평했다.
위의 詩에서 "새 울어 외로운 탑은 고요하고"는 '고독감'을, "꽃은 떨어져 실개울에
흐르며"는 '공허함'을 담고 있다.
내가 이 詩 한 수를 해설하는 데 무려 7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김시습... 두보... 세조... 단종... 학매... 이자현... 허균...
특히 '이자현'은 고려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漢詩의 향기가 그윽한 것은 이처럼 시대와 역사, 인물, 감성, 철학, 교훈을 한꺼번에
관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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