泛海
(바다에 떠서)
掛席浮滄海 돛 걸고 푸른 바다에 뜨니
長風萬里通 긴 바람 만 리에 통하네
乘槎思漢使 뗏목 탄 한나라 사신이 생각나고
採藥憶秦童 약캐러 간 진나라 동자도 생각난다
日月無何外 해와 달 어찌 해외라고 없겠나
乾坤太極中 하늘과 땅은 태극 속에 있는 것
蓬萊看咫尺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
吾且訪仙翁 나 또한 신선을 찾을 수 있겠네
~* 최치원(崔致遠) *~
* 최치원(857~ ?)
신라의 대학자이자 대문장가이다.
字는 고운(孤雲)과 해운(海雲).
신라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진성왕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阿飡)을 받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6두품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868년(경문왕 8년)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서경(書京)에 체류한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시(主試)한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빈공과'는 외국인 전용 과거시험을 말한다.
그뒤 동도(東都, 洛陽)에서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이때 <금체시(今體詩)> 5수 1권과 <오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100수 1권,
<잡시부(雜詩賦)> 30수 1권 등을 지었다.
876년(헌강왕 2년) 강남도(江南道) 선주(宣州) 율수현(漂水縣, 現 남경 남쪽으로
남경 국제비행장 동남쪽 15km)의 현위를 시작으로 벼슬생활을 시작했다.
881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황소의 난' 때 관군 총사령관인 '고변'의 비서관으로
참전해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의 유명세 때문에 당나라에서 문명(文名)을
날렸다.
885년 신라에 돌아온 '최치원'은 헌강왕에 의해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郞知瑞書監)에 임명되어 외교문서 등의
작성을 담당했다.
그러나 문란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만년엔 가족을 이끌고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했다.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스스로 유학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불교에도 폭넓은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특히 선종(禪宗) 뿐만 아니라 화엄종(華嚴宗)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또 도교(道敎)에도 관심을 보여 유.불.선 모두에 달통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서로 <계원필경(桂苑筆耕)>, <고운집(孤雲集)> 등이 있다.
위의 詩 '범해(泛海)'는 최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용했던 詩이다.
지난 6월 20일, 소동파의 사(詞) 수조가두(水調歌頭)를 소개하며 설명했듯 중국의
국가주석들은 외국 정상과의 회담이나 국제회의에서 연설을 할 때에는 고대 중국의
뛰어난 시인들의 詩를 인용하면서 회담이나 연설을 부드럽게 이끌어 가는 것이
관례이다.
한데, 이번엔 신라의 대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詩를 인용했다.
그가 12살에 당나라로 조기유학을 간 후 과거에 급제하고 관리생활을 하는 등,
무려 17년 동안이나 당(唐)에 거주하다가 신라로 돌아온 대학자였기 때문에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치원'은 학문과 문장으로 중국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확대회담 모두에서 시진핑 주석은 "한국과 중국은 역사가 유구하다'면서,
통일신라 시대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孤雲 최치원의 漢詩 '범해(泛海)'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당나라 때 최치원 선생님은 중국에서 공부하시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
'괘석부창해 장풍만리통(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이란 시를 쓰셨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만리를 통하네.'입니다.
상대국에 대한 세심한 배려의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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