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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오절(端午節)...

아라홍련 2013. 6. 13. 22:55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오늘은 음력 5월 초 닷새, 단오(端午)였다.

         단옷날은 우리나라 4대 명절(설, 한식, 단오, 추석) 중 하나이다.

         한국을 비롯해 中國과 日本에서 지켰던 중요한 명절이다.

         '단오'라는 이름 외에도 수릿날(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端陽)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같은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역술(歷術)에 의해 붙여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수릿날은 신라 때 단오절(端午節)을 부르던 우리 고유의 명칭이다.  

         고대에는 홀수를 양(陽)의 기운으로 일컬었다.

         특히 홀수가 두 번 겹치는 날은 밝고, 높고, 따뜻한 것을 겹겹으로 두었다고 하여

       '길상(吉祥)의 날'로 생각해 경사스러운 날로 여겼다.

         음력 1월 1일의 설날, 5월 5일의 단오, 7월 7일의 칠석, 9월 9일 중양절 등을 명절로

         주요 명절로 지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5월 5일을 가장 태양의 기운이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 명절로 생각했다.

         '수릿날'의 '수리(水瀨)'란 뜻은 고(高), 상(上), 신(神)을 의미한다.

         일년 중 '최고의 날'이란 뜻이다.

         농경사회에서는 파종을 하고 모를 낸 후 약간의 휴식이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단오절이다.

         때문에 이날 하루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음껏 놀이를 즐기며 보냈다.

         단오(端午)에는 약초를 캐거나 창포를 문에 꽂아두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다.

         또 청포주나 약주를 마시고, 쑥으로 인형이나 호랑이를 만든 뒤 문에 걸었다.

         이는 약초나 창포, 쑥 등의 강한 향기와 약성으로 재액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차륜병(車輪餠)이라고 하여 수리취를 넣어 둥근 절편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창포탕을 만들어 세수를 하고, 홍색과 녹색의 새옷을 입었다.

         창포의 뿌리로 만든 비녀에 수(壽)나 복(福)의 글자를 새긴 뒤, 비녀 끝에 붉은

         연지를 발라 머리에 꽂아 재액을 물리쳤다.

         이것을 단오장(端午粧)이라고 불렀다.

         또 단오날에는 그네뛰기와 씨름, 탈춤 등 여러 가지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해서지방(海西地方)에서는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 탈놀이를 공연했고,

         강릉지방에서는 남대천의 넓은 공터에서 단오굿판이 열렸다.

 

         그렇다면 단오절(端午節)에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날 임금은 신하들에게 쑥호랑이(, 艾虎)를 하사했다.

         쑥호랑이는 잔 짚을 사용해 호랑이 모양을 만들고, 비단조각으로 꽃을 묶어 쑥잎을

         붙여서 머리에 꽂도록 만든 것이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수유(萸)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아 나쁜 기운을 없애는

         풍속과 비슷하다.

         이는 명대(明代)에 이후(李珝)가 편찬한 세시잡기(歲時雜記)에 "단오날 쑥을 가지고

         호랑이 형상을 만들고, 또 비단을 잘라서 작은 호랑이를 만들며,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는다."고 기록된 것을 본뜬 것이다.   

         또 공조(工曹)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각 궁의 신하와 시종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살이 흰 대나무 화살 같은 것이 40~50개나 됐다.

         이것을 백첩(白貼)이라고 했고, 칠을 한 것은 칠첩(漆貼)이라고 했다.

         신하들은 대부분 이 부채에 금강산 1만 2,000봉을 그렸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붉은 부적을 만들어 진상했다.

         궁궐에서는 이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문설주에 붙여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막았다.

         진신사대부의 집에서도 문설주에 부적을 붙였다.

         또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제호탕(醍醐湯)과 금박(金箔)을 입힌 옥추단(玉樞丹)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다.

         옥추단은 오색실에다 꿰어서 차고 구급약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을 말한다.

         王은 단옷날, 가까운 신하들에게  제호탕과 옥추단을 나누어 주며 명절을 축하했다.  

 

         위의 그림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은 단옷날의 운치있는 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일명 관음증(Voyeurism)으로 해석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어린 동자승 두 명이 바위 뒤에서 반나체의 여인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훔쳐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그림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결코 야살스럽거나 불결하지 않다.

         蕙園 신윤복이 그림 속의 대상들을 따뜻한 눈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단오풍정은 신윤복의 수많은 그림 중에서도 특히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명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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