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동파의 염노교(念奴嬌, 사패), '적벽회고'의 탁본
오랫동안 초서를 쓰지 않다가 마침 취기를 타고 붓을 달리니 술기운이
움직여 손끝으로부터 글씨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久不作草書適乘醉走筆覺酒氣動動從指端出也)
- 동파취필(東坡醉筆) -
호방한 멋스러움이 절로 느껴지는 '소동파'의 필치는 시원스럽게 치달리는
달필이다.
초서에서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는 듯 질주하는 시원스러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회소와 장욱이 휘갈기듯이 써내려간 초서를 광초라 했는데, 이 시에서 보니
소동파는 스스로 취필(醉筆)이라고 써 놓고 있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문장 뿐만 아니라, 글씨에서도 소동파의 걸출함이 유감없이 발휘된 한 편의
명품 탁본이다.
江東去浪淘盡 양자강 물은 동으로 물결따라 사라져갔네
天古風流人物 아득한 옛날을 풍미하던 인물들과 함께
故壘西邊人道是 옛성 서쪽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三國周郞赤壁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대전 터라고
亂石穿空 험난한 바위 절벽 하늘을 뚫을 듯 솟아있고
驚濤拍岸 기슭을 부숴 버릴 듯한 파도
捲起千堆雪 천 겹의 물보라로 휘감아 올린다
一時多少豪傑 그 시절 호걸은 몇몇이었던가!
遙想公瑾當年 아득히 당시의 '주유'를 떠올리니
小喬初嫁了 소교가 처음 시집왔을 때
雄姿英發 영웅의 풍채 당당했었네
羽扇綸巾談笑間 하얀 깃털 부채에 윤건 쓴 제갈량과 담소하는 사이
强虜灰飛煙滅 강력한 조조의 군대는 재되어 날고 연기처럼 사라졌네
故國神游 적벽을 거닐며 옛일을 회상하노라니
多情應笑我 정이 많은 내가 참으로 우습구나
早生華髮 이렇게 일찍 머리 세어버린 내 모습
人生如夢 인생은 꿈과 같은 것
一尊還酹江月 한잔 술을 들어 강물 속의 달님에게 부어 주노라
* 염노교(念奴嬌)는 사패(詞牌, 曲調)이다.
당나라 천보 년간에 노래 잘하는 기녀 '염노'가 있었는데, 노래소리가 마치 해맑은
아침 노을 위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종이나 북을 울리고, 생황이나 피리를 불어도 그녀의 목소리 앞에서는 조잡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아름다울 교(嬌)자를 붙여서 염노교(念奴嬌)라고 했다는 기록이 <개원천보
유사, 안색미인>조에 나와 있다.
'염노'는 백자로 된 노래 가사를 만들어 불렀는데, 이를 백자요(百字謠)라고 칭했다.
백자요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송나라 '소동파'가 지은 염노교(念奴嬌)가 유명하다.
첫 문장이 江東去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명 '대강동거사'라고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