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垂花), 양귀비(楊玉環)>
당(唐)나라 6대 황제인 현종으로부터 17년간 총애를 받았던 양귀비...
그녀는 중국이 자랑하는 4대미인(四大美人) 중 한명이자, 세계 3대미인(三大美人)에 속하는경국지색이다.
풍만하고 육감적인 미인이었지만, 천하절색으로 알려져 있다.
현종과 함께 산책을 하던 양귀비가 함수화(含垂花)를 건드리자 꽃이 바로 꽃잎을 말아올렸다.
이를 본 현종은 양귀비를 '꽃을 부끄럽게 할 정도의 아름다움'이라고 칭찬하며, 양귀비를
절대가인(絶對佳人)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양귀비를 수화(垂花)라고 부르며,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삼았다.양귀비의 자기관리는 유명하다.
워낙 미색을 밝히는 당 현종의 총애를 17년 간 일편단심 받았다면 분명 비결이 있다.
양귀비는 위험한 납성분의 미용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온천욕을 하며 체내의 독성물질을 배출해 독성제거를 하는 해독요법을 사용했다.
또 온천물에 각종 한약재를 첨가하여 그 물에 몸을 담그거나 증기를 쏘이는 훈증도 즐겼다.
뿐만 아니라 황제를 보양한다는 명목으로 황실의 가장 우수한 전의(典醫)들을 화청지에
상주시킨 뒤, 미용에 좋은 각종 한약재들을 개발하도록 독려했다.
그녀의 미모는 이런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 더욱 빛을 발했다.
![](http://pds3.egloos.com/pds/200708/26/79/d0001879_46d0491152bc6.jpg)
<폐월(閉月), 초선(貂蟬)>
초선(貂蟬)은 삼국지 초기에 나오는 인물로, 메니큐어를 최초로 바른 인물이다.
한나라 재상 왕윤(王允)의 양녀이자 가기(歌妓)였는데, 용모와 자색이 뛰어났고
가무에도 능했다.
어느 날 저녁에 부녀가 화원(花園)에서 달을 보고 있는데, 구름 한 조각이 살포시 달을
가리웠다. 이를 본 '왕윤'은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고 하면서 '달도 내 딸에게는
비할 수가 없구나."라고 했다.
이때부터 초선을 폐월(閉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초선은 '왕윤'의 뜻에 따라 간신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 시켜, 결국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만들었다.
왕윤에 의해 반간계(反間計)의 비수로 이용된 것이다.
여포의 아내였던 그녀는 결국 관우에게 목이 잘려 생을 마감한다.
최고 미녀란 뜻인 천향국색(天香國色), 경국지색(傾國之色), 경성지모(傾城之貌)란
고사성어는 모두 '초선'에게서 유래됐다.
훗날, 무림의 장문인 '좌랭선'은 초선을 기리기 위해 봉선대를 세우고 봉의정(鳳儀亭)
에서 어월하분양도고상천(於月下焚香禱告上天)을 달밤에 분향하며 그녀를 추모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미인 중 한 명이다.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
왕소군(王昭君)은 한(漢)나라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인물이다.
용모와 재능을 둘 다 갖춘, 재색을 겸비한 천하일색으로 알려져 있다.
하얀 얼굴과 붉은 뺨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4대 미녀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한나라 원제(元帝)는 어느날 밤 왕궁을 산책하다가 꽃나무 아래서 비파를 연주하던
'왕소군'을 보고 한 눈에 반했다.
다음 날, 원제는 궁녀들을 그려놓은 화첩을 보며 왕소군을 찾았다.
그러나 어젯밤에 본 그 미녀는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원제는 궁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그녀의 신상을 파악할 수 없어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만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족의 잦은 침입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었다.
흉노(몽고)의 호한야(呼韓邪,王) 선우(單于)는 화친을 조건으로 "공주를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원제는 이 청을 들어줄 수가 없어 후궁 중 한 명을 '호한야'에게 고르라고 했다.
그때 호한야의 눈에 들어온 궁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다.元帝의 충격은 컸다.
신문을 해보니 궁정화가 '모연수'가 궁녀들의 얼굴을 그릴 때마다 뇌물을 받고 성총을
받을 수 있도록 예쁘게 그려주었다.
한데, 왕소군은 아무것도 주지 못해 화공이 일부러 왕소군의 얼굴을 못 생기게 그렸던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원제는 격노해 화공을 극형에 처했다.
왕소군은 호한야와 혼인하기 위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려 한나라를 떠났다.
이태백(李白)은 그녀가 떠날 때의 모습을 두고 지은 詩에서 "백옥(白玉) 안장에 오른
왕소군은 홍안(紅顔)이 되어 울고 있다."고 표현했다.
먼 길을 가는 도중, 고향 생각이 난 왕소군은 거문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리를 지어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아름다움과 슬픈 가락에 취해 정신을
잃고 날갯짓을 잊어버려 하마터면 지상으로 떨어질 뻔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소군을 낙안(落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 높이 날던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어 땅에 떨어질 뻔했다'는 뜻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미녀이다.
원제는 왕소군을 그리워하다 상사병이 깊어져 3개월 만에 승하했다.
왕소군 또한 북방에서 원제와 고국을 그리워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해
대흑하(大黑河) 남쪽에 묻혔다
그녀의 무덤은 늘 푸른색이어서 사람들은 그곳을 청가(靑家)라고 불렀다.
오랑캐에게 시집을 갔어도 늘 한나라를 그리워했던 그녀의 무덤은 슬픈 정한 때문에
풀조차 시들지 못했다는 슬픈 사연이다.
<침어(浸魚), 서시(西施)>
서시(西施)는 춘추말기의 월(越)나라 여인이다.
이름은 시이광(施夷光)...
예쁜 얼굴과 눈이 부시도록 하얀 살결을 지닌 전형적인 미인이었다.
멋을 위해 어깨 뽕을 최초로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어느 날, '서시'는 강변을 산책하다가 강가에 앉아 물끄러미 물을 바라보았다.
맑고 투명한 강물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자 물속에 있던 물고기들이 '서시'의
미색과 자태에 반해 수영하는 것을 잊고, 그만 천천히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때부터 '서시'는 침어(浸漁)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절대미녀였던 그녀 또한 인생이 파란만장했다.
오(吳)나라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 구천(勾踐)이 포로로 잡혀가 능욕을 당하고 있자
월(越)의 충신 범려(范蠡)는 보복을 위해 서시에게 가무(歌舞)를 훈련시킨다.
그리고 그녀를 호색가인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쳤다.
'부차'는 '서시'의 미모와 가무에 반해 주색에 침혹한 나머지, 나라를 돌보지 않게 된다.
이때를 틈타서 오나라는 월나라를 쳐서 패망시켰다.
미인계에 이용된 그녀는 훗날 양자강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하루에도 색이 몇 번씩
변한다는 미인어(美人漁)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여인들은 서시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이 물고기를 먹으면 서시처럼 예뻐진다는
소문 때문에, 양자강에 사람들이 많이 붐빌 정도로 뛰어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춘추시대의 대표적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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