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長恨歌
(장한가)
漢皇重色思傾國 황제는 색을 좋아해 미인을 생각하고
御宇多年求不得 재위 여러 해 구했지만 구하지 못했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집에 한 처녀 커가자
養在深閨人未識 집안 깊숙히 두고 키워 사람들 알지 못했네
天生麗質難自棄 하늘이 내린 미모 마음대로 버릴 수 없어
一朝選在君王側 하루 아침에 선택되어 군왕의 옆에 있게 되었네
回眸一笑百媚生 눈동자를 돌리며 한번 웃으면 백가지 교태가 생겨
六宮粉黛無顏色 후궁의 미녀들은 낯빛이 무색해졌네
春寒賜浴華清池 봄추위에 화청지에 목욕하게 하자
溫泉水滑洗凝脂 온천수 매끄러운데 하얀 살결 씻었네
侍兒扶起嬌無力 시동이 부축해 일으키자 힘없이 교태를 보이고
始是新承恩澤時 이 때가 바로 처음으로 은택을 입을 때였네.
雲鬢花顏金步搖 둥근 귀밑머리 꽃같은 얼굴 금 머리장식
芙蓉帳暖度春宵 연꽃 장막이 따뜻하니 봄밤의 일이 헤아려지네
春宵苦短日高起 밤의 정사 힘들어 짧은 해 높아서야 일어나고
從此君王不早朝 이후로 군왕은 조회에 일찍 나오지 않네
承歡侍宴無閑暇 기분맞춰 연회에서 모시니 한가한 틈이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에는 봄나들이 밤에는 밤일
後宮佳麗三千人 후궁은 아름다운 삼천명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는 오직 한몸에 있네
金屋妝成嬌侍夜 금 전각에 화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
玉樓宴罷醉和春 옥 루각 연회 파하면 봄과 함께 취하네
姊妹弟兄皆列土 자매 형제 모두 높은 자리
可憐光彩生門戶 가련한 광채가 집안에 생겨나네
遂令天下父母心 마침내 천하의 부모의 마음마저 움직여
不重生男重生女 남자아이 중요시하지 않고 딸 낳기를 중시하네
驪宮高處入青雲 려산의 궁궐 높아 푸른 구름이 들어가고
仙樂風飄處處聞 신비한 음악 바람에 날려 곳곳에 들리네
緩歌謾舞凝絲竹 느린 노래 우아한 춤에 거문고 피리소리 합쳐지고
盡日君王看不足 날이 다하도록 임금은 보고 즐기지만 끝이 없었다
漁陽鼙鼓動地來 어양에서 북소리 울리고 땅이 흔들려 오자
驚破霓裳羽衣曲 놀라서 예상우의곡의 음악은 멈추었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 궁궐에 연기와 먼지 생기고
千乘萬騎西南行 천 수레 만 기병이 서남으로 떠나네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수레 흔들흔들 행렬이 다시 멈추고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으로 나와 백여리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이 펼쳐지지 않으니 어찌하리
宛轉蛾眉馬前死 부드럽던 그 눈썹 말앞에서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꽃 비녀는 땅에 떨어져도 거두는 이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비취깃털 금공작 옥비녀 흩어지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낯을 가릴뿐 구해주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돌아보며 피눈물 서로 흘렸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먼지 날리고 바람 스산해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잔교를 돌고 돌아 검문각에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 행인들 적은데
旌旗無光日色薄 깃발은 빛이 없고 햇빛도 옅어라
蜀江水碧蜀山青 촉나라 강물은 푸르고 산은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 임금은 아침마다 저녁마다 정을 잊지 못하네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빛
夜雨聞鈴腸斷聲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는 애를 끊는 소리
天旋地轉回龍馭 천지가 뒤바뀌어 어가가 돌아올 때
到此躊躇不能去 이곳에 도착해서는 주저하며 가지를 못하네
馬嵬坡下泥土中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 속에는
不見玉顏空死處 옥같은 얼굴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공허하네
君臣相顧盡沾衣 군신은 서로 돌아보며 옷이 눈물에 젖으며
東望都門信馬歸 동쪽으로 도성문을 보며 말이 돌아가기를 믿을 뿐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오니 연못과 정원은 모두 옛과 같은데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연꽃 미앙궁의 버들
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얼굴같고 버들은 눈썹같아
對此如何不淚垂 이것을 마주하고는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꽃 배꽃이 피던 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오동나무 낙엽지던 날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쪽 정원은 가을 풀로 가득하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은 계단에 가득 붉어도 쓸지 않았지
梨園弟子白髮新 리원의 자제들 이제 흰머리 새로 나고
椒房阿監青娥老 황후전의 환관들과 궁녀들도 늙었다
夕殿螢飛思悄然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날고 마음은 근심가득
孤燈挑盡未成眠 외등이 꺼져도 잠을 이루지 못하네
遲遲鐘鼓初長夜 천천히 종과 북 울려 긴밤이 시작되고
耿耿星河欲曙天 총총한 은하수가 하늘을 밝히려고 하네
鴛鴦瓦冷霜華重 원앙 기와 차가운데 서리 꽃이 더하고
翡翠衾寒誰與共 비취 이불 차가와 누구와 함께 할까
悠悠生死別經年 길고 긴 인생사 다시 해를 더하는데
魂魄不曾來入夢 혼백이라도 꿈속에 들어온 적이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사가 장안에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을 다하면 혼백에 다가갈 수가 있다네
爲感君王輾轉思 군왕의 잠 못이루는 생각에 감동해
遂教方士殷勤覓 마침내 방사에게 간절히 찾아보도록 시켰네
排空馭氣奔如電 공중으로 솟구쳐 번개처럼 달리고
昇天入地求之遍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와 두루 찾았네
上窮碧落下黃泉 궁벽에 올랐다가 아래로 황천까지 내려갔지만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해 보이지를 않았지
忽聞海上有仙山 문득 바다 위에 신선산이 있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山在虛無縹渺間 산은 텅비고 아득히 어렴풋한 곳에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 일었고
其中綽約多仙子 그 속에는 단아한 많은 신선들 있었지
中有一人字太真 그 중에 한사람 이름이 태진인데
雪膚花貌參差是 흰 피부와 꽃같은 용모 대략 다르지 않았네
金闕西廂叩玉扃 금대궐 서쪽 행랑 옥대문을 두드려
轉教小玉報雙成 시녀불러 서왕모 시녀에게 알리게 했다
聞道漢家天子使 중국 천자의 사신이 왔다는 이야기 듣고
九華帳裡夢魂驚 첩첩화려한 장막 속에서 놀라 꿈을 깨었네
攬衣推枕起徘佪 옷을 쥐고 베게 밀며 일어나 서성이며
珠箔銀屏迤邐開 주렴과 은 병풍을 비스듬이 밀며 차례로 열었다.
雲鬢半偏新睡覺 둥근 귀밑머리 한쪽으로 밀려 있어 금방 잠이 깼네
花冠不整下堂來 화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래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舉 바람이 일어 신선의 소매 표표히 들리니
猶似霓裳羽衣舞 오히려 예상우의 춤을 추는 듯하다.
玉容寂寞淚闌乾 옥같은 얼굴 적막한데 눈물은 멋대로 흘러 붙어
梨花一枝春帶雨 배꽃 가지 하나 봄비에 젖었다
含情凝睇謝君王 정이 가득한 눈길로 군왕에 사례하기를
一別音容兩渺茫 한번 헤어진 후 목소리와 모습 모두 아득하군요
昭陽殿裡恩愛絕 소양전 속의 은혜와 사랑 한번 끊기니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의 세월은 길기만 합니다
回頭下望人寰處 고개 돌려 아래로 인간세상 바라보지만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볼 수 없고 먼지 안개만 보일 뿐입니다.
惟將舊物表深情 오직 옛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고자 하니
鈿合金釵寄將去 나전함과 금비녀를 가져가도록 부칩니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 하나 함 하나
釵擘黃金合分鈿 비녀는 황금을 쪼개내고 함에는 나전을 분리했어요.
但教心似金鈿堅 만약 주신 마음이 금이나 나전처럼 굳기만 하다면
天上人間會相見 하늘 위에서 인간으로 서로 만나 볼 수 있을 겁니다.
臨別殷勤重寄詞 작별전에 간절하게 거듭 전하는 말이 있었는데
詞中有誓兩心知 말중에 두사람만 아는 맹세가 있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깊은 밤 사람 없어 다정히 말씀하실 때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서는 비익조 되자 하셨고
在地願為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 되자 하셨죠
天長地久有時盡 하늘과 땅이 길고 영원해도 그 끝이 있지만
此恨綿綿無絕期 이 한은 길고 길어 그 끝을 기약할 수 없네요
~* 백거이(白居易) *~
* 당(唐)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읊은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限歌)는
3,000여 편의 詩를 쓴 '백거이'의 대표작이다.
앞서 소개한 비파행(琵琶行)과 함께 그의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詩는 13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회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 장한가를
소재로 영화와 드라마, 문학작품, 공연, 연극, 뮤지컬 등이 수없이 만들어졌다.
작년엔 한국 감독이 중국 여배우 '판빙빙'을 주인공으로 '양귀비'라는 영화를 만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詩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물론, 현종과 양귀비의 절절한 러브스토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밖에도 이들의 사랑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숨겨진 패륜과 음모는 물론, 한때
성군으로 불리며 '개원(開元)의 치(治)'를 구가할 정도로 명 군주였던 현종이 양귀비를
만난 다음 여색에 빠져, 나라가 기울어질 정도록 침혹한 양귀비의 경국지색 덕분이기도
하다.
미인... 하면 전 세계에서 양귀비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절색(絶色)으로
알려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양귀비(楊貴妃)의 미모에 대해서는 그동안 말이 많았다.
왜냐하면, 美女에 대한 현대의 기준과 당나라 때의 기준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는 날씬해야 미모를 쳐준다.
얼굴이 이뻐도 뚱뚱하면 미모를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한데, 양귀비는 매우 뚱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현대적 안목으로 보면 미녀가 아니다, 비만이다, 못생겼다... 등등 그동안 말이
무성했다.
그래서 드디어 중국이 공식적으로 양귀비의 초상화를 공개했다!
아래 그림은 현종과 양귀비가 살았던 중국 황제의 별장, 당화청궁(唐華淸宮)에 걸려있는
양귀비의 초상화이다.
실제 양귀비(楊貴妃)의 얼굴이다.
이 정도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할 만하다.
현대적인 안목으로 보아도 육감적인 미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림으로 볼 때 육덕지듯이 실제로는 거의 80kg를 육박할 정도로 비만했다고
전해진다.
양귀비가 미인이니, 아니니, 그동안 설왕설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美의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이다.
그 당시에는 여인들이 육덕져야 미인으로 꼽았다.
양귀비가 세상을 잘 타고난 것이다.
중국에는 4대 미인 (四大美人)이 있다.
바로 양귀비와 서시, 왕소군, 초선이다.
양귀비를 제외한 3명은 가련할 정도로 날씬한 임풍양류(臨風楊柳) 스타일인 반면,
양귀비만 부귀모란(富貴牧丹)형, 즉 글래머스타일이다.
한데, 당대(當代)에는 이를 자질풍염(資質豊艶), 즉 '풍만하고 요염하다'고 아름답게
보았다.
양귀비가 정말 시대를 잘 타고난 셈이다.
위의 초상화는 최대한 날씬하게 그림을 그린 것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뚱뚱했다고
한다.
화청궁에 있는 양귀비 입욕 조각상도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했음에도 역시 육덕지다.
또 세계에서 꼽는 3대 미인(三大美人)도 있다.
중국의 '양귀비'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일본의 '오노노 고마치'이다.
'오노노 고마치'는 와카(和歌)의 달인인 일본 최고의 절세가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헤이안 시대 초기의 6가선(六歌仙) 가운데 유일한 여성 가인이다.
결국 양귀비는 중국 최고의 미인이기도 하지만, 세계의 三大美人에 꼽히는 인물이다.
이를 볼 때, 천하절색(天下絶色)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만남부터가 드라마틱하다.
현종은 56세 때, 22살의 양옥환(楊玉環, 후에 양귀비)을 만났다.
당시, 양옥환은 현종의 18번 째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부인이었다.
양옥환은 17세 때, 수왕과 혼인했다.
수왕은 현종과 무혜비(武惠妃) 와의 사이에 난 아들이다.
한마디로,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이다.
이 글을 읽으며, 헐... 하고 충격받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 현종 눈에 며느리 양옥환이 들어온 것은, 무혜비를 잃고 시름에 잠겨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황제궁에는 3,000 궁녀가 있었으나, 황제의 마음에 끌리는 여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한데 솔깃한 소문 하나를 듣게 된다.
수왕비(壽王妃)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이었다
환관 '고력사'가 만든 일이었다.
워낙 자식이 많은 현종은 그때까지 며느리 '양옥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현종은 슬하에 무려 39명의 자녀를 두었기 때문이다.
현종은 환관에게 명해 며느리 양옥환을 연회에 초대했다.
며느리 양옥환을 본 순간, 현종은 마치 감전되듯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미모 뿐만 아니라, 양옥환은 음악과 무용에도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의 악보를 보자 즉석에서 비파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바로 그 유명한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이다.
마치 선녀가 지상에 하강해 춤을 추는 듯 유연하고 몽환적인 모습이었다.
그날, 현종은 며느리 양옥환을 절대로...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다짐한다.
며느리를 아들의 손에서 빼앗아 후궁으로 들여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유례없는 황제의 대 스캔들이 발생하고 말았다.
패륜이었다.
현종의 이런 행동은 지탄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신하들이 벌떼같이 상소를 올리며 황제의 행동을 비판했다.
그러나 양옥환에게 침혹한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
현종은 중신들의 반대를 무마하고, 또 아들과 양옥환을 서로 떨어지게 만들기 위해
'양옥환'을 강제로 도교(道敎)의 승(僧)인 여도사로 출가시켰다.
법명은 태진(太眞)...
그리고 궁궐에 도교사원 태진궁(太眞宮)을 만들어 관리인으로 임명한 뒤, 함께 살았다.
편법이었다.
아들에게 미안지심이 든 현종은 수왕에게 위씨의 딸을 하사해, 대신 아내로 삼게 했다.
산수가 수려하고 주나라 때부터 왕들의 별궁이 있었던 여산(麗産) 화청지(華淸池)에
화청궁을 지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두 사람은 하루종일 떨어질 줄 몰랐다.
밤 늦게까지 정사에 몰두하던 명 군주 현종이 여색에 빠져 정무를 포기하개 이른 것이다.
여기에는 양귀비의 현란한 방사능력(房事能力)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금방(千金方)과 소녀경(素女經)을 모두 터득한 양귀비의 섹스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전해진다.
현종이 환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이유이다.
양귀비는 현종과 함께 산 16년 동안 단 하룻밤도 다른 후궁에게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현종은 양귀비가 죽기 전인 72세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양귀비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총애가 깊어지자 양귀비의 세 언니를 모두 입궁시켜 '국부인'으로 칭하고, 사촌 오빠인
'양소'에게는 '국충'이란 이름을 하사한 뒤, 승상(丞相)에 임명했다.
일설에는 나중에 입궁한 양귀비의 언니들 중 '괵국부인'이 현종과 몰래 정사를
벌이다가 양귀비에게 발각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력사'의 주선으로 겨우 화해해 더욱 돈독한 사랑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실제로 현종은 양귀비가 죽은 후, 세상을 뜰 때까지 6년 동안 그 어떤 여인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양옥환은 현종의 후궁이 된 지 6년 만에, 드디어 귀비(貴妃)의 지위에 오른다.
'귀비'는 황후 다음의 지위였지만, 당시 황후가 없었기 때문에 양귀비는 사실상
황후의 역할을 하고 또 그렇게 대접받았다.
그러자 자연히 양귀비의 가족과 친척들이 권력을 쥔 채 전횡을 휘두르고, 환관들이
권력을 장악해 나라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모든 부모들이 '아들 낳기보다 딸 낳기'를 더 간절히 소원하는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가 한동안 유행했을 정도였다.
현종이 산시성 여산에 자리한 유명한 온천이 있는 화청지에 보금자리를 꾸민 것은
양귀비가 목욕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한 것은 겨드랑이에서 심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한데, 현종은 비염이 있어서 그 이상한 냄새를 맡지 못한 채 혼자 미친 듯이 사랑했다.
천생연분이다.
그렇다면, 양귀비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을까?
현종이 여색에 빠져 정무를 돌보지 않자 권력은 '고력사'를 비롯한 환관과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양국충' 등 외척들이 장악하고, 이로 인한 전횡과 부패가 극심해진다.
이런 상황은 '안록사의 난'이 일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755년,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양귀비는 당 현종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쓰촨성(촉)
으로 피난을 간다.
다음해인 756년, 적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자 황제의 근위군은 혼란한 정국의 주범인
'양국충'을 죽이고 양귀비의 자결을 요구한다.
현종은 양귀비를 감싸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양귀비를 발탁했던
환관 '고력사'가 양귀비에게 책임이 있다고 황제에게 진언한다.
눈물을 머금은 현종은 결국 양귀비의 자결을 명하기에 이른다.
'고력사'에 의해 목매달린 양귀비는 현종이 보는 눈 앞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녀 나이 38세 때였다.
현종은 양귀비를 절절이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내다가, 6년을 더 살고 승하했다.
당 현종이 양귀비와 애절한 사랑을 나누고 죽은 지 50여 년이 지난 후, 35세의 백거이
(白居易)는 친구인 '왕질부','진흥'과 하께 선유산에 놀러갔다.
그곳에서 당 현종 이융기(李隆基)와 양귀비의 절절한 로맨스가 화제에 올랐다.
그 자리에서 '왕질부'의 제의로 '백거이'는 詩人의 상상력을 총동원해, 시와 산문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신화적인 내용으로 구성해 애절하게 썼다.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限歌)는 이렇게 탄생했다!
장한가는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은, 양귀비가 총애를 받고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 양귀비가 죽는 장면...
둘째 부분은, 양귀비를 잃고 난 후의 현종의 쓸쓸한 생활...
셋째 부분은,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와 현종이 만나는 장면...
이렇게 모두 세 파트로 구성돼 있다.
특히 시인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돼 창의성이 절등한 셋째 부분은,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함을 고조시켜 읽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짓게 만든다.
장한가(長限歌)가 모든 예술 분야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해설을 읽었다면, 다시 한 번 '장한가'을 음미하며 읽어보라!
왜 1300여 년 전의 이 詩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지, 왜 모든 예술 장르의 소재가 되는지,
왜 이 詩를 읽는 이들의 가슴이 뭉클해져 아릿해지고, 또 애련한 마음이 드는지 저절로
느껴질 것이다.
* 이 글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