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조 초상화>
武陵春(무릉춘)
風住塵香花已盡 바람이 멎자 흙은 향기로운데 꽃은 이미 졌다
日晩倦梳頭 날이 저물어도 머리 빗기 귀찮아라物是人非事事休 자연은 늘 같지만 사람은 아니어서 일마다 끝이 나네
欲語涙先流 말하려하면 눈물 먼저 흘러라
聞説雙溪春尚好 듣자니 상계의 봄이 아직도 좋다는데
也擬泛輕舟 다시 작은 배 띄우고 싶어라
只恐雙溪舴艋舟 다만 두려운 것은 상계의 조각배로는
載不動 싣고 움직이지 못하리
許多愁 이렇게 많은 수심
~* 이청조(李淸照) *~
* 위의 詩 무릉춘(武陵春)은 송사(宋詞)의 사패(詞牌,곡조) 중 하나이다.
이 시는 이청조가 53세 때인 1135년, 고종 소흥 5년 때 지은 詩이다.
남편과 사별한 지 6년, 재혼했다 이혼한 지는 3년 남짓 됐을 때이다.
당시 북송은 '정강(흠종)의 변'으로 문화와 문물을 다 잃은 뒤, 양자강 남쪽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국호를 남송(南宋)으로 바꾼 뒤 흠종의 동생 고종이 초대왕으로 즉위했다.
당시 이청조는 산천이 수려하고 아름다운 절강성 금화시 쌍계에 거주하고 있었다.
수옥은 '무릉춘'이란 이 詩에서, 전란으로 고향을 잃고 의지할 곳 없이 타향에
떠도는 처연한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쌍계(雙溪)는 現 절강성(浙江省) 금화시(金華市) 쌍계구촌(雙溪口村)을 말한다.
이 시에서 '쌍계(雙溪)'란, 절강성 금화시에 있던 개울을 말한다.
보통 개울이 두 곳에서 발원해 두 가닥으로 나란히 길게 흐르다가 하나로 합류할
경우, '쌍계'란 지명을 붙인다.
또 책맹(舴艋)이란, 돛이 없는 작은 배를 뜻한다.
위의 시에서 '흙내 좋으니'란 구절이 있는데, 이는 낙화(落花)가 많아 그 향기가
흙에 배어 흙에서 향기가 나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 있어도 사람 없어'라는 구절 또한, 고려 말엽 길재(吉再)의 시조에 나오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구절과 같은 심정을 읊은 것이다.
그동안 이청조의 詩를 소개하며, 사패(詞牌)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사패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사(詞)는 원래 먼저 곡조가 있고, 그 후에 곡조에 따라 사구(詞句)를 채워넣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詞)는 악보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曲을 맞추어 작사를 한다.
이 당시에 모든 사(詞)에는 악보가 있었는데, 이 악보를 바로 사패(詞牌)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사(詞)는 언제 출현했을까?
당나라 때 사(詞)가 출현했고, 그 때부터 사패가 존재했다.
송나라 때에는 사(詞)가 급진적으로 발전해, 사패도 많이 증가했다.
사인(詞人)들이 새로운 사패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北宋의 유영(柳永)은 백수십개의 새로운 사패를 만들었고, 그외에 주방언(周邦彦)과
南宋의 강기(姜夔)도 사패를 많이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송사(宋詞)의 음악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자취는 사보(詞譜)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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