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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異夢)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장면...

아라홍련 2013. 5. 18. 02:56

 

           "기억의 골짜기는 매양 깊고 험준했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했다.

            봉이에 대한 기억 하나하나마다 찢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수반됐다.

            생채기에 소금을 뿌린 듯 몸서리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기억의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어김없이 숨이 막히고 혼몽했다.

            반딧불처럼 소소하게 시작된 기억의 행렬은 때론 달무리가 되고,

            때론 은하수가 되어 王의 영혼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기억이 상처가 되고, 상처가 다시 기억으로 남았다.

            상실감과 외로움, 박탈감이 동시에 성심을 어지럽혔다.

            매일 밤 창덕궁 위로 안개비가 내렸다.

            王의 가슴 속에도 짙은 안개비가 내렸다.

            마음을 다잡으려 열 번, 백 번 맹세하지만 생각 같지가 않다.

            뜨겁기는 타오르는 불꽃 같고, 차갑기는 얼음 덩어리다.

            그 빠름은 구부리고 우러르는 동안에도 사해 밖을 두 번이나 어루만지며

            하늘까지 치닫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을 때는 한없이 깊고 고요하다.

            애별리고(愛別離苦)를 감내하지 못한 王은 매일 밤 후원 숲을 헤매며

            방황했다.

            ............................

            한 무리의 긴 그림자는 궁궐 마당을 동서로 갈라놓고 있는 금천 앞에

            멈췄다. 왕이 고개를 들고 곰꼼히 별자리를 살폈다. 

            북두칠성을 확인한 王이 금천 앞에서 몸을 수그렸다 폈다 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사알이 들고 있는 큰 대바구니 속에는 연꽃 모양의 종이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상궁들이 든 바구니 속에는 종이학들이 그득했다.

            잠을 잊은 왕이 밤새 수직내시들과 접침접침 접어 만든 것이다.

            내관들의 손이 작은 초에 불을 붙이느라 바지런히 움직였다.   

            王은 연꽃 종이배 위에 종이학을 담고 촛불을 얹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금천(禁川)에 종이배를 띄웠다.

            촛불을 담은 연꽃배들이 환한 빛을 내뿜으며 줄지어 시냇물로 흘러갔다.

            어둠 속에서 금천이 장엄하게 불타올랐다.

            이 의식은 매일 밤 계속 됐다.

            王이 봉이 영혼을 위로한다고 매일 밤 진행하는 의식이었다.

            시냇물 위로 흘러가던 종이배 하나가 쓰러지자 왕이 즉시 금천에 뛰어들었다.

            기함한 내시들이 "전하!" 하고 외치며 王을 붙잡아 끌어냈다.

            발버둥치는 王의 용포자락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배가 뒤집어지질 않았느냐. 당장 꺼내어라. 어서 꺼내어라!"

                "이미 물길을 따라 궁 안을 빠져나갔습니다. 새로운 배을 띄우소서!"

            속절없이 금천을 바라보던 왕이 웅얼거렸다.

                "그래 벌써 사라져 버렸구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어.

                 봉이처럼 말이다..."

            안정(眼精)에 짙은 안개비가 내렸다.

            사알과 상궁들 눈 속에도 안개비가 내렸다.

            왕이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쏟아질 듯 매봉 정수리에 도글도글했다.

            날카로운 바람살이 다시 금천 위를 덮쳤다.

            위태롭게 휘청거리던 왕이 내시들의 부축을 받으며, 박부득이 뒤돌아섰다."

 

                                                                     <이몽 2부 95p~97p>                

 

 

      *  종이학만 빠지고, 나머지는이몽(異夢)에 나오는 장면과 정말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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