菩薩蠻(보살만)
歸鴻聲斷殘雲碧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 끊기고 드문드문 구름 푸른데
背窗雪落爐煙直 뒷 창 너머 눈은 떨어지고 화로 연기 곧게 오른다
燭底鳳釵明 촛불 아래 봉황 비녀 빛나는데
釵頭人勝輕 비녀머리 사람인형은 가볍기만 하네
角聲催曉漏 뿔피리소리 새벽 바루를 재촉하고
曙色回牛斗 새벽 빛은 우성과 두성 사이로 돌아왔네
春意看花難 봄의 기미로는 꽃 보기도 어렵겠고
西風留舊寒 서풍은 여전히 지루한 추위 속에 있네
* 보살만(菩薩蠻)은 송나라 사(詞)의 한 형식이다.
주로 새봄 노래를 만들 때 사용하던 사패(詞牌, 곡조)이다.
위의 詩에서 '인승'이란 인승절(人勝節), 또는 '인승절의 인형'을 말한다.
고대에는 정월 7일을 인일(人日)이라 하여 '사람의 날'로 지냈고, 정월
8일은 '곡식의 날'로 지냈다.
즉 정월 초이레부터 초엿새까지를 수축일(獸畜日)이라 하고, 초이레를
'사람의 날'인 인일(人日)이라고 해서 경사스러운 명절로 지냈다.
인승절은 당나라 때 만들어진 풍속으로 중요한 명절로 꼽히던 날이다.
황제는 이날을 기념해 녹패(祿牌)를 내렸다.
녹패란, 쌀이나 콩, 견포 등의 녹포를 받는 사람들에게 증서로 주던 종이표를
말한다.
이날은 일을 하지 않고 관리와 백성 모두 명절로 즐겁게 지냈다.
성도(成都) 사람들은 인승절이 되면, 도시의 서쪽 교외에 있는 두보 초당을
즐겁게 유람했다.
또 여인들은 녹패로 비단과 금박(金箔)을 사서 꽃과 인형을 만들었다.
이 인형을 머리에 꽂으면 장수(長壽)와 복(福)을 누린다고 전해져, 여인들은
인승절이 되면 이 인형을 머리꾸미개로 만들어 꽂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왔다.
'이청조'가 "촛불 아래 봉황비녀 빛나는데, 비녀머리 사람인형은 가볍기만 하네."
라고 노래한 것에서 '사람인형'은 바로 인형 머리꾸미개를 말한다.
또 이날 문인이나 학자들은 누각에 올라 詩를 짓거나 들놀이를 했다.
이는 후대에까지 전통적인 풍속으로 자리잡았고,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고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위의 詩에서 인승(人勝)을 읽고 그 의미와 고대의 전통을 알지 못한다면, 결코
이청조의 詩 '보살만'의 맛과 멋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인승절(人勝節)을 중요한 명절로 지냈다.
인일(人日)이 되면, 왕은 백성들에게 인승녹패(人勝祿牌)를 내렸다.
'인승'이란, 비단에다가 금박을 조각해 만든 인형을 말한다.
'인승녹패'란, 왕이 음력 정월 초이레날인 인승절을 기념해 관리들에게 내리는
녹패를 뜻한다.
또 조정에서는 인승절을 기념해 인일제(人日製) 과거를 시행했다.
여인들은 장수(長壽)와 복(福)을 누린다고 해서 비단과 금박으로 만든 꽃과
인형을 만들어 병풍에 붙이거나, 머리꾸미개로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인형을 인승면(人勝面), 꽃은 화승(花勝)이라고 불렀다.
또 이날은 일곱 가지의 나물로 국을 끓여 먹기도 했다.
현대의 오탁악세와 비교할 때, 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속이며 멋진 풍류인가?...
이 풍속에는 나라를 통치하는 지도자가 백성을 따뜻이 사랑하고 위무하는 마음이
오롯이 아로새겨져 있어, 살벌한 이 시대와 너무도 비교가 된다.
위의 詩에서 '우두(牛斗)'란... 동북 방향의 별자리 이름을 말한다.
북방의 별자리 순서는 동쪽에서 부터 두목여허위실벽(斗牛女虛危室壁)이다.
동방의 별자리 순서는 각항저방심미기(角亢氐房心尾箕)이고,
서방의 별자리 순서는 규루위묘필자심(奎婁胃昴畢觜參),
남방의 별자리 순서는 정귀유성장익진(井鬼柳星張翼軫)이다.
... 이렇게 해서 하늘의 별자리는 모두 28수(宿)가 된다.
28수의 '수(宿)'는 '머무르며 묵는다'는 뜻이다.
매일 달이 황도를 지나면서, 어느 별의 위치에 머무는가를 정해 놓은 별자리가
바로 28수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28자로 만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조선시대 통행금지인 인정(人定) 때, 28번의 종을 친 것도 28수의 별자리에게
'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공부하고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없이 세상을 살아간다.
詩를 제대로 해석할 줄도 모르고, 역사와 문학도 제대로 모른 채 제멋대로
떠들며 산다.
공부를 많이 하면 詩 하나, 그림 한 장을 통해서도 문학과 역사, 풍속, 천문학,
인간의 삶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보들을 읽어낼 수가 있다.
이럴 때 비로소 '詩를 감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제대로 하면, 이청조의 '보살만(菩薩蠻)'을 읽고도 이렇게 많은 정보를
찾아낼 수가 있다. 시를 읽은 감동도 그만큼 커진다.
이렇게 창의적으로 시나 그림을 감상하려면, 끊임없는 공부와 깊은 사유(思惟)가
필요하다.
결코 작가나 학자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학과 역사, 고전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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