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올린 블로그 글들 중에서 수계(水禊) 또는 수계도권(水禊圖券)이라는 한자를 읽고
간혹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한문에 문외한이면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고, 한문이나 고전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작가의 탁월한 한자 선택을 보며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을 것이다.
허나 그 중간이거나 불자(佛者)인 경우,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수계(修禊)' 라는 한자와
달라서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Daum 백과사전에는 '수계'라는 단어에 대한 동음이의(同音異義)에 대한 뜻
풀이가 무려 20개나 나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세시풍속에 나오는 '수계'
라는 한자는 슬그머니 빠져있다.
또 수계 놀이에 관한 블로그 글이나 기사들 모두, 수계의 한자를 '물' 수(水) 字가 아닌
'닦을' 수(修) 字를 사용해 수계(修禊)라고 쓰고 있다.
이 단어의 경우, 반드시 한자를 옆에 써줘야만 한다.
한자가 없으면 동음이의어가 많아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데,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기사들을 보면 한문을 안 쓴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한문을 모르면서 여기저기 남의 글을 스크랩해서 올리거나 짜집기를 해 올리다보니, 어려운
한자나 애매한 한자는 아예 쓰지 않고, 그냥 한글만 쓰는 것이다.
더구나 왕희지와 관련된 수계 놀이의 경우처럼 한자가 후에 다른 글자로 변용돼 사용되는
경우, 어느 것이 맞는 한자인지 애매하여 아예 한자를 넣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서예하는 사람들까지 '수계'의 한자가 어느 것이 맞는지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
그렇다면, 왕희지가 353년 음력 3월 3일에 난정(蘭亭) 근처에서 행한 수계 놀이에서의
'수계'에는 어떤 한자를 사용해야 맞는 것일까?
내가 사용한 한자는 수계(水禊)이다.
한데, 다른 블로그 글들과 기사들은 하나같이 수계(修禊)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심각한 혼용이다.
'왕희지'가 353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아름다운 난정(蘭亭)에 당대 문인 41명을
초대해 수계를 벌여 '난정집서'가 탄생하게 된 세시풍속은 당연히 수계(水禊)이다.
수계란... 음력 삼월 삼짇날에 맑은 계곡물에서 몸을 씻어냄으로써, 겨우내 쌓인 묵은
때와 부정한 기운을 떨쳐버리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말한다.세시풍속이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해 온 고유의 풍속을 뜻한다.
계곡물에서 몸을 씻기 때문에 물 '수(水)'자를 사용해 수계(水禊)라고 불렀다.
왕희지가 불교적 행사로 벌인 일이 아니라(修禊), 당대의 명사들을 초청해 세시풍속의
하나로 수계(水禊) 놀이를 즐기며 아름다운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은 고대에서는 큰 명절에 속했다.
옛말엔 '삼질'이라고 했고, 한자로는 상사(上巳), 원사(元巳), 중삼(重三), 상제(上除),
또는 답청절(踏靑節)이라고 쓴다.
삼짇날은 삼(三)의 양(陽)이 겹친다는 의미이다.
'삼질'은 삼일의 자음에서 변질돼 파성된 것이다.
'상사(上巳)'는 '삼월의 첫 뱀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엔 길일(吉日), 명일(名日)로 생각하던 날이다.
그러나 상사일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점차 음력 3월 3일로 정착됐다.
삼월 삼짇날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으로는 왕희지가 1700여 년 전 난정에서 행한 수계
(水禊)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 그리고 화전(花煎)놀이와 매화음(梅花飮)이 있다.
'수계'에 대한 설명은 kocca 문화콘텐츠용어 닷컴 사전에 정확히 기록돼 있다.
<수계(水禊)>
“일찍이 왕희지가 동지들과 회계·산음의 난정에서 모아 연회를 베풀 때 그 자신이
서(序)를 지어 그 뜻을 진술하였다.
그 글에 ‘진(晋) 목제 영화 9년(353) 만춘(晩春, 음력 3월) 초에 회계·산음의 난정에
모여 계사(禊事)의 모꼬지를 행하였다.”라고 보인다.
『진서』 권80, 왕희지열전.
진서(晉書)에 나오는 기록을 가지고, 수계(水禊)에 대한 한자를 정확히 기록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다들 수계(修禊)라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을까?
이는 불교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의 수계(修禊)란... '수상에서 재앙을 제거하고 복을 구하는 제사'를 말한다.한자의 내용이 비슷하다 보니 후대에 세시풍속에서 사용하던 수계(水禊) 대신,
불교 행사인 수계(修禊)로 한자가 정착된 듯 싶다.
이 한자의 정확한 뜻은 '계(禊)를 닦는다'는 뜻이다.
계곡물에서 몸을 닦는다는 뜻의 '수계(水禊)'와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세시풍속에서 하던 행사는 수계(水禊)가 정확한 표현이다.
화전 놀이는 삼월 삼짇날 집안에만 갇혀 있던 여인들이 공식적으로 밖에 나와 봄볕을
즐기던 행사이다.
찹쌀을 동그랗게 빚은 위에 진달래(참꽃)을 올려 부친 참꽃부침이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벚꽃과 배꽃, 매화 등의 꽃으로도 화전을 만들었다.
또 오미자 국물로 만든 화채인 화면(花麵)도 만들어 먹었다.
오미자를 우려낸 국물에 녹두가루를 반죽해 익힌 것을 썰어 꿀을 타고, 잣과 진달래
꽃잎 등을 띄워 만들었다.
매화음(梅花飮)은, 매화가 전한 봄의 향기에 흠뻑 취해 삼월 삼짇날 낭만적으로 술을
마시던 풍속을 말한다.
술꾼들이 좋아하던 풍류에 젖고, 매화에 젖고, 술에 젖는 공식적인 날이었다.
수계 다음에 행하던 행사가 바로 '난정집서'에 나오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다.
유상곡수(流觴曲水)란... 삼월 삼짇날, 굽이도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詩를 짓던 놀이를 말한다.
이때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셔야 한다.
'왕희지' 일행이 행한 유상곡수연에서는 당대의 文士들답게 무려 21명이나 詩를 지었다.
이를 책으로 묶은 것이 '난정서'이고, 왕희지가 서문을 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문집인
난정집서(蘭亭集序)이다.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유상곡수연을 즐겼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포석정이다.
물길이 전복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포석정(鮑石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적 1호이다.
<경주의 포석정. 길이 10.3m, 폭 7m , 물길 길이는 약 22m이다. 다양한 크기로 다듬은
돌 63개를 사용했다. 물길의 폭은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30cm 정도이고, 깊이도
평균적으로 22cm 정도이다. 물길의 입구와 출구의 낙차는 40cm 정도이다.
4언시나 5언시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됐다.>
후대에 내려와서는 꼭 삼월 삼짇날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만춘 때나 만추 때 수시로
유상곡수연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 후원에서 임금이 신하들과 유상곡수연을
즐겼고, 사대부들의 풍류로 자리잡았다.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위에 술잔을 띄우고,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 시를
읊는 놀이의 목적으로 만든 도랑을 '곡수구(曲水溝)'라고 한다.
<창덕궁 후원 옥류천 지역의 소요암(逍遙巖). 조선시대 인조가 이 곳 바위를 깎아 유상곡수연 을 위한 둥근 홈을 만들었다.> | ||||||
왕희지가 난정서(蘭亭序)라는 서문을 남긴 후로부터 24주갑(周甲,1440년)이 지난 1793년 3월20 (계축)에는, 조선 제 22대 왕인 정조가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水禊)를 본떠 유상곡수연을 즐겼다. 규장각 전.현직 관원과 그 자제 및 일찍이 승지나 사관을 지낸 사람 등 41명을 특별히 궁궐에 불러들여 소요암의 곡수구에 술잔을 띄워 술을 마시고 詩를 읊었다. 왕희지가 41명을 초청한 '왕희지 고사'를 정조가 그대로 본뜬 것이다. 이 모임에 참여한 정조와 신하들이 직접 쓴 친필 시문 42수는 '내원상화계축갱재축'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묶였다.
또 그 전 해인 1792년(壬子) 3월 31일, 정조는 창덕궁 후원 농산정(籠山亭)과 현 부용정인 수택재 (水澤齋)에서 총애하는 규장각 관권들과 꽃구경과 낚시를 즐긴 다음 쓴 친필 詩를 모아서 연결해 '내원상화임자갱재축'을 만들었다. 높이가 36.5cm, 길이가 813cm에 이른다. 정조는 1788년(정조 12년)부터 규장각 관원과 함께 봄마다 창덕궁 후원에서 꽃구경과 낚시를 하는 특별한 모임인 내원상조회(內苑賞釣會)를 정례화했다. 그리고 1792년 모임부터는, 각 관원의 자제 들까지 참석토록 배려했다. 때문에 '내원상화임자갱재축'에는 규장각 제학인 오재순(吳載純)과 그의 아들을 비롯한 총 27인의 신하와 자제가 참여했다. 이는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水禊)가 조선시대 사대부 놀이문화의 전형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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