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ens의 '한복 입은 남자', 23.5cmX38.4cm,
J. Paul Getty Museum(미국 LA) 소장품>
* Peter Paul Rubens(1577 - 1640)
베스트팔렌(現 독일) 출생으로, 화려한 색채와 역동감 넘치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巨匠)이다.
1577년 독일에서 출생해 네델란드로 이주해 살았다.
한때,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다시 네델란드로 돌아온 뒤,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호트 대공 궁정화가를 역임했다.
화풍은 풍요롭고 꽉 찬 구성과 아름답고 화려한 관능, 호사스러운
취향, 화려하고 장대한 것이 특징이다.
또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우러져 생기가 넘친다.
정열적인 여성의 나체를 그려낸 화가로도 유명하고, 아울러
깊은 신앙심으로 그려낸 성스러운 종교화로도 유명한 화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 P.P.Rubens(1577-1640)의 작품 중 동양인을 그린 것들을 선별해
J. Paul Getty Museum에서 전시 중이라는 기사. 중앙 그림은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요즘처럼 미국에 사는 독자들이 부러운 때도 없다.
미국 LA에 있는 Getty Museum 서관(西館) 드로잉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한 그림 때문이다.
바로 위에 있는 루벤스의 드로잉 작품 '한복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를 말한다.
난 이 그림의 존재를 이미 오래전에 알았다.
역사 공부와 미술사 공부를 동시에 해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역사 쪽과 미술사 쪽 모두에서 빠지지 않고 가르치는 그림이 바로 '한복 입은 남자'이다.
일 년 반 전인 2011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초상화의 비밀>전에 귀한 나들이를
와서, 한국인에게 처음 선을 보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3년 11월 29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당시
드로잉 경매 사상 최고가인 32만 4000파운드(약 6억 6,0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던 그림이다.
이는 루벤스의 이 드로잉이 회화를 위한 습작이 아니라, 독립적인 완성작으로 제작한 것으로
전문가들이 분석했기 때문에 나온 가격이다.
때문에 이 드로잉은 Getty Museum이 가장 아끼는 드로잉 작품이다.
한데, 저 그림의 주인공은 정말 조선인일까?...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얼굴이 쌍꺼풀이 굵고 , 굴곡이 심한 서양형 얼굴이기 때문이다.
또 복장도 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公服) 차림이기는 하나, 조선의 전통적인 옷차림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본래는 그림 제목이 없고 구전으로 전해져 왔는데, 후대에 제목이 붙여졌다.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한복 입은 남자(A Man in Korean Costume)'로 제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폴 게티 미술관으로 옮겨지면서 '조선 남자'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다시 '한복 입은 남자'로 바꿨다.
이 그림은 400년 전인 1617년,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이탈리아 거주 중 생전 처음 만난
동양의 조선 청년 옷차림에 매혹돼 드로잉을 했다는 데에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실제로 이 당시에 루벤스가 이탈리아에 거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림을 보면 얼굴은 적게, 이에 반해 옷은 크게 그렸는데 이는 루벤스가 조선인 복장에 매료돼
옷에 중점을 두고 그렸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선이 소용돌이치듯 내려오고, 옷감의 반짝임까지 살린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또 그림 중앙의 왼쪽 부분을 자세히 보라!
희미하게 보이지만 분명히 배가 그려져 있다.
이는 이 조선인이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까지 왔다고 루벤스가 설명을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1979년 한 일간지에서 흥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이탈리아 남부 카탄차로 인근에 위치한 인구 1,000여 명 남짓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
코레아 성씨들로 이루어진 집성촌이 있는데, 이들의 조상이 바로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에게 노예로 팔려 로마에 와 정착한
"안토니아 코레아"란 이름의 조선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고 당시 많은 이들이 흥미있어 했다.
400여 년 전에 한국인이 유럽에까지 가서 살았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후,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드로잉 "한복 입은 남자"가 경매에서 고가로
팔린 사실이 보도됐다.
그리고 무려 30년 만에 미국 LA에 있는 게티 미술관에서 "동방을 향해:루벤스와 아시아의
만남(Locking East, Rubens's Encounter with Asia)" 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서
<한복 입은 남자>를 공개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주인공은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까지 가게 됐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첫번 째는, 임진왜란 때 일본 왜병에 끌려갔다가 피렌체까지 가게 된 조선인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노예로 팔려 이탈리아까지 갔던 사람이 고급스런 철릭을
입고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두번 째는, 에도(江戶) 시대에 일본에 체류한 네델란드 스펙스 무역관장에게 발탁돼 피렌체까지
가게 된 조선인 전직 관리라는 설이 있다.
이는 옷차림이 16세기 조선시대 관리들이 입고 있던 철릭(天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 얼굴이 귀골지고 탕건(宕巾)을 쓴 옷차림과 모습이 매우 진중하고 당당한 것을 볼 때,
무반(武班)인 관리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장 가능성 있는 추측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번 째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나면서 당시 퇴각하던 왜병에 의해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로마 선교사 신부가 이탈리아로 갈 때 동행한 다음 피렌체에서 자유인으로 풀어
주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성씨를 Corea(코레아)로 지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탈리아 남부 알비 市에는 300여 명의 코레아 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번 째는, 유럽인들이 조선과의 무역을 위해 조선인들을 확보한 다음, 네델란드로 동행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당시 이탈리아에 거주 중이던 루벤스가 한복 입은 일꾼들을 처음으로 보고
드로잉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림은 말이 없다.
그러나 비록 전쟁 때문이었지만, 1600년 대에 이미 조선인들이 유럽 각국에 퍼져나가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들이다.
이는 근대의 하와이나 남미 멕시코가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많은 조선인들이 조선 중기에 이미 세계
곳곳에 나가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면 우리나라 이민사는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교민들은 꼭 시간내어 Getty Museum에 가서 '한복 입은 남자'를 구경하기 바란다.
이 그림은 루벤스의 眞品이다.
그리고 당신처럼, 그림 속의 조선인도 이민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인 셈이다.
이밖에도 6월 9일까지 귀한 그림들이 많이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서직수의 초상화와 이광사의 초상화도 전시 중이다.
Getty Museum은 미국의 석유재벌 J.Paul.Getty가 자신의 전 재산인 7억불과,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콜렉션 했던 소장품들을 재단에 기증해 만들어진 미술관이다.
'장 폴 게티'야말로 진정한 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은 원없이 많이 벌었지만 역경으로 점철됐던 인생...
神은 인간에게 절대로 두 가지를 함께 주지 않는다.
5번 결혼해 4명의 아내로부터 5명의 아들을 두었지만, 참척(慘慽)을 비롯해 자식들 때문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던 고달픈 인생이었다.
그래서 말년에는 "행복은 돈으로도 얻을 수 없다."는 지론을 여러 사람에게 설파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전 재산을 가족이 아닌, 많은 후세 사람들을 위해 쾌척했다.
이 별에 왔다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삶의 무상함도 알게 돼,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기기로 결정하고 실천한, 인생 마무리를 잘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재벌들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나저나 나는 언제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지은
'장 폴 게티미술관'을 보러 미국에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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